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록다방, 라디오 스타 그리고 김삿갓

입력 2011. 2. 28. 12:07 수정 2011. 2. 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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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혜준 기자]

ⓒ 유혜준

영월역에서 영월대교를 건널 때 고개를 들어 영월읍 쪽을 바라보면 보인다, 두 남자의 얼굴이. 활짝 웃고 있는 중년의 남자들. 영화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그걸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저 남자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제(2월 17일), 단종 유배지 청령포에서 다시 영월읍내로 돌아와 버스터미널 부근의 모텔에서 묵었다. 이 모텔 입구에는 태권도 선수들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다시 고개를 갸웃. 영월에서 태권도 대회가 열리나? 태권도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왔단다. 어쩐지, 모텔에 들어가는데 앳된 여학생들 서넛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니.

단체로 투숙한 태권도 선수들 덕분에 모텔은 소란스러웠다. 밤늦게까지 어지럽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른 새벽에도 그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들 목소리와 함께.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텔 방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 소음이 짜증스러웠을 텐데,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다.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싶었다.

영월읍은 아주 작았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도로에서 곧장 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그 사거리를 따라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빵집이 있고, 다방이 있고, 옷가게가 있고, 음식점이 있고, 패스트푸드점도 있었다. 빵집은, 서울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체인점들이었다. 동네 빵집은 여기서도 사라졌나, 했는데 영월대교로 가는 길에 하나 남아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그 집에서 빵을 샀다.

유오성 곁에 앉아 사진 찍고 싶게 만드는 길

요리골목

ⓒ 유혜준

영월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요리골목'을 찾아냈다. 허름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담을 따라 주차되어 있었다. 그 한쪽에 벽화가 그려진 어느 집 담이 보였다. '이야기가 있어 걷고 싶은 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골목. 골목이라고 하기에는 좀 넓은 편이다.

이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서 한 생각. 벽화를 온전하게 보여주려면 주차된 자동차가 없어야 하는 거 아닐까. 다른 생각은 자동차도 생활의 일부니 주차된 것도 거리 풍경 일부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요리 골목은 60~70년대 탄광촌이 있던 시절, 먹자거리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하나,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더께가 되어 내려앉아 있다. 그곳에 벽화를 그리고, 조각상을 세워 소설가 이태준이며, 시인 안도현, 그리고 영화배우 유오성을 만나게 한다.

하지만 기대는 금물. 거리가 짧고,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는 않으니, 감안하길. 그래도 걸음을 멈추고 서성이게는 한다. 유오성 곁에 앉아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고. 기대가 크지 않아서 인지, 내 맘에는 들었다. 특히 간판 위에 달랑 올라앉은 염소와 개가. 그들이 염소탕과 보신탕을 의미할 지라도.

술 권하는 영월?

ⓒ 유혜준

요리골목 벽화

ⓒ 유혜준

청록다방

ⓒ 유혜준

거리를 잠깐 걷고 다시 시외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청록다방을 지난다. 그 다방, 영화 < 라디오 스타 >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박중훈 주연의 < 라디오 스타 > 촬영지가 영월이었다. 그래서 두 남자가 활짝 웃는 얼굴이 건물 벽화가 되어 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청록다방도 영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영월에 가면,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영화 < 라디오 스타 > 를 떠올리면서 청록다방을 지날 수밖에 없으리라. 하긴 영월 관광안내지도에도 < 라디오 스타 > 홍보는 빠지지 않는다. 영화 촬영장소가 꼼꼼하게 인쇄되어 있으므로. 그 장소들은 생활의 냄새가 물씬 나는 곳들이다. 미용실, 꽃집, 철물점, 중국음식점 등.

버스정류장에서 고씨동굴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곳까지도 걸어가면 좋겠지만, 13km가 넘는 거리니 가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릴 터, 아무리 걷기를 즐긴다지만 아무 때나 무작정 걸을 수야 없지.

동굴은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다. 강 위에는 튼튼한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에 김삿갓 만화가 그려져 있고.

어제는 가는 곳마다 단종을 만났는데, 오늘은 김삿갓이다. 여기에도 김삿갓, 저기에도 김삿갓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씨동굴을 둘러보고 김삿갓 유적지에 갈 예정인데 김삿갓이 벌써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삿갓 유적지가 있는 곳은 아예 면 이름을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바꿔버렸다.

전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혹한 것이었을 터

나무 뒤 벤치에 앉아 있는 이가 배우 유오성. 동상이다. 그는 영월 출신이다.

ⓒ 유혜준

영월을 찾는 관광객들은 기억하기 쉽다고 하겠지만, 김삿갓면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아 금방 그 명칭이 튀어나지 않는단다. 하동면이 먼저 나와, 라고 말한다.

평일 오전 시간대, 동굴은 한산했다. 입구에서 표를 내미니 펀치로 구멍을 뚫어준다. 배낭을 입구에 있는 보관함에 밀어 넣고 카메라까지 집어넣었다. 사진촬영 금지라니 무겁게 들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고씨동굴을 한 번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40~50분 정도. 낮은 곳이 많아서 머리를 다칠 염려가 있으니 안전모를 꼭 써야 한단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하얀 헬멧을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둠이 익숙지 않아 내부가 잘 안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익숙해진다. 솔직히 동굴 둘러보는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쯤은 들어가 봐야지, 해서 갔다. 한데, 기대이상이다.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이 동굴,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가 난을 피하러 들어왔다 해서 '고씨동굴'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나게 넓다. 고씨 일가가 거주하던 거실이라는 곳은 평평하면서 널찍하다. 식구가 몇이나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열댓 명은 족히 앉을 수 있겠다. 이곳에 앉아 왜군이 물러가기를 기다렸겠지. 왜군이 혹시나 동굴 안으로 들이닥치는 건 아닐까, 겁을 먹고 숨을 죽이고 있었겠지. 전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혹한 것이었을 터.

고씨동굴 입구

ⓒ 유혜준

내부는 철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철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동굴 깊숙이 들어간다. 지금이야 이렇게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해놨지만 임진왜란 때는 잘못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기 딱 알맞았을 것 같다. 동굴 안으로 기어들다가 이 길이 아닌가베, 하면서 돌아 나오길 수십 차례 하지 않았을까? 나 같은 길치는 들어갈 때마다 길을 잃고 헤맸을 거 같다. 아마도 동굴 벽에 길 표시를 했겠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난 해 여름에 다녀왔단 터키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를 떠올렸다. 외부의 침입을 피해 땅 아래 도시를 만들어서 숨어 있던 사람들. 이 동굴이 그 지하도시 못지않은 규모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물길이 흘러든다. 맑은 물이 잔뜩 고인 웅덩이가 있는가 하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도 있다. 숨어 있기 아주 좋은 장소가 맞긴 맞는다. 식량만 있다면 이곳에 아주 오래도록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겠구나, 했다. 어둠이 낯을 익히려 할 때, 동굴을 빠져 나왔다.

고씨굴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시간표를 확인한다. 다음 목적지인 김삿갓 유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시간표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겠다. 지도만 봐서는 어느 동네가 어느 동네인지 알 수가 있나. 유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없으면 김삿갓 면사무소가 있는 동네로 가서 걸어가자, 싶어서 삼십 분 가량 기다려 옥동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한 정류장 가서, 내렸다.

김삿갓 아들이 그의 묘를 옮겨오지 않았더라면

ⓒ 유혜준

버스에 올라타면서 운전기사에게 김삿갓 유적지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안 간단다. 유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기사 아저씨 왈, 다음에 내려서 다음 버스를 타면 유적지까지 가니 그 버스를 타라는 것이다. 30분쯤 기다리면 온다고. 버스비까지 환불해준다. 옥동에서 김삿갓 유적지까지 너무 멀기 때문에 버스를 타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그냥 타고 가도 되는데... 너무 친절하시다. 그래도 버스비를 환불해주는데 내려야지.

2차선 도로가 뻥 뚫린 버스정류장에 서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데, 멀거니 서서 기다리느니 천천히 걷자, 했다. 덕분에 걸어가다가 버스를 놓쳤다. 버스가 오기에 타려고 달려가니, 휭하니 가 버린다. 아저씨, 쫌 기다리지. 버스는 갔고, 다시 걸을 수밖에. 한두 시간 걷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날씨, 맑음. 어제는 안개비가 흩어지더니 오늘은 하늘이 말갛게 개었다. 햇볕은 따사롭게 어깨 위로, 배낭 위로 쏟아진다. 횃대에 앉은 수탉이 눈을 반쯤 감고 졸기 좋은 날이다. 나도 그렇게 앉아서 졸고 싶어진다. 도로 아래는 동강이 길게 이어져 있다. 걸으면서 길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강을 따라 걷고 있는 것 같다. 강은 아직 풀리지 않아 얼음이 떠다니고, 한쪽에는 눈이 덮여 있기도 하다.

ⓒ 유혜준

대야리, 대야대교에는 죽장에 삿갓 쓰고 괴나리봇짐 짊어진 김삿갓이 입을 벌린 채 서 있다. 영월의 캐릭터는 김삿갓이요, 하는 것처럼. 이런 김삿갓, 김삿갓면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다리마다 입구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걸은 뒤, 김삿갓 유적지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안 타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고, 고개가 너무 가파르다. 버스는 굽이치는 동강을 따라 가파른 산길을 달리는데,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겨울에 눈 많이 오면 이 길 엄청나게 위험하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름보다는 김삿갓으로 유명한 난고 김병연. 그는 평생을 풍류가객으로 떠돌아다니며 산 것으로 유명하다.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항복을 한 뒤 역적이 되어 집안이 몰락하였다. 가족이 몰살할 뻔 했으나, 하인 김성수가 그를 업고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장성하여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하필이면 조부 김익순을 비난하는 글을 써서 급제를 하게 되었다. 물론 조부인 것을 몰랐으니 그리 했을 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라 전국을 떠돌면서 살았다. 말이 쉬워 풍류가객이지, 그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영월에 그의 무덤이 있으므로, 무덤 부근에 유적지를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 김삿갓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그의 생가가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양주니 진짜는 아니다. 김삿갓이 실제로 죽은 곳은 전남 화순이라 처음에는 그곳에 묻혔으나, 그의 아들이 그를 영월로 옮겨왔다고 한다.

김삿갓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한 생각. 아들이 그의 묘를 옮겨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그의 묘는 앞이 툭 트인 것이 자리를 참 잘 잡았다

ⓒ 유혜준

사람들이 김삿갓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하는 것은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리라. 역적으로 몰린 집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며, 조부를 비난하는 글로 과거에서 급제, 그리고 바람처럼 떠돌면서 산 일생.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소재로 삼기에 딱 알맞지 아니한가.

김삿갓 문학관에 들어가니 1950년대부터 출간된 김삿갓 책이 전시되어 있는 게 눈길을 끈다. 낡을 대로 낡은 오래된 책을 보니, 중학생이었을 때인가, 시골 외갓집에 갔다가 외할아버지 벽장에서 찾아냈던 김삿갓 책이 떠오른다. 그의 일대기를 쓴 책이었는데, 세로쓰기였다. 오래 묵은 먼지 냄새가 나는 책을 심심해서 펼쳐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게 재미있는 거라.

그가 쓴 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여기저기 떠돌면서 시를 써서 밥을 얻고, 술을 얻고, 잠자리를 얻었다는 내용은 기억난다. 빼어난 시를 지어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던가. 김삿갓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외갓집 안방에 목침을 베고 모로 누워서 시조를 읊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물론 김삿갓 시는 아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하던 시조였지.

김삿갓 묘

ⓒ 유혜준

김삿갓 묘는 앞이 툭 트인 것이 자리를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마을 아래가 다 내려다 보였다. 뒤쪽은 산. 이런 자리가 명당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오후 다섯 시가 채 안 된 시간. 다시 영월읍으로 돌아가 하루를 더 묵을 작정인데, 버스는 7시 20분에 나간단다. 버스가 하루에 다섯 번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버스를 타려면 족히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느니 걸어 나간다, 했다. 그런데 김삿갓 묘 앞에서 만난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슬슬 걸어 내려가고 있으면 퇴근하면서 태워다 준단다. 하지만 영월읍내까지는 아니고, 88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까지만. 아저씨가 가는 방향과 내가 가는 방향이 정반대이므로.

"거기에 가면 버스가 많아, 여기보다는. 가게에서 물도 얻어 마시면서 기다리면 될 게야.

"

김삿갓 와석상회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서성이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가게 쥔아줌마가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라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이 날, 버스를 탈 팔자(?)가 아니었나 보다.

가게 안에서 기다리다가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정류장 표지판 앞에 서 있으려니 'KT' 로고가 붙은 차가 지나가다가 후진해서 우리 앞에 선다. 이 차를 얻어 타고 영월읍내로 돌아갔다. 태워주셔서 감사.

김삿갓 술도 있었다니, 그의 인기가 가히 짐작이 된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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