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발명된 전통'

한윤정 기자 2010. 11. 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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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교수 '진화와 담론 연구'

마이클 잭슨이 먹어보고 감탄했다는 비빔밥.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되면서 '세계인의 음식'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다양한 재료를 비벼내는 비빔밥은 한국문화의 역동성, 창의성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비빔밥은 언제부터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을까.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계간 '사회와 역사'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 < 비빔밥의 진화와 담론 연구 > 에서 역사민속학적 접근으로 비빔밥의 변천사를 밝혔다. 주 교수에 따르면 비빔밥은 1920년대 이후 서울과 지방에서 근대 도시가 형성되고 외식업이 가동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전근대사회에서 중국, 일본에 비해 외식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에서 내놓을 만한 음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빔밥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1890년대에 씌어진 < 시의전서 > 다. '골동반'과 '부�밥'을 병기한 이 책은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고 요리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1921년에 나온 방신영의 < 조선요리제법 > 에는 '부�밥'을 만들 때 재료를 넣어 볶은 뒤 고춧가루를 뿌리라고 돼있다. 1940년 일본어로 출판된 이하라케이(손정규)의 < 조선요리 > 는 다시 볶는 과정 없이 미리 비벼낸다는 설명을 달았다. 그러다가 1976년에 나온 황혜성의 < 한국요리백과사전 > 에 오면 비빔밥을 궁중요리로 소개하면서 "원 궁중법은 미리 비벼내지만 음식점에서는 흰밥 위에 재료를 색스럽게 얹는다"고 소개한다.

주 교수는 이런 자료를 토대로 "그릇에 담기 전에 비비는 비빔밥은 가정식이며, 밥 위에 재료를 놓는 방식의 비빔밥은 외식업체용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밥을 비빈 후 오래 두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식당에서는 전통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1929년에 나온 '별건곤'이란 잡지다. '팔도명식물예찬'이란 특집에서 진주비빔밥을 소개하면서 '쌀밥 위에 나물과 육회를 담고 고추장을 얹어 손님이 직접 비빈다'고 했다. 진주비빔밥에 육회가 올라가는 것은 진주에 대규모 우시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 교수는 "나물과 전유어가 곁들여지는 안동 헛제사밥에는 아직도 고추장 대신 조선간장이 양념으로 나온다"며 "고추장이 비빔밥의 주요 재료로 굳어진 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과 독일로의 이민이 증가하면서 고추장의 상품화가 진행된 이후"라고 밝혔다.

비빔밥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있다. 신인공식(神人共食)의 의미로 제사 음식을 그릇 하나에 섞어서 비롯됐다는 음복설, 동학혁명군이 그릇이 충분치 않아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먹었다는 동학혁명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임금이 몽진했을 때 수라상에 올릴 음식이 없어 몇 가지 나물을 비벼 올렸다는 몽진음식설, 궁중에서 유래했다는 궁중음식설, 설에 먹고 남은 음식을 정월 대보름에 먹었다는 묵은 음식설, 농번기에 간단하게 함께 먹었다는 농번기음식설 등이다.

비빔밥이 진주를 제치고 전주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은 1980년대 전주비빔밥이 '향토음식' 바람을 타고 서울 중심부에 먼저 상륙하면서부터다. 또 1990년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되면서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됐다. 1990년대까지 비빔밥을 '음식물 쓰레기'처럼 느꼈던 일본인들도 2000년대 한류 바람을 타고 비빔밥을 즐겨 먹게 됐다. 주 교수는 "비빔밥은 '발명된 전통'이며, 이 과정에서 먹기 편리한 음식에서 한국문화·영양 등의 담론을 동반한 음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한윤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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