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혁명가들에게 올리는 천도재

2011. 1. 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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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대사 아리랑-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김성동 지음/녹색평론사·2만5000원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저 라틴아메리카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알아도 조선의 혁명가 이현상은 모른다. 마오쩌둥·호찌민·티토·카스트로, 그리고 김일성은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

2007년에 초판이 나온 작가 안재성의 <이현상 평전>(실천문학사) 발문에서 <만다라>의 소설가 김성동은 그렇게 한탄했다. 이현상(1905~1953). 충남 금산 제일 부잣집 4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서울 중앙고보 재학 때 학생들을 이끌고 6·10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이후 형극의 길에 들어서 감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다 남로당 노동부장을 거쳐 '여순반란'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조선인민유격대(남부군) 총사령이 됐다. 그리고 5년 뒤 의문의 죽임을 당한 그의 이야기는 그래도 소설이나 영화로 꽤 알려진 편이다.

몽양 여운형 영전에서 조시를 읽었던 '문화공작대장' 김태준, 그리고 함북 명천 출신의 '볼셰비키 문학소녀'로 조선부녀총동맹 문교부장 및 서울지부 위원장을 지낸 그의 처 박진홍을 아는가? 기생 출신의 혁명가 정칠성, 만주 벌판을 주름잡던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마지막 빨치산 '지리산 여장군' 정순덕은? 그리고 이용악, 박영발, 하준수, 김제술…. 이름은 들어보았을 박헌영과 김삼룡과 이주하, 김단야, 이재유에 대해선 얼마나 아는가? 심지어 몽양이나 이동휘, 김두봉, 김원봉, 무정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아는 게 있는가?

그들의 공통점은 일제의 동원과 가렴주구 속에 대다수가 변절하거나 거세당할 때도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목숨 걸고 저항한 이 민족의 정신적 고갱이였다는 것, 어렵게 살아남은 그들 대다수가 '해방' 뒤 친미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친일세력의 손에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것, 또 그들 중 상당수가 북의 김일성 일파에 의해서도 '미제 앞잡이·간첩' 따위로 몰려 처단당하거나 외면·배신당했다는 것이다. <현대사 아리랑>은 남북 모두로부터 처참하게 배신당하고 잊혀진 채 지금도 중음신이 되어 이 땅 위를 떠돌고 있을 그들 중 50여명에 대한 김성동의 처절한 위무요 눈물 어린 천도재며 결기 어린 '기억의 싸움'이다. 오랜 세월 그들의 흔적을 찾아 자료와 사람을 뒤진 끝에 지난 3년간 손회목 힘줄이 늘어나도록 육필로 간결하고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써 내려간 보고서요 감동적인 문학이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이를 두고 "상투적인 이데올로기적 인식틀을 떨쳐버리고, 뛰어나게 양심적인 인간들이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끝내 좌절하고, 역사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경로와 그 의미를 정당하게 음미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것은 제자리걸음의 소모적인 정쟁·논쟁으로 소실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엄청난 에너지 낭비를 막고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지난 연말 경기도 양평군 우벚고개에서 '항일의병 천도재'를 지내고, "오늘의 현실을 읽어내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과 의지를 심어주는 힘찬 문학을 다시 세우자"는 '고루살이 문학' 선언식을 연 김성동은 그때 <현대사 아리랑> 선인세를 제1회 '고루살이 문학상'으로 내놨다. 김성동의 선대인 김봉한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충남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뼈잿골에서 이관술 등 8000여명의 '좌익수'들과 함께 희생당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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