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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유출사고 3년, 태안을 가다

정혁수 기자 입력 2010. 12. 05. 21:57 수정 2010. 12. 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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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마음의 기름때는 벗겨내지 못했다어자원·관광객 급감.. 암 등 건강 이상신호배상·보상도 '지지부진'.. 생계 잇기 막막

"시간이 가면 잊혀진다는 디 갈수록 타들어 가는 게 바로 우덜 속이여. 피해배상도 이뤄지지 않지, 고기는 씨가 말랐지. 생각혀봐? 우덜이 뭘 할 수 있겄어. 배운 게 바다라고 죽으나 사나 바다만 보고 있는디,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녀."(한성택씨·53·태안군 근흥면)

5일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항 인근에서 만난 주민 한씨는 3년 전 기름 유출사고 이후 달라진 생활상을 이렇게 말했다. 넉넉했던 인심도 사라져 가고,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이웃들도 늘어나고…. 7일로 사고가 난 지 꼭 3년이 흐르지만 한씨는 답답하다고 했다.

5일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위치한 만리포해수욕장과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모항항의 풍경. 북적거리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뜸해졌고, 항구 분위기도 활기를 잃었다. | 정혁수 기자

"사는 것도 팍팍하고 웃는 사람덜도 찾기 힘들고 우덜이 살던 예전 그 땅이 아닌 것 같어."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 기름으로 범벅이 됐던 사고해역과 주변 지역은 외형상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하지만 사고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더욱이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펀드·유류오염피해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만든 정부 간 국제기구)의 배상절차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따라 생계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큰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 경제활동도, 건강도 적신호 = '삶의 터전인 바다가 상처를 입으면서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우럭, 굴 등 각종 어자원의 수확량 급감은 고스란히 가정경제 파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굴 수확이 한창이지만 요즘 어촌 풍경은 한산하다.

"굴 양식 시설을 다시 설치하고 있는 중이어서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유. 사고 전만 해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크게 하는 사람들은 6000만~7000만원 버는 일은 일도 아니었는디…. 다 '옛날 일' 됐슈."

소원면 의항리 이충경 어촌계장(39)은 "동네 분들 상당수가 굴 까는 걸로 돈벌이를 했는데 이걸 못하니 돈이 안 도는 것"이라면서 "한 집당 평균 2000만원 정도 벌이가 줄었다고 보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만리포에서 30여년간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남의순씨(63)는 기름사고 난 뒤 손님이 70% 정도 줄었다"고 속상해했다.

"3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500만~600만원 매상은 기본이었는디…. 요즘은 1주일 통틀어 100만원 벌이도 힘들어유."

5일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인근 횟집거리 풍경. 예전과 달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낚시 손님들도 뚝 끊겼다. 신진도리에서 낚싯배를 운영하는 한씨 역시 "낚시꾼 10명 태우면 하루 배 한 척당 60만~70만원 벌이는 됐다"면서 "지금은 기름사고로 어자원이 고갈되고, 손님들 발길 줄어들면서 꿈도 못 꾼다"고 한숨을 지었다.

주민들의 건강도 여전히 '요주의 상태'다. 태안환경보건센터 조사에 따르면 장기간 방제작업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에게 세포손상과 호르몬 계통의 변화가 관찰됐다. 지역주민들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대사경로상에서 효소의 불균형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어느 마을의 경우 사고 이후 15명의 주민이 암진단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IOPC 배상 '산 넘어 산' = 피해배상은 주민들이 가장 답답해 하는 문제다. 3년이 넘도록 큰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충남도에서 배상을 받기 위해 IOPC펀드에 청구한 배·보상 건수는 모두 6만9889건(96.4%)이었다. 액수만 1조2169억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난달 현재 IOPC 사정 건수와 배상금 지급현황을 보면, 1만4716건(21%), 284억95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맨손 어업 등 피해 주민들의 소득 산출근거가 되는 소득 입증자료가 없어 증빙자료 확보·청구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IOPC 측이 매우 엄격한 사정기준을 적용하면서 피해사실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많아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난 2008년 6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유류오염사고특별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원회가 딱 1회 열렸을 뿐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대지급금과 피해배상청구권을 담보로 몇 백만원~몇 천만원까지 대부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배·보상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태안기름유출사고

국내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로 기록된 '태안기름유출사고'는 지난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북서쪽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HEBEI SPIRIT)호가 충돌해 빚어졌다. 이 사고로 당시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 1만2547㎘가 유출되면서 대표적인 청정해역인 태안 앞바다를 순식간에 '검은 바다'로 뒤바꿔 놓았다.

< 정혁수 기자 overall@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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