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9월 총공격' 국군에 제보한 인물은

임기창 2011. 6. 24. 05: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홍윤희가 제보' 美 전쟁사 권위자 애플먼 메모 발견

국방부 공식 기록엔 `인민군 소좌 김성준'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6ㆍ25전쟁 초반인 1950년 북한군의 `9월 총공격' 계획을 국군에 제보, 전세 역전에 이바지한 인물이 재미교포 홍윤희(81)씨라는 주장(연합뉴스 2000년 6월7일 보도)을 뒷받침하는 문건이 최근 발견됐다.

지금까지 미국과 한국 등의 공식 전사(戰史)는 9월 총공격 제보자를 홍씨가 아닌 당시 인민군 13사단 작전참모 김성준 소좌로 기록해 왔다.

홍씨는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6ㆍ25 전쟁사 관련 자료인 '로이 애플먼 컬렉션'을 살펴보다 1950년 당시 자신이 9월 총공격 계획을 제보했고, 이를 미군이 중요 정보로 취급했다는 정황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애플먼 컬렉션은 6ㆍ25 전쟁사의 최고 권위자인 로이 애플먼이 작성한 전쟁 관련 기록 모음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컬렉션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홍씨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11월 미 국립문서보관소를 통해 이를 입수했다.

당시 미 육군 중령이었던 애플먼은 1954년 3월5일 이 메모를 유진 화이트 중령 앞으로 보냈다. 본문이 "귀하가 관심을 두는 사안과 관련해"로 시작한다는 점으로 미뤄 화이트 중령이 애플먼에게 홍씨에 관한 정보를 문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먼은 "한국 육군 간부후보생 홍이 북한 인민의용군에서 탈출해 1950년 9월1일 새벽 가산 인근에 주둔하던 아군에 귀순, 인민군이 열흘 안에 부산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그날 밤이나 다음날 밤 총공격을 감행할 계획임을 알렸다는 이야기를 1953년 11월 미 극동사령부(FEC) 정보 소식통한테서 들었다"고 밝혔다.

애플먼은 "홍의 제보 내용은 워커 장군(당시 미 제8군 사령관)과 도쿄 소재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즉각 전파됐다"며 "제보 내용은 인민군 총공세 위기에 따라 워커 장군이 해병대 일선 배치를 명령한 조치를 놓고 그날 밤 GHQ와 해군 간 벌어진 논쟁에서 거론됐다"고 전했다.

애플먼은 홍씨의 제보를 "다양하고 귀중한 정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극동사령부 정보당국과 연합통번역과(ATIS) 포로심문보고서에서 홍씨의 보고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홍의 제보 기록이 사라졌거나 기밀로 분류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애플먼은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홍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고 ATIS 포로심문보고서 895호에 있는 인민군 9월 총공격 관련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ATIS 포로심문보고서 895호는 1950년 9월2일 새벽 귀순한 김성준 소좌에 대한 심문 기록으로, 김 소좌는 이 보고서에서 총공격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애플먼이 저술한 6ㆍ25 전쟁사를 토대로 인민군의 9월 총공격 제보자를 김 소좌로 기록했으며 그의 귀순을 "시기적으로 우리에게는 가장 알맞은 때 결행된 적절한 귀순"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애플먼의 메모를 검토한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 "김성준 소좌가 총공격을 제보했다는 부분은 애플먼이 6ㆍ25 전쟁사의 최고 권위자이므로 그의 기록을 인용했고 1950년 9월 당시 상황을 소개하는 가운데 포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당시 미8군 예하 정보부대에서 북한군 동향을 수집한 결과 모든 전선에 걸쳐 총공세 조짐이 감지됐다"며 "몇개 군단 규모의 움직임을 어느 한두 명의 제보로만 파악했을 리는 없지않나"라고 반문했다.

홍씨는 20세였던 1950년 당시 보병학교 입교를 앞두고 대기하던 중 낙오하면서 목숨을 구하고자 인민의용군에 가담했다가 김일성의 9월 총공격 지시 내용을 접하고 탈출, 국군에 귀순 후 인민군의 동향을 알렸다.

그러나 같은 해 9월11일 부산에서 간첩 혐의로 헌병에 연행돼 고문을 받고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돼 1955년 출소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심 신청을 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홍씨는 "애플먼의 메모를 근거 자료로 첨부해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재심을 신청했다"며 "당시 나를 심문한 이들과 심문 기록 등 증인과 증거를 찾아 명예를 회복하도록 정부가 힘을 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포토 매거진>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