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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나쁜엄마, 회사선 왕따 .. "우리가 죄인인가요"

입력 2011. 02. 06. 18:42 수정 2011. 02. 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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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정해 임신하라" 상사 눈치 받고육아휴직은 커녕 출산휴가도 다 못써'아이 아프다' 전화 받아도 발만 동동"둘째는 곧 사직서… 아이 포기할 수밖에"

[세계일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해마다 속출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출산으로 공백이 생기는 여성인력을 기피하고, 가정에선 육아 책임이 여전히 여성 몫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저출산과 여성의 조기퇴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과 여성인력의 경력 단절이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과 국가 성장잠재력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워킹맘'들이 처한 육아 현실과 우리나라의 보육복지 실태를 짚어본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산'을 넘은 뒤에도 직장에 남은 여성들은 여전히 회사와 아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저출산의 주범'으로 몰리며 사회로부터 출산 압력을 받는 여성들은 회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순번 정해서 임신하라는 회사

대기업 과장인 김모(35)씨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당분간 임신을 미루기로 했다. 지난해 초 결혼하자마자 팀장이 계속해서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물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팀장은 "여직원 셋이 동시에 출산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여직원끼리 임신 순번이라도 정해 업무에 지장을 주지 말라는 얘기였다. 김 과장은 "가뜩이나 인원이 없는데 여직원이 출산휴가를 들어가도 회사 측에서 결원을 보충해주지 않으니 팀장들이 서로 여직원을 안 받으려 한다"며 "맘 놓고 임신도 못하는데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출산휴가나 제대로 쓰겠냐"고 했다.

사립학교 교사인 방모(31)씨는 얼마 전 개교 20년 이래 첫 육아휴직자가 됐다. 사립학교 특성상 이사장 재량으로 휴직이 결정되기 때문에 육아휴직 신청자 대부분이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누군가 보건복지부에 신고한 '덕분에' 방씨가 첫 수혜자가 된 것. 주변에서는 이참에 둘째도 가지라고 했지만 방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학교 측에 둘째 때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냐고 물었다가 더 이상 학교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앞으로 육아휴직자를 1년에 3명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네 명이 임신하면 어떻게 우선순위를 둘 것이냐'고 불만들이 많지만 육아휴직 제도를 아예 취소할까 봐 입 밖으로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재작년에 결혼한 회사원 윤모(33)씨는 당분간 아이 갖기를 포기했다. 주변에서 35살 전에만 낳으면 된다고 해서 2년 더 미루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또다시 연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씨는 "결혼할 때 부모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시작하다 보니 그 전에 벌어놓은 돈을 다 쓰고도 마이너스 상태"라면서 "지금도 대출 이자만 매달 100만원 넘게 나가 애를 낳고 육아휴직 들어가면 외벌이로는 대출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첫째를 낳고 직장에 복귀한 여성들은 회사 눈치 보랴, 애 봐주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눈치 보랴 전전긍긍하기 일쑤다. 동료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감과 아이에게 충분한 애정과 정성을 쏟아주지 못한다는 죄책감,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육체적 피로감이 워킹맘들을 주저앉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임신은 '첫째에게 주는 선물'이 아닌 '직장 포기'와 동의어라고 워킹맘들은 입을 모았다.

광고회사 팀장을 맡고 있는 이모(35)씨는 "첫 아이 낳고 회사 독촉에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두 달 반 만에 복귀했다"면서 "애 봐주시는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야근도 제대로 못해 항상 동료들에게 폐 끼친다는 자책감, 뒤떨어진다는 불안감에 원형탈모증까지 왔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이 악물고 일해서 어렵게 팀장까지 됐는데 둘째를 가지면 그 힘든 시간을 되풀이해야 한다"면서 "지금도 집에서 기다리는 애 때문에 회식이나 모임에 자주 빠지다보니 어느새 '왕따'가 돼 정보에서 소외되고 조직에서 발언권까지 잃게 되는 것 같아 비참하다"고 토로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최모(35)씨도 "애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아도 일찍 집에 가겠다고 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발만 동동 구른다"면서 "한두 번 낙인찍히면 승진에서 밀리는 것은 고사하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 주지 않기 때문에 조직에서 성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시댁에 들어가 살고 있는 그는 "시어머니께서 더 이상은 애를 못 봐주겠으니 분가하라시는데 그냥 버티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둘째를 갖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워킹맘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평가·승진 등 인사상 불이익'을 꼽은 비율이 42.4%에 달했다. 이어 만성적인 야근 등 과다한 업무(32.3%), 예측하지 못한 야근이나 회식(29.9%), 미래 경력에 대한 불안감(29.9%) 등 순으로 나타났다.

기획취재팀=김수미·백소용·이태영 기자 leolo@segye.com

◆'둘째 출산=직장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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