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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엔 박완서가 있다'는 사실, 얼마나 든든한 희망이었는지요

n/a 입력 2011. 01. 25. 00:18 수정 2011. 01.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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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선생님, 서울에 눈이 펑펑 내렸어요. 보셨어요? 선생님 댁 거실의 널따란 창문 너머 보이는 먼 산의 풍경도 참 아름답겠지요.

 작년 이맘때 이렇게 춥던 날 뵈러 갔던 게 떠올라요. 그날 목에 두르고 나오셨던 도톰한 스카프도, 안감을 털로 누벼 무척 따뜻해 보이던 겨울코트도 다 참 멋스러웠어요. "와, 선생님 너무 예뻐요" 감탄하면 "어머 진짜 괜찮아?" 아이처럼 천진하게 기뻐하시던 모습. 얼굴의 모든 근육을 쫙 펴고 웃으시던 그 환한 미소. 네, 괜찮다마다요. 선생님 진짜로 고우셨어요.

 우리가 그날 뭘 먹었더라, 순두부, 복국, 스파게티, 만두…. 그런 이름들을 헤아려보다가 그만 목 놓아 웁니다. 그 정갈하고 따뜻한 끼니들, 담방담방 평온하게 이어지던 수다, 직접 끓여주시던 향긋한 커피, 선생님의 넓은 그늘 아래 고단한 날개를 잠시 내려놓고 쉬던 짧은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좀 나으면 기별 주시겠다는 전언에 그저 기다렸습니다. 아픈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걸 꺼려하시는 마음, 병환이 풍문처럼 밖에 퍼지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하시는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박완서 선생님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조금 앓고 계신 거라고, 이 계절만 지나면 기운 차리고 일어나시어 함께 산책도 가고 차도 같이 마실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요. 이번 명절에는 어떻게든 꼭 뵈어야지 했는데 이토록 큰 후회로 남을 줄을 몰랐습니다.

 돌아가신 날 황망한 심정으로 빈소로 달려가 인사를 올리고 나오니 무릎이 후들거렸어요. 일행이 저를 붙들어 앉혔습니다. 여느 상가(喪家)에서처럼 빨간 탕국과 밥이 나왔습니다. 가난한 문인들을 위해 부의(賻儀) 받지 말고 넉넉히 대접하라셨다는 바로 그 밥이요. 오랜 습관처럼 저도 모르게 수저를 들었습니다. 뜨끈한 국 한 모금이 종일 비어있던 내장에 부드러이 휘감겼습니다. 환한 대낮 지하 3층의 빈소에서 눈물을 닦던 손으로 꾸역꾸역 숟가락질을 하면서, 현실이 아니라 선생님 소설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태양 아래 까발리고, 공감하게 하고, 그리하여 위로 받게 하던 작가. 우리는 이제 그 단 한 사람의 작가를 잃었습니다.

 '한국 문단에 박완서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여성작가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희망이었는지 선생님은 아실까요. 아이 다섯을 키우던 전업주부가 마흔의 나이에 등단하여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우뚝 솟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지요. 선생님은 40년 동안 끊임없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써 오셨습니다. 예순에도, 칠순에도, 여든이 되실 때까지도 영원한 '현역'이셨습니다. 감히 그만큼 훌륭해지고 싶다는 말은 못해도 박완서 선생님만큼 오랫동안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가슴에 품은 후배작가들이 저 말고도 참 많습니다. 선생님의 새 소설이 나오기만을 간절한 설렘으로 기대하는 독자들은 또 얼마나 숱하고요. 언젠가 제가 "뜨거운 연애소설 하나 써주시면 안 될까요?" 했더니 "그럴까?" 빙그레 웃으셨잖아요, 선생님.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워 책장에 꽂힌 선생님 책들을 두서없이 꺼내 듭니다. 공교롭게도 펼치는 면마다 '작가의 말'이 들어있습니다.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이 내 소원이다. 아직도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만한 기운이 남아있으니 언젠가는 소원 성취할 날도 있으리라.'(『아주 오래된 농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친절한 복희씨』)

 아아, 이제 더는 박완서 표 새 소설을 읽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선생님이 더 이상 이곳에 같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쯤이나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요.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주옥 같은 소설들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박완서'라는 크고 높고 따뜻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산골짜기를 흐르던 시냇물과, 산새들의 지저귐, 또르르 발밑을 굴러가던 도토리의 빛깔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다시 뵈올 때까지 부디 평안하세요.

정이현(소설가)

◆정이현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등이 있다.

선생님 '나목'으로 서 계시지 말고 돌아오소서

  - 정호승 (시인)

선생님

아침에 일어나 흰 꽃잎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눈송이 사이로 한 송이 눈송이가 되어

선생님 떠나가셨다는 소식 너무 놀랍습니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혹한이 선생님껜 그토록 혹독하셨습니까

일찍이 이 시대의 '나목'이 되어

문학의 언어로 위안과 행복의 열매를 나누어 주셨는데

이제 또 어디 가서 한 그루 '나목'으로 서계시려고 하십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차산 아래 뜰도 거니시고

봄이 오면 피어날 꽃 이야기도 하시고 고구마도 드시고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 좋아하신 초콜릿도 드셨는데

선생님

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심으로써 저희를 버리십니까

저랑 봄날 햇살 아래 점심 드시기로 한 약속 잊으셨습니까

가슴에 묻으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아드님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선생님 문학의 뿌리인 어머니 만나 뵙고 싶어 더욱 서두르셨으리라

미루어 생각해도 생각해도 눈물이 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

제게 힘과 위안을 주신 그 말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데

아, 어떠한 고통도 극복하려 들지 말고 견뎌야겠구나

가슴 깊이 새기고 열심히 노력하고 실천해왔는데

선생님께서는 또 무엇을 견디시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떠나셨습니까

소복소복 눈 내리는 아침 눈길을 그토록 걸어가고 싶으셨습니까

'휘청거리는 오후' 표지를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시면서

새색씨처럼 살짝 웃으시던 그 수줍은 미소 잊혀지지 않는데

선생님

이 눈 그치면 시장 보고 오신 듯 돌아오세요

돌아오셔서 저희들에게 '이제 한 말씀만 하소서'

선생님께서도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이제 그리움을 축복처럼 생각하겠습니다

전쟁과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없는 천주의 나라에서 다시 쓰신 소설

열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문학의 영원한 모성이신 선생님

한국소설문학의 맑고 밝은 햇빛이신 선생님

천주님 품안에서 평안하소서

◆정호승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슬픔이 기쁨에게』 『밥값』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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