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왜 '만만한 것'에만 분노하나

김은남 편집국장 ken@sisain.co.kr 입력 2011.03.31. 14:22 수정 2011.03.3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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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 나는 가수다 > 소동을 지켜보다가 "우리도 '너는 기자냐' 이벤트나 만들어볼까?"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규칙은 간단하다. 기자들이 독자 심사단을 앞에 두고 '기사 배틀'을 벌인다. 단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이종(異種) 영역의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치부 기자는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 기사를 쓰고, 사회부 기자는 트렌디한 패션 기사를 쓰는 식이다.

지금 장난하냐고 뭐라 하시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최근 벌어진 상황이 이해 난망이었다. 물론 분노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나 또한 이소라·박정현의 열창에 깜박 넋을 잃었던 한 사람이다. 그래서 담당 PD가 범한 순간의 오판이 더 안타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 나는 가수다 > 에 쏟아지는 비판의 과잉이 불편해졌다. 언제부터 예능 프로그램이 '공정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됐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이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에도 '공정'은 곳곳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정부 들어 유독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던 공권력은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대학생 학술 단체에 해묵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려다가 이게 여의치 않자 일반 교통방해죄까지 덮어씌워 이들 일부를 잡아들였다. '공평 과세'를 앞세워온 국세청은 스스로 불공정한 뒷거래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렸다. 국세청 직원들이 해외 도피 중인 전 청장을 위해 대기업들로부터 '자문료' 걷는 일을 수발했다는 것만도 기막힐 일인데, 그 대기업들이 당시 세무조사를 받는 등 국세청과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그뿐인가. 돌이켜보면 고위직 인사에서 입학사정관 제도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이 정부가 공정한 룰을 세우겠다며 벌인 일마다 특혜 시비 내지 현대판 음서제 논란의 온상이 되곤 했다. 그러니 예능 프로그램에서라도 공정한 룰이 제대로 관철되기 바라는 열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탤런트가 해병대에 입대한다고 온 나라가 환호작약하는 거나, < 나는 가수다 > 가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되는 거나 저변에 깔린 민심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조금은 서글퍼진다. < 나는 가수다 > 담당 PD를 하차시킨 방송사 사장이 사회 비판에 앞장서온 프로그램들을 폐지시키고, 제작진을 이산가족 만드는 동안 우리 대다수는 별일 없이 살아왔다. 국가보안법은 머나먼 남 일이고, 국세청은 본래 그런 종자들이니 관심 밖이라는 식이다. 우리는 어쩌다 만만한 것에만 분노하게 된 것일까.

김은남 편집국장 /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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