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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는 대리모에게 낙태 강요할 권리 있나

입력 2010. 10. 26. 20:11 수정 2010. 10.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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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정희 기자]

친부모가 자신들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대리모에게 낙태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자 캐나다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이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캐나다 방송.

ⓒ 글로벌 내셔널

"다운증후군 아이 못 지우겠다"는 대리모

2009년 대리모인 나탈리(가명)는 밴쿠버가 자리 잡고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에 사는 제이미-조애나(모두 가명) 부부의 아이를 대신 임신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임신 초기에 초음파 검사로 태아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정밀 검사를 시행한 끝에 이들은 태아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과를 받았다.

제이미와 조애나는 나탈리에게 낙태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리모 나탈리는 낙태를 거부하고, 양육비를 지원하면 자신이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대리모 계약에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제이미와 조애나는 이를 거절했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인 나탈리는 논란끝에 결국 낙태를 선택했지만, 담당 의사인 캔 시드램이 이 사례를 '캐나다 출산과 남성병학회'에서 발표하면서 최근 캐나다와 일부 미국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보조 인간생식 법률(Assisted Human Reproduction Act)에 따라 상업적인 목적을 띤 대리 출산과 이와 관련한 의료 행위를 금지하는 반면, 이타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한 대리모 출산은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 글로벌 내셔널(Global National) > 방송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매해 약 100여 건의 대리모 출산이 이루어진다. 이 사건에서 대리모와 의뢰인 사이에서 금전적 거래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대리모 사용 시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흔히 변호사를 미리 고용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의뢰인이 출산 전 이혼을 한 이유로 대리모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우는 사례는 있지만, 임신 중 태아의 장애 때문에 대리모와 의뢰인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법이 대리모에게 낙태를 강요할 수 있는가?

이를 둘러싼 논쟁은 인터넷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생명윤리학자인 웨슬리 스미스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모든 면에서 역겨운 일"이라고 이 사건을 평가하면서, "상업적 대리 출산은 인신매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블로거인 마들렌 홀러는 "내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대리 출산에서 내 권리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라고 반박했다.

BC주의 변호사인 래리 칸은 이 사건에서 "의뢰인의 정자와 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정법'이 대리모 계약보다 우선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 글로브 뉴스 > 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또 제이미와 조애나 커플이 양육을 책임져야 하지는 않아도 되겠지만, 경제적 책임은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일간지 < 내셔널 포스트(National Post) > 는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생명이 계약 조건인 만큼 법의 효력은 상실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 출산과 남성병학회'는 비강압적인 환경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대리모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캐나다 언론은 법정에서 대리모 계약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전례가 없는 사례이기 때문에 법적 해석은 불분명하다는 점도 이 신문은 보도했다.

법의 권위에 관한 문제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출산 전 태아에게 장애 혹은 기형이 발견될 경우 '법의 권한'으로 낙태를 명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낙태는 캐나다에서 법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지만, 법적인 제한이 없는 것과 법적으로 낙태를 강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캐나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5년 한 해 동안 낙태 시술 수는 9만6815건이며, 인구 1000명당 가임기 여성(15-44세)의 낙태율은 14.1이었다. 굿마커 연구소는 2003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인구 1000명당 가임 여성의 낙태율이 12건을 기록한 서유럽이 가장 낮고,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는 21건, 한국은 31건이라고 밝혔다.

밴쿠버 시립도서관에서 만난 한 여성은, "대리모 출산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대리모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것 역시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두고 일부 대리모는 유전적으로 태아는 타인의 아기이기 때문에 대리모는 양육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인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BC주의 대리모는 < 글로브 뉴스 > 와의 인터뷰에서, "법적 동의서는 나보다는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리모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의 부재와 제한된 권리에 대해 성토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캐나다에서 관련 법 조항을 제정할 가능성은 낮다.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다른 사례를 위해서 관련 조직 설립 등의 방법으로 연방 정부가 관여할 가능성은 있다고 이 사건을 공개한 시드램이 밝혔다.

"출산하건 낙태하건 아이에게는 슬픈 일"

이처럼, 계약과 관련된 법의 효력과 양육의 책임, 그리고 부모와 대리모 사이의 권리에 관한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생명의 상품화이자 생명거래 계약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현재 밴쿠버를 관광 중이라는 독일 출신의 키어스틴(34)은 "출산을 하건 낙태를 하건, 양육 문제가 해결돼도 아이에게는 슬픈 일"이라면서 법적 책임 이외에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다.

지난 3일 인공수정 불임 치료술을 개발한 영국의 에드워즈 박사가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1978년 이래로 전 세계의 수많은 불임 부부가 이 치료술을 이용해 자식을 갖는 행복을 누렸지만, 이번 대리모 사태는 의학기술이 불러올 수 있는 생명 창조와 생명을 상품화하는 위험의 양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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