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파리넬리'

입력 2011.08.04. 22:44 수정 2011.08.0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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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소리를 가진 전설의 카스트라토

[세계일보]

'가면 속의 아리아', '왕의 춤' 등 주로 중세시대 음악영화들을 만들어온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1994년 다국적 합작 '파리넬리(Farinelli, il castrato)'의 감독판이 얼마 전 재개봉했다. 화면을 수놓는 화려한 색감,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은 확실히 큰 스크린, 그리고 고출력으로 들어야 제 맛일 텐데, 언제까지 상영이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 눈과 귀로 확인해 보시길.

변성기 이전, 거세를 통해 중음과 고음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남성가수를 카스트라토라 불렀다. 성대의 순이 자라지 않아 소년의 목소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허파는 성장하여 남성 특유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맑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이들은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16∼18세기 무렵 여성 소프라노의 역할을 대신했다. 영화는 18세기 무렵,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마성의 소리를 가진 전설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삶을 바로크 시대의 완벽한 고증을 통해 그려냈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 카스트라토의 음역을 노래할 수 있는 소프라니스트(남자 소프라노)가 없었던 터라 카운터 테너 데렉 리 레이긴과 메조 소프라노 에바 마라스 고드레프스카의 목소리를 각각 프로그램에 넣어 합성시켰다. 마치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현대기술을 빌려 과거의 종을 복원해낸 셈이다. 중음역부터 고음역대까지 완전히 균질하지는 않았는데, 소프라노 파트는 능숙하지만 카운터 테너 파트가 약간은 흔들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목소리를 합성하는 방법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는 '신의 영역'의 소리였다.

영화에 삽입된 곡들 중 특히 헨델의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음악적으로 카스트라토를 무시해왔던 헨델을 감동시키는 대목에 흘렀던 이 슬프고 절도있는 노래는 CF 삽입은 물론 여러 사람들이 녹음하면서 국내시장에서 재발견된다. 본 곡은 원래 주로 여성들에 의해 불려졌으며 실제로 카스트라토에 의해 불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앨범에는 헨델의 '리날도' 서곡, 그리고 '사랑하는 신부여' 또한 수록되어 있다.

파리넬리의 형이자 작곡가인 리카르도 브로스키의 곡들 또한 다수 삽입됐다. 인트로 트랙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 '나의 입술을 믿을 수 없다면', 그리고 '행복의 그늘에서' 등의 아름다운 선율 또한 음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헨델에 못지않았던 대가 페르골레시, 그리고 파리넬리의 성악교사이자 작곡가인 포르포라의 곡들 또한 수록해냈다. 이후에는 작품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두 장의 CD로 재발매되기도 했는데, 바흐의 곡을 비롯한 기존 사운드트랙에서 누락됐던 음원들을 다시금 채워놓았다.

양성을 모두 정복한, 혹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의 고뇌에 대한 부분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중세시대 카스트라토를 천시하는 정통파의 태도와 현재 다시 합성시켜 복원해낸 이 목소리에 대해 몇몇 클래식 애호가들이 평가 절하하는 대목은 묘한 기시감마저 든다. 물리적 방법(거세)에서든 기술적 방법(합성)에서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려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소리를 요구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중성적 존재, 혹은 영화 속 헨델의 말처럼 그는 매혹적인 괴물에 다름 아니었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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