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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니스 조플린처럼 27살에 죽을거야 했지"

입력 2010. 10. 29. 17:20 수정 2010. 10. 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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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김어준의 만난 여자

7집 앨범 낸 싱어송라이터 박기영

① 이게 다 장재인 때문이다. 그가 탈락했다.

귀가 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휴대폰을 밤늦도록 움켜쥐고 난생처음 문자 투표까지 하게 만든 그가 말이다. 그를 응원한 건 그 음색이 내 취향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허각 존박 싫어서도 아니다. 그들, 좋다. 허각 우승은 스토리의 승리였다. 존박이었다면, 로망이었을 게다. 평소라면 그만큼도 즐거운 결과다.

그러나 이번은 가수가, 우승했으면 했다.

제 삶을 가락 있는 말로 서사하는 감수성, 그 운율을 제 몸으로 켜내는 재능, 그리고 그 일체를 스스로 기획하는 오리지낼리티. 그런 게 가수 아닌가. 그런 이들 본 지가 너무 오래다. 장재인은 그게 되더라. 해서 응원했다. 그런데 허각 존박 결승이면 허각, 존박 장재인은 존박, 장재인 허각이라야 장재인 우승이라며 경우의 수 한참 따지는데 덜컥 탈락. 우씨. 그러게 공연 왜 쪼개. 되도 않는 시상 왜 껴. 최소한 셋의 공연은 이어 했어야지. 장재인 투표시간만 줄었잖아. 이거 무효야, 물어내. 씨바.

그렇게 구시렁거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허각은 상징으로, 존박은 욕망으로 소비될 게다. 그들에겐 그들 자리 있다.

그런데 장재인은. 감흥 잦아들고 기억 흐려지면. 대형기획사들이 아이돌로 독과점하는 시장에서 그가 그인 채로 살아남을 방도는. 당장 그가 제 정체성 유지하며 출연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마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해서 수소문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하며 제 색깔 유지한 채 비주류 음악으로 10년 이상 가요계에서 버텨 온, 개점휴업 아니라 앨범작업 꾸준히 해 온, 여성 가수 있는가. 있단다. 박기영이란다. 그렇게 그를 만났다.

② 그를 몰랐다. 자랑일 건 없다만 그렇다고 한창때 SES조차 쎄스라 읽던 놈이라 딱히 미안하진 않다.

우선 그의 앨범 뒤졌다. 음, 이런 음악. 오케이. 출동. 첫인상. 예술 한다는 이들 특유의 성마른 까탈과 자의식 예상했다. 그런데 딱 자기 음악이다. 사람이, 기름기가 없다. 일단 슈퍼스타케이부터 물었다. 안 봤단다. 이런. 하여 가수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그 기억을 소환해낸 프로란 이야기부터 장재인 탈락까지 들려줬다. 그리고 그래서 장재인 갈 길을 이미 걸어본 이를 찾았다고. 박기영이라고들 하더라고. 해서 들어보니 목소리에 물기도 좀 있고.(웃음) 음악은 재니스 조플린이 사랑에 빠져 남자 꼬시려고 말랑해진 버전 같고.(웃음) 근데 크게 뜨지는 못했고.(폭소) 하지만 오랜 시간 죽지도 않았고.(웃음) 그렇게 그 길 먼저 가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끄덕인다.

먼저 한 가지 물었다. 아이돌 기획사의 상업적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기회 주자는 프로에서 박진영이 심사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대중음악씬을 아이돌 일변도로 만든 장본인 중 하난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굉장히 타당한 논리예요." 스트레이트하다. 좋아. 그럼 한 가지 더. 무대 위 자뻑은 가수의 자질 중 하나라 본다. 근데 공연 다 끝났는데 무대에서 안 내려오는 사람 있다. 배우 중엔 최민수.(웃음) 가수 중엔 누군가. 김윤아? "대표적인 케이스죠. 여자 중에 1등이라고 봐야 될 거예요.(폭소) 서로 안 좋아하죠.(폭소)" 이만하면 답하지 못하는 질문은 없겠다. 자, 이제 시작.

본인은 그런 자뻑 없어 보이는데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나.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공부 못했구나.(웃음) "집이 어려웠어요.(웃음)" 어려워도 공부 잘한 사람 많다.(웃음) "5등 안에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중3 겨울방학 때 밴드보컬 모집광고를 보고. 언더 밴드. 한 두 달 했는데." 어디서? "백화점.(웃음)" 그런 데 말고는. "공원.(웃음) 그때 무대 맛을 본 거죠. 아, 그때 그걸 하면 안 되는 거였어.(웃음) 그리고 고2 때 KBS '가위바위보'라는 프로에 나가 연말 장원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예전 실용음악과 간다고 했더니 아빠가 얼마나 날 두들겨 패던지.(웃음) 엄마는 니가 노래를 잘하긴 하는데 가수 할 정도는 아니야.(웃음)" 요즘 같으면 기획사 찾았겠지만 그땐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 하셨던 김철씨가 계약을 하자고 왔어요."

오, 부모님 달라졌겠다.

"달라졌죠. 엄마가 너 뭐가 필요하니.(폭소)" 그래서 결국 실용음악과 갔고 계약했는데 그다음은. "당시 트렌드가 강수지 선배, 김혜림 선배 같은 분들이었기 때문에 예쁜 걸 시키려고 했어요. 댄스도 하고. 난 그런 건 못 하겠다고. 학교에서 배우는 건 예술인데 여기선 그냥 상품인 거야. 그걸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어린것이 뭘 안다고.(폭소)" 그때 그걸 했었어야 해. 그럼 돈도 많이 벌었지. 실용음악과가 자길 망친 거야.(웃음) "맞아. 나 춤 되거든. 나 진짜 댄스가수로 잘 풀릴 수도 있었어.(폭소)"

예술 한다는 자존심. 탤런트와 연극배우는 다르다고 하는 그런 류의.

"네, 그거. 개뿔.(폭소)" 그때 그냥 댄스가수로 갔으면. "아이돌 1세대 될 뻔했죠.(웃음) 근데 사장님한테 전 이런 음악이 싫습니다. 전 아티스트가 될 겁니다. 그땐 락 스피릿에 빠져 재니스 조플린처럼 스물일곱에 죽을 거야.(폭소) 그럴 때니까. 그러다 보니 첫 음반은 짬뽕이 됐죠. 하수빈류의 곡들이 이미 준비돼 버릴 수가 없다고 해서. 당연히 실패했고 두번째 앨범부턴 작사, 작곡한 곡도 4개 넣고 실력 인정도 받고. 그 음반은 30만장 가까이 나갔죠." 그렇게 성공하니 뭐가 달라지던가. "당시는 인터넷이 없어 인기 있는 줄도 몰랐죠.(웃음) 그냥 나를 엄청나게 돌렸어요." 어떤 무대까지 서 봤나. "시골 단오제. 할아버지 할머니만 계신. 모던 락인데.(웃음)"

그래서 돈 좀 벌었나.

"신인이라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는데도 2집 활동 끝나고 4~5천은 됐나 봐요." 집에서 대우 달라졌겠다. "아우 완전.(폭소)" 소녀가장 됐구나. "가장 역할 하는 여자 가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적당히 하라는 거.(웃음) 저도 그때부터 힘들어졌어요." 돈 벌어 오는 사람 되면 집안 전체가 기대니까. "맞아요." 그럼 여자 가수가 처음 뜨면 뭘 조심해야 하던가. "씀씀이. 한번 커지면 안 줄거든. 그리고 남자.(웃음) 그리고 자의식 과잉." 본인은 어땠나. "뜨기 시작하면 자의식 과잉되는 시점, 누구에게나 와요. 근데 전 그때 마침 시련이 왔어요. 김철씨가 힘들어져 저를 다른 데 넘겼거든요."

그때부터 그는 소속사의 주가조작, 매니저의 사기 등 연이은 사건 사고로 제대로 활동 한번 못 한 채, 계약에서 풀려나기 위해 "미친 듯이" 소송하는 우여곡절 세월을 몇년이나 보낸다.

동생 유학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 시절, "이제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출입까지 하며 소속사를 수차례 옮기는 파란만장 끝에 드디어 5집을 내게 되자, "그렇게 바닥 치고 나니 무서울 게 없어져 트렌드고 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하자" 싶었단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자기만의 음악을 할 수 있었단다. "그 전까진 트렌드에 회사 눈치 보느라 내 것만 고집할 순 없었죠. 정체성이 어정쩡했죠. 하지만 5집부턴 내 음악을 했죠. 그리고 상업적으론 실패하게 되죠.(웃음)"

여기서부터 박기영이 아니라 그 판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기영이 만든 음악보다 후지고 노랠 잘하는 것도 아닌데 만날 티브이 나오는 이들 지켜보면 어떤가. "그래서 티브이를 없애버렸잖아요.(폭소) 우리나라에선 다들 소를 몬다 그럼 나도 목동이 아닌데 소를 몰아야 해. 아이돌도 있고 여러 장르와 아티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천편일률이죠. 요즘은 방송하러 가면 제가 불편해요. 그 친구들이 MR인지 AR인지 구분도 안 가는 시디 틀어놓고 격한 춤 추고 제가 혼자 나가면 무대 분위기 참 묘해져요. 환영받지 못하는."

그럼 춤 안 추는 밴드 아이돌은 어떤가.

"참 힘들겠다." 왜? "아이돌 밴드 만드는 회사가 더 나빠요. 예전 '클릭비'란 보이밴드에서 노민혁은 천재 소리 듣던 친구예요. 그런데 남이 다 쳐놓은 연주에 모션만 시키더군요. 그네들 앨범 보잖아요. 드럼, 베이스, 기타는 죄 다른 사람이 한 거야. 자기들이 한 건 하나도 없어. 곡도 다 받고. 그런데 그게 아예 안 되는 애들이라 그랬느냐. 그게 아니란 거죠. 제작자는 돈 들어가니까 불안한 거지. 맡길 수가 없는 거지. 장사에 이용만 당하다 안 되면 버려지는 거죠."

그럼 가수의 예능 출연은.

"예능 생리가 그래요. 이만한 고기 들고 나와 자 받아, 하고 탁 던져주면 우 달려들어야 돼요. 서로 뺏겠다고 물고 뜯고. 정글처럼. 방금 전까지 모르던 사람들끼리 친한 척하며. 그게 되면 할 수도 있죠. 전 무대에선 에너지를 주고받을 관객이 있어 미칠 수도 있는데, 그냥 카메라 앞에선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 못 했어요. 진짜 문제는 예능이 아니라 거기밖에 가수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거죠. 요즘 MR 없이 반주까지 다 라이브로 하는, 그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송은 거의 없어졌어요. 이제 남은 건 '스케치북'하고 '라라라' 정도."

그럼 본인 경험상 장재인이 가야 할 길은.

"아마 두 가지 길이 앞에 놓일 거예요. 연예인이 되는 길과 음악 하는 길.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소속사를 만나는 거죠. 제가 어릴 때 뭣도 모르면서 음악 한다 했을 때 철이 아저씨가 그걸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전 후회가 없어요. 어려웠지만 싱어송라이터로 자부심도 있죠. 그리고 지름길에 속으면 안 돼요. 그냥 자기 길 가야 해요." 그럼 그 관점에서 그나마 가장 괜찮은 기획사. "어린 가수들을 자기 색깔대로, 음악으로 맞춰주는 곳은 그나마 YG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인터뷰 끝난 뒤 그는 영상 찾아봤다며 장재인에게 전해주고픈 말을 다음과 같이 메일로 보내왔다.

"장재인, 독특한 음색에 귀여운 아가씨더군요. 뭐든 그리면 장재인이 되는 도화지 같은 친구. 특히 음악이 그 어떤 약보다 좋은 치료제였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깊이 동감했어요. 바로 그 마음을 잊지 마세요. 이제 활동하게 되면 나 혼자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더 이상 내 맘대로 못하게 돼요.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내 기분, 상태와 무관하게 무대에 설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대중은 열광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많이 다쳐요. 어릴 때 따돌림에서 받았단 상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음악이 가장 좋은 치료제였다는 걸 잊지 마세요. 물론 내가 좋아서 했을 뿐인데 난리까지 나면 로또지만. 하하하. 금메달 딴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한순간에 썰물 되는 상황이 장재인에게는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치고 힘들 땐 잠시 쉬면서 음악을 취미로 여기는 게 필요해요. 음악에 대해 여유를 가지세요. 음악은 성공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거니까." 친절한 기영씨.

③ 박기영과 장재인이, 예능 아닌 지상파 음악프로에서, 자기들이 직접 만든 음악으로, 밴드까지 라이브인 무대에, 함께 서는 광경을 보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세상이다.

아이돌 체육대회까지 볼 수 있는 세상에. 정작 가수들 보기가 그리 어렵다. 생각해보면 이거 잘못돼도 아주 단단히 잘못됐다. 그들 음악을 누구나 좋아해야 한단 게 아니다. 소녀시대도 좋다. 그러나 그들 좋아할 이들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말이다. 이거 기획사 탓인가. 아니면 방송사 책임인가. 그냥 소비자들이 공연 직접 찾겠단 결심만 하면 다, 되는 건가.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박기영, 장재인을 계속 볼 수 있는 거냐고.

누구 답 아는 사람, 손 좀 들어보시라. 어?

PS.

큰 즐거움 준 슈퍼스타케이에 감사함. 애정에서 불만 세 가지만. 먼저 국어. 예를 들어 대국민 투표. 對국민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 대국민 성명, 대국민 사기, 가능함. 국민을 상대로 성명 내고 사기 치는 거니까. 그러나 대국민 투표는 아님. 국민을 대상으로 투표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투표하는 거니까. '대국민 선정곡' 비롯해 대국민이 들어간 단어, 전부 오류. 그 외 '자율곡'이라든가 '초호화 음반발매' 따위 문구들, 어색함. 왜 어색한지는 국립국어원에 문의 요망. 그리고 각종 케이블 리얼리티 노하우들, 구사할수록 촌스럽다는 거 잊지 말았으면 함. 마지막으로 선곡의 자유. 선곡도 능력임. 장르나 가수만 지정하고 선곡의 자유 필요함. 어차피 제게 맞는 곡으로 가수할 텐데. 그럼 내년엔 더 대박. 졸라.

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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