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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바닥 춤이면 어때, 멋지면 돼' 라던 롤랑 프티

최민우 입력 2011. 07. 12. 00:07 수정 2011. 07.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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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세계적 안무가 프티

[중앙일보 최민우]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롤랑 프티(Roland Petit)가 10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프티는 영화 '백야'에서 주인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추는 춤을 구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앙포토]

1978년 3월 이화여대 강당. 세계적인 발레 안무가 롤랑 프티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클래식 발레 전막 공연이 막 올라가기 시작하던, 걸음마 단계였다. 예쁘장한 튀튀와 토슈즈를 입은 무용수들이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주리라 관객들은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처음 무대에 울려 퍼진 건 핑크 플로이드의 음울하고 전위적인 록 음악이었다. 음산한 분위기가 압도하는 가운데 조명은 어두컴컴했고 회색 빛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기괴한 동작과 표정으로 무대를 장악해 갔다. '이건 뭐지?'라는 반응으로 객석은 술렁였다. 충격 그 자체였다.

 10일(현지시간) 87세의 나이로 사망한 롤랑 프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발레 안무가라는 의미 이외에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의 발레단이 한국에서 공연한 건 모두 네 차례. 특히 78년 첫 공연은 한국 무용사(史)를 장식할 만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이종호 무용평론가는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관객은 물론 무용가들도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했다. 발레가 박제화되지 않고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음을 각인시켜 주었다. 한국에 모던 발레를 전도해 준 이가 롤랑 프티였다"고 전했다.

 1924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프티는 아홉 살 때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에 들어갔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군무(16세), 솔리스트(19세)로 착실히 성장했다. 창백하고 기품 있는 얼굴, 여리고 날렵한 몸매 등 "발레하기에 최고의 조건"이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프티는 21세에 발레단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발레단을 만들 만큼 자의식이 강했다. 이후 그는 무용가는 물론, 안무가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추상적인 것을 싫어했다. 문학이나 연극을 원작으로 한 강한 스토리텔링에 개성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발레의 3대 요소는 첫째 음악의 충격, 둘째 스텝의 충격, 셋째 조명의 충격"이라고 할 만큼 극적 상황을 즐겼다.

 뮤지컬 형식을 프랑스 발레에 접목시키는 등 미국과의 공동 작업을 많았다. 프랑스 내에선 "상업주의자로 전락했다"란 비난도 적지 않았지만 프티는 "카지노든, 맨 바닥이든 멋진 춤이면 충분하다"며 코웃음을 쳤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은 '롤랑 프티의 밤'을 공연했다. 프티가 안무했던 '아를르의 여인'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세 편을 엮었다. 공연에 앞서 프티는 "한국엔 좋은 무용수가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설렌다"고 전했다. '롤랑 프티의 밤'은 지난해 국내에서 공연된 최고의 무용 작품으로 꼽혔다. 한국 팬들에게 보낸 프티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최민우 기자 < minwo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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