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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의 교훈.. 싼 맛에 물쓰듯 하다 난데없는 날벼락

입력 2011. 09. 27. 17:28 수정 2011. 09. 2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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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정전사태로 국가 전력공급 체계와 전기 낭비의 문제점이 불거졌다. 장차 대규모 정전사태를 피하려면 경제성장률의 1.5배 수준인 전기사용량 증가 추세를 대폭 꺾어야 한다. 일종의 예방주사였던 이번 사태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면 정부가 추진해 온 녹색성장은커녕 지속적 성장도 불가능하다. 정부는 "당장은 전력 공급능력을 키우기 위해 원자력발전 확대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환경단체들은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을 통한 수요의 획기적 감축이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녹색성장 과제 중 에너지 수요관리정책의 성패를 살펴본다.

대규모 정전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공짜 점심' 사례들이 도마에 올랐다. 그중 값싼 산업용 전기를 물 쓰듯 펑펑 쓰던 산업계가 처음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은 수출증대에 기여하는 효자산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부터 3년간 30대그룹 대기업에 전기요금으로 2조9500억원, 연간 약 1조원에 이르는 보조금이 지원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전력 수요관리 실패=국내 전기요금은 전두환 정부 때부터 물가안정을 위한 수단이 됐다. 원자력발전소가 잇따라 완공되면서 낮은 원가로 풍부한 전기공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전기요금은 10차례 인하됐다. 그 결과 82년 이후 물가는 240%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18.5% 오르는 데 그쳤다. 전기와 다른 에너지 가격과의 격차도 벌어졌다. 등유와 도시가스 요금은 2002년 대비 2008년에 각각 123.6%, 28.0% 인상된 반면 전기요금은 5.8%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고착된 전력낭비 구조는 고급에너지인 전기의 과소비, 원전 입지와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숨은 비용, 여타 에너지의 낭비를 초래했다. 특히 2차 에너지인 전기료가 싸니 너도나도 난방용으로 전용했다. 1차 에너지인 석탄, 경유, 가스를 태워 만든 전기를 다시 난방에 쓸 경우 1차 에너지 대비 효율이 30∼4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가정용 전기난방기기 보급이 늘고, 음식·숙박업소에서도 전기온돌 채택이 확산됐다.

싼 산업용 전기는 또한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신규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필요한 산업구조의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정한경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2일 열린 정전사태 토론회에서 "현대제철이 투자한 대규모 전력수요 설비인 전기로가 가동을 시작한 2010년 철강산업 전력수요가 20% 증가했지만 전력수요 예측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녹색성장', 동력을 잃다=녹색성장을 주도하는 청와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올해 초 배출권거래제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그는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나 "당시 배출권거래제를 계획대로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가 좌파로 몰렸다"면서 "내 경력의 어디를 봐도 좌파라고 오인할 대목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만큼 산업계의 반발이 심했다는 말이다.

산업계의 강력한 강제 감축수단인 배출권거래제 시행은 결국 2013년 이후로 늦춰졌다. 지난 4월 국회에 제출된 배출권거래제 법안은 이제 법안심사를 위한 기후변화대응·녹색성장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상태다.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7일 총리실이 주재한 녹색정장 이행점검회의에서 나름대로 냉혹한 자기평가를 내렸다. 녹색성장위는 보도자료에서 "건축물 에너지등급 의무화 등 제도개선 과제는 대부분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도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가격체계, 세제개편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최근 발간한 에너지통계리뷰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억1580만t으로 2009년 대비 8.5% 증가해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6.2%보다 더 높았다. 이런 추세로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인 8억1300만t의 30%를 감축하겠다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원전이냐, 강력한 수요관리냐=정전사태를 단순히 전력공급능력 부족이나 공급시스템의 일시적 미비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9월의 기록적 늦더위뿐 아니라 4월의 긴 꽃샘추위도 '100년 만의 사건'이 아니라 일상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2일 토론회 발제문에서 "기후변화시대에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에 맞춘 전력수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의 쇼크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정부는 원전 확대론을 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현실화될 때까지는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사용될 것"이라고 거듭 원전 예찬론을 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원전 확대에 앞서 수요의 획기적 감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정전사태는 발전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유례없이 긴 늦더위에 대한 예측과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력 수요를 줄이는 수요관리정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전력수요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13년까지 전력예비율이 떨어져 모든 전기시설이 일시에 정전되는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올 것이라는 위기감은 원전에 대한 찬반 진영이 모두 공유하고 있다. 발전소, 특히 원전을 건설하는 데는 계획부터 완공까지 수년에서 십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각각 발전원가의 70%와 50%에도 못 미치는 요금을 내고 있는 산업용 전기와 농·어업용 전기의 요금을 대폭 올리고, 요금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요금이 10% 오르면 연간 전기소비는 4% 정도 줄어든다. 한 해 190억㎾h의 전력량이다. 1조4800억원을 아끼는 것이고, 100만㎾짜리 원전 2.5기를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앞으로 5년간 매년 일정 비율로 전기료를 올리면 원전 추가 건설의 필요성이 없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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