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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이 그들을 안았을때.. '300명의 거대한 노래방'이 들썩였다

소록도=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입력 2011. 04. 16. 03:15 수정 2011. 04. 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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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 약속 지키려.. 조용필, 소록도에 가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15일 오후 3시 전라남도 고흥군 국립 소록도 병원 우촌 복지관. 가왕(歌王) 조용필 이 300여명 한센인 앞에서 '친구여'를 부르다 갑자기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오빠" "조용필 선생"을 외치는 환호성이 폭발했다. 조용필은 병으로 인해 형체를 알 수 없게 돼버린 한센인들의 손과 일그러진 얼굴을 일일이 잡고 쓰다듬으며 포옹했다. 청중이 그런 조용필의 귓가에 대고 외쳤다. "지난해 한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내년에도 꼭 와주세요." 조용필은 객석을 두 바퀴 돌며 모든 관객과 스킨십을 나누고 나서야 무대에 다시 올라섰다. 그리고 노래를 이어갔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나자. 그리운 친구여."

조용필의 소록도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해 5월 5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문해 자신의 노래 2곡을 불렀었다. "지난번 이분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에는 나만의 무대를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이들의 친구, 동생, 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오후 2시 첫 곡 '단발머리'가 흘러나오면서부터 객석은 달아올랐다. 조용필이 "신청곡을 받아 노래하겠으니 마음껏 춤추면서 즐기라"고 하자 객석에서는 "창 밖의 여자요" "돌아와요 부산항에요" "허공이요"라고 외쳐댔다. "큰일났네. 이걸 다 어떻게 해"라고 짐짓 난감한 척하며 웃던 조용필은 처연하게 '허공'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몇몇 관객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듯하자 조용필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작년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안 불러서 항의를 많이 받았다"며 "꽃 피이이는 동백서엄에"를 구성지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와서 춤추세요. 빨리요"라고 흥을 돋웠다. '허공'을 들으며 감상에 젖었던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로 호응했다. 20여명은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춤을 췄다. 손가락과 다리 일부가 없고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김용덕 할머니(82)는 휠체어에 앉아 어깨춤을 췄다. 그는 "71년간 이 병원에 있었다. 앞은 안 보여도 참을 수가 없었다. 무대 앞에서 몸을 흔들고 싶었다"고 했다.

조용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화음을 맞췄다. 한센인들은 명확하지 않은 발음이었지만 조용필 이상으로 목청을 높였다. 가왕과 함께하는 거대한 '노래방'이었다.

1시간여에 걸쳐 10여곡의 노래를 부른 조용필은 지난해 만났던 한센인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따봉이라고 소리치며 노래를 따라 하던 그분은 어디 갔느냐"고 묻자 한 관객이 "그분이 요즘 몸이 많이 아파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다"며 답했다. 조용필은 "부디, 부디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뒤 "또 우리 봐요"라며 인사하고 무대를 떠났다.

한센인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조용필을 붙잡고는 앞다퉈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조용필은 환하게 웃으며 일일이 요청에 응했다. 병원에 13년째 머물고 있는 이강진(60)씨는 "옛날부터 조용필을 좋아했는데 오늘의 감동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며 "이런 대가수가 우리와 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켜준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했다. 김성문(85)씨는 "45년간 이 병원에 있었는데 이토록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외부인이 우리 손을 이렇게 따뜻하게 잡아준 적이 과연 있었나 싶다"고 했다.

조용필은 앞서 소속사측에 "공연 사실을 절대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알 수 없는 경로로 14일 오후 인터넷을 통해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조용필씨는 아예 날짜를 바꾸는 것까지 심각하게 검토했었다"고 했다. 조용필은 공연 직후 기자와 만나 "꼭 생색 내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 (공연소식이) 알려지는 게 싫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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