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전 조선 주필, 경향에 게재한 첫 칼럼 반응은?

2011. 8. 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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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서 공감 못 얻어"…"예전보다 덜 극우적"

[미디어오늘 안경숙 기자]

"진보 진영이 뜨끔할만한 비판을 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공감을 얻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조선일보에서 '류근일 칼럼'을 쓸 때처럼 지나치게 극우적인 논지를 펼까 봐 걱정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 경향신문에 첫 칼럼을 게재한 17일, 경향 안팎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류 전 주필은 이날 < 경향논단 - 진보가 사로잡힐 때 >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진보 세력이 권력은 물론 문화, 교육, 종교, 출판, 논술학원, 강남, 사관학교 등에 들어가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다양성을 한 뭉치로 뒤섞어버렸으며, 이런 뒤섞임이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를 교통마비의 덫에 잠기게 한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보를 종북(從北)으로부터 칼같이 끊어낸다면…유의미한 진보가 구름을 벗어" 나겠지만 "(종북을) 끊어버리기엔 뒤섞임이 너무 끈끈한 것 같다"면서 청년실업․등록금․비정규직 등 보수 세력에 불리해 보이는 이러한 정세의 '블랙홀' 속으로 "합리적 진보의 위상이 오히려 더 먼저 빨려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8월17일자 경향신문 31면

경향의 한 기자는 "보수 논객이라 하더라도 다양성을 포용하는 차원에서 오피니언 지면을 열어두자는 데 대해 내부에서 큰 반대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첫 번째 칼럼은 내용에 있어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당초 류 전 주필을 필진으로 영입하자는 기획을 할 때 보수의 눈으로 보수를 비판하고, 때로는 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경청할 만한 지적을 해 주기를 기대했다"며 "오늘 칼럼은 조선일보에서 썼던 것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은 시각을 바탕으로 진보 진영의 공감을 얻기엔 어려운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강기석 전 신문유통원 원장은 "북한의 체제와 인권 문제는 대한민국의 98%가 비판하고 진보 진영도 충분히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안인데, 류 전 주필은 그렇지 않은 1%를 들어 대다수 진보 진영을 싸잡아 공격한다"며 "그런 칼럼을 내가 왜 경향신문에서 봐야 하느냐"고 개탄했다.

경향이 류 전 주필을 필진으로 영입한 데 대해서도 여론이 분분하다.

강기석 전 원장은 16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향의 '극우논객 모시기'에 대해 '균형강박증', '헛발질'이라고 혹평했다.

강 전 원장은 "류근일 대신, 내가 더 자주 보고 싶은 경향의 칼럼니스트가 있고, 경향에 쓰고 싶어도 불러주지 못해 못 쓰는 더 훌륭한 진보논객들이 있지 않은가"라며 "내가 후배들에게 이번 결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기로 결심한 건 선배로서가 아니라 최소 35년 충성독자의 당연한 결론"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경향의 한 관계자도 "여론을 수렴하는 오피니언 지면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류 전 주필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 극우 인사인데, 경향이 극우를 위한 장까지 마련해 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한 기자도 "신문이 공론장 역할을 하기 위해 토론과 지면(일반 기사)에서 합리적 보수를 불러 의견을 듣는 건 모르지만, 보수언론이 보수적 인사들의 주장을 충분히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개혁언론이 그들에게 여론면을 내주는 건 지면낭비"라고 꼬집었다. 이날 류 전 주필의 칼럼에는 오후 4시30분 현재 1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내용은 "집과 회사에서 보던 경향 2부 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반면, 경향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한겨레의 또다른 기자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며 "품격있는 보수가 진보 진영에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고, 진보 진영 역시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류 전 주필의 첫 칼럼에 대해서는 "북한과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는 진보 진영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진보 진영에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류 전 주필이 자신의 생각을 조근조근 얘기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경향신문에 게재하는 첫 칼럼이어서인지 너무 조심하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할 수 없게 썼다"고 평가했다.

경향의 한 기자는 "(외부의 논란은) 지극히 당연하고 어느 정도의 비난은 각오했던 부분"이라며 "오히려 그런 논란들이 장기적으로는 오피니언면을 비롯해 경향신문의 지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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