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금품에 얼룩진 '미스코리아의 꿈'

정락인 입력 2011.09.07. 09:43 수정 2011.09.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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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7년에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가 올해로 55회째를 맞았다. 지난 8월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2011년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렸다. 본선 대회에는 각 시·도에서 지역 예선을 통과한 미녀와 해외 지역 예선을 거친 재외동포 출전자까지 총 60명 내외가 출전한다. 올해는 국내 14개, 국외 7개 지역에서 예선을 거친 54명의 후보들이 참가했다.

지난 8월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1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후보들이 드레스 자태를 뽐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연합뉴스

본선에서 1차로 15명을 선발하고, 2차 본 심사를 거쳐 7명의 입상자를 선발해 최종적으로 진·선·미를 뽑는다. 선발된 미녀들은 1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이 되어 세계 미인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의 위상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성 상품화' 논란이 제기되자 2002년부터 공중파에서 퇴출되었고, 2년 뒤에는 수영복 공개 심사가 폐지되었다. 올해는 '방송 사고'가 잇따르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전국 및 해외 각지에서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 시사저널 > 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치러진 경기 지역 예선에서 심사위원과 참가자 사이에 부적절한 금품 거래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명문 여대에 다니는 김 아무개씨(25)는 지난 4월에 치러진 경기 지역 예선에 출전했다. 김씨는 예선은 통과했으나 지역 본선에서 탈락하면서 전국 대회에 출전하겠다는 꿈이 좌절되었다.

김씨는 기자와 만나 심사위원에게 돈을 주게 된 내막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여느 여성과는 달라보였다. 늘씬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강약이 잘 조절된 말투가 예사롭지 않았다. 김씨는 오랫동안 모델 생활을 했다. 지난해에는 '슈퍼모델 대회'에 출전해 50위 안에 들었고, 같은 해 '미스 춘향 선발대회'에서는 16명을 뽑는 본선까지 올랐다. 그녀의 꿈은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미인대회 출전 경험을 살려 올해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나이는 올해 스물다섯이다. 미스코리아 출전자들이 보통 20~23세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 도전 기회였던 셈이다. 김씨는 개명까지 하면서 미스코리아에 도전했다.

그는 차근차근 대회 출전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피부 관리를 위해 서울 강남의 ㄹ클리닉을 찾았다. 이곳은 여성 전문 성형 클리닉으로 주요 언론에도 소개되는 등 꽤 유명세를 타는 곳이었다. 특히 지방 이식을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김씨는 정 아무개 원장과 대화하다가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정원장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자신이 잘 안다는 사람을 한 명 소개시켜주었다. 그는 수년 전 미스코리아 미스 경기 진에 뽑혔던 이 아무개씨(26)였다. 그는 경기도를 대표해 전국 본선에도 나갔다.

김씨는 '전 미스코리아 경기 진'이라는 말에 부푼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대회 준비에 좋은 정보를 알려줄 것 같아서였다. ㄹ클리닉 정 아무개 원장이 알려준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이씨는 "내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부 정보를 알려주겠다. 나한테 레슨을 받으면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두 번에 걸쳐 5백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김씨는 어머니와 협의해 두 차례에 걸쳐 2백50만원씩 5백만원을 이씨의 개인 통장으로 입금했다.

김씨는 경기 지역 예선을 무난히 통과했다. 이씨는 여기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경기 지역 예선이 치러진 후인 4월20일 이씨가 김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수고 많았어, ○○이가 1등"이라고 보냈다.

이씨는 또 "네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가 되었다"라는 말까지 전했다고 한다. 이날 예선 참가자 23명 중 20명이 통과했고, 세 명만 탈락했다. 혹시 이씨의 점수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김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나 정도면 예선은 혼자서도 충분히 통과했다. 그리고 대회 심사에서는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를 제외한 평균 점수를 환산해 채점한다. 설사 이씨가 나한테 최고 점수를 주었다면 실제 점수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씨의 점수가 예선 통과에 미친 영향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면서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씨. 위 사진은'심사위원' 이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시사저널 전영기

"개인 레슨 명목까지 합쳐 1천만원 넘게 써"

미스코리아 대회 주관사인 한국일보 사업부 관계자는 "지역 예선에서는 1등이 의미가 없다. 서류 심사를 거치고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정도이다. 그리고 '심사위원 만장일치 1등'이라는 말도 틀리다. 평가 시스템으로 볼 때 심사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지역 본선에서 탈락하면서 이씨와의 사이도 틀어졌다. 김씨는 "이○○씨가 알려준 정보는 거의 틀렸다. 연기 레슨, 대회 레슨, 스피치, 워킹 등을 지도해주기로 했는데, 해준 것이 없었다. 그나마 해준 것이라고는 대회 일정과 스케줄 진행이었는데, 이것마저도 틀렸다. 원래 경기 예선이 6월이라고 했는데, 실제는 4월에 했다. 나는 사기를 당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이씨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씨에게 준 5백만원뿐만 아니라 이씨가 권유해 산 액세서리(2백50만원), 드레스(4백만원) 등 불필요하게 들어간 돈이 1천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더욱이 이씨의 말에 따라 대학을 휴학하면서 졸업이 한 학기 늦어지게 되었다.

김씨측은 "동영상을 찍어서 지원하라고 해서 냈는데, 알고 보니 나만 동영상을 냈다. 수영복 심사가 없는데도 비키니를 입을 때 필요한 액세서리를 사라고 했고, 화려하고 비싼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해서 고가의 드레스를 샀다. 행사에도 모두 참가해야 한다고 해서, 협찬사 치킨 집에 가서 서빙도 했다. 지역 예선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와 심사위원이 만나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만나주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씨측은 나중에 이씨에게 "돈을 돌려달라"라고 했으나 전화도 받지 않고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의 후배인 조 아무개씨(여)도 레슨비 명목으로 이씨에게 2백50만원을 주었으나 "사기당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씨측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와 5개월 동안 준비했다. 정당하게 레슨을 했고, 그 대가로 5백만원을 받은 것이다. 경기 지역 예선에서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수긍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사기'라는 주장에 대해 전혀 대꾸할 가치가 없다. 예선을 통과한 것은 우리 아이가 잘 가르쳤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쪽(김씨측)에서 남자친구까지 전화해서 '돈을 돌려달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하는 등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전화를 안 받을 이유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심사위원이 참가자와 부적절한 거래를 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시인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지 않았어야 옳다"라고 말했다.

미스코리아 대회 주관사인 한국일보측은 심사위원과 참가자의 금품 거래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업부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한 후 내부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서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 심사위원은 영구 제명시키고, 타이틀이 있다면 박탈하는 절차를 밟겠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회 이미지를 손상한 것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이유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그녀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있으면 예·체능 특기자로 특차 지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락인 / freedo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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