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無禮지국!.. 우리나라 에티켓의 현주소

2010. 10. 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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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너무 없다. 에티켓 말이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적이 하루에도 한두 번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기본 에티켓에 무뎌지고 있다. 지키지 않아도 별로 미안해하지 않고, 피해를 보고도 운 나쁜 날이라 치부하며 그냥 넘긴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무색하다. G20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아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버스ㆍ지하철 자리양보 드문 일

직장인 심모(39ㆍ남)씨는 얼마 전 해외출장을 갔다가 발목을 다쳤다. 귀국한 뒤에도 한동안 깁스를 한 채 출근해야 했다. 아픈 건 둘째치고 마음이 너무 상했다. 가방에 목발까지 들고 깁스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아무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눈을 감거나 창 밖을 응시했다. 가방조차 받아주는 이가 없었다. 심씨는 "심지어 눈이 마주쳐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외면했다"며 "우리 사회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이 정도로 없을 줄은 몰랐다"고 한탄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어린 아이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건 만국 공통의 에티켓이다. 하지만 이 기본 에티켓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쉽게 무시되고 있다.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서로 몸이 부딪치거나 실수로 발을 밟는 경우도 흔하다. 사과하는 게 당연한 에티켓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친다. 다시 만날 일 없을 테니 그 순간만 넘기면 되니까.

에티켓은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할 예의나 예절을 이른다. 고대 프랑스어로 '붙이다'라는 뜻의 'estiquer'에서 유래한 말로 붙여 놓고 보면서 그대로 지켜야 하는 예법이란 뜻이다. 매너라는 말과 종종 혼용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에티켓과 매너는 구분된다. 에티켓이 공공 차원의 예의라면, 매너는 좀더 개인적인 행동방식이다. 에티켓이 좀더 상위개념인 셈이다. 에티켓은 지키지 않을 때 불쾌감이나 피해를 주지만 매너는 그렇진 않다. 이은영 이펌코리아컨설팅 대표는 "에티켓을 거스르면 예의 없는 사람, 매너가 부족하면 센스 없는 사람"이라고 구분했다.

예를 들어 카페 같은 장소에서도 상석과 말석이 엄연히 다르다. 전망이 좋고 입구에서 먼 쪽이 상석이다. 호스트가 먼저 와서 말석에 자리 잡고 게스트를 기다리는 게 기본 에티켓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선 이런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걸 큰 결례로 여긴다. 또 외국인을 만날 때는 영어권이 아니더라도 첫인사 정도는 그 나라 말로 해주는 게 좋다. 이런 건 매너에 속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대신 거들먹거리기만

호텔에서 일하는 윤모(31ㆍ여)씨는 올 초 황당한 고객을 만났다. 1박2일 숙박권과 식사권이 포함된 객실패키지를 이용한 여성 2명이 체크아웃을 하면서 난데없이 간밤에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며 항의했다. 20대 후반쯤 돼 보였다. 숙박과 식사 등 서비스 받을 거 다 받고 나서야 뒤늦게 컴플레인을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정중히 "어젯밤에 말씀하셨으면 바로 다른 방으로 바꿔드렸을 텐데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고객들은 막무가내로 "돈을 낼 수 없다"며 계속 버텼다. 결국 그들은 30여만 원짜리 패키지를 무료로 이용하고 돌아갔다. 윤씨는 "에티켓은커녕 상식에서 벗어난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 중엔 젊은층이 더 많다"며 "이용료를 안 내려는 꼼수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호텔이나 백화점 식당 같은 곳에선 '고객이 왕'이다. 그러나 왕 대접을 받고 싶으면 왕처럼 에티켓을 갖춰 행동하는 게 먼저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무조건 환불해달라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항의하는 게 '왕다운' 에티켓이다. 또 상품을 살펴보거나 설명을 들을 때는 거들먹거리지 않고 불필요하게 언성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 사지 않을 땐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인사가 필수다. 직원이 인사하면 받아주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출입문에서는 뒷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것도 기본 에티켓이다.

하지만 평소 안 그러다가도 고객 입장만 되면 180도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씨는 "나이 든 남자 고객들은 여직원을 부를 때 서슴없이 '야!'라고 외치거나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기도 한다"며 "그런 고객들은 솔직히 밉상"이라고 털어놨다.

에티켓이든 매너든 본질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둘째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것, 마지막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박희권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는 "광복 이후 급속히 성장하면서 성취와 속도, 경쟁에만 몰입해오다 보니 가장 기본인 에티켓을 소홀히 하게 됐다"며 "최근 우리 국민, 특히 젊은이들이 글로벌 에티켓에 대한 이해나 수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 곳에서나 왁자지껄 휴대폰 수다

직장인 김모(47ㆍ여)씨는 돈 좀 아끼고 걷기도 할 겸 지하철을 이용하다 요즘은 다시 차를 갖고 다닌다. 절약도 운동도 좋지만 불쾌해서 지하철 타기가 싫어졌다. 듣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통화나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화 통화야 꼭 필요한 내용이라 치더라도 기계음 소리는 정말 온 신경을 긁는다"며 "심지어 자리에 앉아 젖은 머리를 털며 말리는 여자도 있다"고 말했다.

참다 못한 김씨가 조심스럽게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되레 "그게 뭐 대수냐"는 반응이 되돌아온 경우도 허다했다. 미안하다 하고 고치면 될 일을 말이다. 김씨는 "좁은 공간에 여럿이 오래 함께 있을 땐 불편하지 않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기본'을 벗어난 행동"이라며 답답해했다.

같은 동양이라도 일본은 휴대전화 에티켓이 철저하다는 게 많은 외교관이나 비즈니스맨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은영 대표는 "거의 전 국민이 휴대전화를 쓰는 나라에서 '모티켓(모바일+에티켓)'이 무시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하철보다 더 좁은 비행기에서도 에티켓은 필수다. 좌석 등받이를 눕히려면 뒷사람 상태부터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땐 앞 좌석을 잡아당기지 않는 게 기본이다. 기내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노크가 아니라 표시등으로 사용 중 여부를 살펴야 한다. 여럿이 함께 탈 땐 윗사람이 마지막으로 타고 먼저 내리는 게 글로벌 에티켓이다.

에티켓은 결코 까다로운 예법이나 거창한 규범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간단하다. 상대방이 그렇게 하면 나라도 불편하거나 불쾌할 행동을 삼가는 것, 이게 바로 에티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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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기자 precare@hk.co.kr일러스트 박구원기자 k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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