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0년만에 나온 답은 백제였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입력 2011.04.09. 03:07 수정 2011.04.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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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속공예술 뿌리 '신라냐 가야냐' 논쟁

'숙제'가 60년 만에 해결됐다.

' 일본 금속공예술의 기원이 신라냐 가야냐'를 두고 팽팽했던 고고학계의 논란이 작년 11월 출토된 유물 1점으로 풀리게 됐다. 일본 5세기 초~중반 무덤인 오사카 시치칸(七?l)고분에서 용(龍)무늬 금동 허리띠(교토대박물관 소장)가 출토된 것은 1947년. 일본 고고학자들은 선명하게 새겨진 용무늬를 보며 감탄했다. "이 무늬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베리아 기마민족이 한반도를 거쳐 가져온 기술이라는 설이 지배했다. 1990년대 초 신라 무덤인 강릉 초당동 고분 등에서 용무늬 금동 허리띠가 출토되면서 '신라기원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한쪽에선 제철 강국인 가야에서 넘어왔다는 이론도 대두됐다.

논란은 이제 끝나게 됐다. 지난해 11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 대상 지역인 충남 연기군 나성리 금강변의 초기(4세기 후반~5세기 초) 백제시대 목관묘(木棺墓)에서 출토된 금동 허리띠에서 국내 최고(最古)의 용(龍) 문양이 확인된 것.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홍종)가 발굴조사한 이 유물의 X선 촬영 결과 용 문양이 선명하게 확인됐다. 금속에 새겨진 국내 최고의 용 문양으로, '일본 문화의 원류는 역시 백제'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단서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삼국시대 장신구 전공)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금속공예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 고분시대 금속공예술의 기원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런 형식의 용무늬 금동 허리띠는 시치칸 고분을 비롯해 일본에서 3점, 신라 무덤에서 3점이 출토됐다. 이번에 발견된 용무늬 허리띠는 이 중 가장 시기가 이르다.

이 교수는 "이번에 출토된 백제 허리띠의 용 문양과 일본 시치칸 고분의 용 문양은 동일한 도안"이라며 "백제의 선진문화가 신라와 일본으로 각각 전파돼 일본 고분시대의 금속공예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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