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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고시원 性폭행' 미군 어제 구속.. 피해 여학생이 말하는 '그날 새벽'

입력 2011. 10. 07. 03:29 수정 2011. 10. 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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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move" 놈이 들이닥쳤다.. 4시간 악몽의 시작이었다

[동아일보]

《 고시원방 문손잡이에서 '털컥' 소리가 난 것은 오전 4시쯤이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문을 안 잠갔나?"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보던 임유경(가명·17) 양은 귀를 곤두세웠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낯선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갈색 머리칼을 짧고 각이 지게 자른 서양인이었다. 얼굴이 불그스름한 게 술을 마신 듯했다. 그는 임 양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숙이며 방문을 닫았다. 술 취한 이웃 입주자들이 자기 방을 못 찾고 헤매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문 잠그는 걸 잠시 미루고 임 양은 평소 즐겨 보던 그 토크쇼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리고 1분 뒤 문이 다시 열렸다. 청바지에 파란 셔츠를 입은 방금 전 그 남자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

○ 새벽에 들이닥친 갈색머리 남자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24일 새벽, 임 양이 사는 경기 동두천시 J고시원 입주자들은 "별다른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고시원 총무는 "원룸형 고시텔이라 방음이 잘된다"고 했다. 그날 일로 임 양은 동두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정신과 치료와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5일 본인 동의를 받고 병실에서 만난 임 양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일을 얘기할 땐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갈색머리의 남자는 동두천에 있는 미2사단 소속 K 이병(21)이었다. 그는 고시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모텔에서 동료 병사 3명과 음란 비디오를 보다 혼자 방을 나섰다. 그는 건물을 배회하다 4층에 있는 고시원을 발견했다. 입구 신발장에는 여성용 뾰족구두가 몇 켤레 있었다. 그는 고시원방을 하나하나 열어봤다. 모두 문이 잠겨 있었지만 맨 안쪽에 있던 임 양의 방은 문이 열렸다.

K 이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임 양의 뺨을 후려쳤다. 임 양이 베개와 리모컨을 던지자 K 이병은 책상에 있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는 "Don't move(움직이지 마)"라고 말하며 가위를 벌려 임 양의 얼굴에 갖다댔다. 가위에 손가락을 베여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임 양은 그를 계속 밀쳤다. K 이병은 냉장고 옆에 있던 과도를 잡아 그녀의 목에 들이댔다. "처음엔 술에 취해 그러는 줄 알았는데 술 냄새가 안 났어요. 저를 노려보는 눈의 초점도 뚜렷했어요." K 이병은 끝내 임 양을 성폭행했다.

K 이병은 임 양의 방에서 4시간 동안 머물며 변태적 행위까지 했다. 혐오감에 치를 떨고 있는 임 양에게 K 이병이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혼자 중얼거리더니 'I'm sorry(미안하다)'라고 했어요." K 이병은 임 양의 손에 난 상처에도 밴드를 찾아 붙여줬다. 그러곤 가위를 자기 목에 대고 나를 죽여 달라"며 횡설수설했다. 임 양이 "My father, my father(우리 아빠)"라고 말하면서 "여기로 온다"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K 이병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는 방을 나가기 전 임 양의 지갑에서 1000원권 지폐 5장을 빼갔다.

○ 한국 검찰, 이례적 신속 구속

임 양은 대학 진학을 꿈꾸는 검정고시생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가 이혼한 뒤 친척집에서 살다 지난해 혼자 동두천에 방을 얻어 시험 준비를 해왔다. 임 양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외동딸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 사건이 나던 날, 임 양은 오후 10시 학원 수업을 마치고 고시원방에서 몇 시간 더 책을 봤다. 공부를 끝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잠시 TV를 보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임 양은 "안 그래도 '문을 잠가야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놈이 들이닥쳤다"며 "검정고시 붙으면 등록금 내야 한다고 무리해서 일 나가시던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K 이병은 범행 후 부대로 무사히 돌아갔다. 현행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현장에서 붙잡지 못할 경우 우리 경찰이 구속할 수 없다. K 이병은 불구속 상태로 받은 경찰 조사에서 현장에 남긴 정액 등 물증을 앞에 두고도 "성관계를 맺은 거 같은데 만취 상태여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K 이병은 미군 측이 우리 정부의 범죄인 인도요청에 응해 6일 한국 검찰에 구속됐다. 사건 후 K 이병이 구속 기소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12일. 이에 앞서 서울 마포 등에서 일어난 다른 미군 성폭행 사건 때 모두 16일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한 조치였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하고 미군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지체 없이 진행했다"고 밝혔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화보] 서울구치소로 이송된 '성폭행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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