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미 FTA 입맛 맞춰 국내법 손본다

2011. 11. 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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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23개 법률 개정 필요성, 지방세법 고치면 세수 1338억원 감소

미국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연방법이나 주법에 앞설 수 없다. 미국은 자국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FTA 이행법을 만들어 협정 내용을 이행한다. 미국의 FTA 이행법안은 '미국 연방법과 충돌하는 한·미 협정의 규정이나 적용은 효력이 없다' '협정과 어긋난다고 해서 주법의 규정이나 적용을 무효로 선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에서 FTA 협정의 효력은 기존의 국내법에 선행한다. 협정 내용과 충돌하지 않도록 국내법을 바꿔야 한다.

지난 10월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경필 위원장(오른쪽)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막기 위해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위원장석을 점거하자 항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2011년 9월 현재 한국의 법률은 모두 1206개다. 정부는 한·미 FTA 협정에 따라 개정해야 하는 법률이 모두 23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 법률 100개 중 2개꼴이다. 정부는 그중 불공정무역행위구제법·대외무역법·공인회계사법·세무사법 등 9개 법률을 협정에 맞추기 위해 2007년에서 2011년 사이에 이미 개정했다.

앞으로 개정해야 할 법률은 개별소비세법·지방세법·우편법·약사법·저작권법 등 14개다. 관련 소관 부처는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6개 부처다. 관련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련 법률 개정안 국회 계류 중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는 각기 개별소비세법과 지방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두 법률에서 손을 봐야 하는 것은 승용차에 대한 세율과 관련된 부분이다. 협정 내용에 맞추려면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율을 조정하고 세율구간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조정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수 의원(무소속)은 지난 10월 26일 발표한 자료에서 한·미 FTA에 따른 자동차 관련 세율 조정으로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앞으로 5년 동안에만 총 8845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치는 조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것이다.

우선 비영업용 승용차에 대한 자동차세를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고 2000cc 이상 중대형 승용차에 대한 세금을 인하(cc당 220원에서 cc당 200원)하는 지방세법 개정에 따라 1338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자동차세는 지방세에 포함되므로 자동차세 인하는 지자체 재정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개별소비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감소의 경우, 개별소비세 자체는 지방정부 세원이 아니다. 그러나 개별소비세 인하(10%에서 5%로 단계적 인하)는 지방세의 일종인 자동차 취득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54억~385억원의 지자체 재정 감소가 예상된다. 이외에 개별소비세 인하는 지방소비세와 지방교부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한·미 FTA 이행에 따른 자동차세 감소분에 대한 대책만 마련해놓은 상태다.

가장 많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관련 정부 부처는 지식경제부다. 우편법·우체국예금보험법·특허법 등 7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우편법과 우체국예금보험법은 우체국 업무와 관련된 법률이다. 우편법 개정에 따라 우체국이 거의 독점적으로 누려온 택배사업 권한은 축소된다. 우체국예금보험법 개정은 우체국 보험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을 지식경제부와 농림수산부로부터 금융감독위원회로 옮기는 내용이다. 또한 우체국예금보험법이 개정되면, 우체국은 새로운 보험상품을 출시할 수 없고 현재 4000만원인 보험상품 판매가 한도도 물가인상률 범위 안에서만 인상할 수 있다. 반면 경쟁상대인 미국의 민영의료보험회사들은 미국법에 따라 한·미 FTA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허법의 경우 협정에서 특허권 존속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협정에 따라 특허등록 지연에 따른 특허권 존속기간이 연장됐기 때문이다. 이는 특허심사 지연 등의 이유로 특허 결정이 지연됐을 경우 심사가 지연된 기간만큼 특허권 존속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7개 법률 개정해야

지식경제부는 상표법을 개정해 상표 범위를 소리와 냄새까지 상표에 포함하도록 확대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경우 이익을 얻는 것은 미국 쪽일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소리와 냄새는 보호받아야 하는 상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표로 등록할 소리나 냄새를 개발한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부터 소리를, 1990년부터 냄새를 상표로 보호해왔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영체제 윈도가 시작될 때 나는 소리는 상표 보호 대상이다. 함부로 도용하면 특허 침해로 간주된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하기로 양국이 합의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국내 제약사가 한국 보건당국으로부터 복제약 시판 허가를 신청할 경우 보건당국이 미국 특허권자에게 해당 사실을 알려주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의약품 특허를 가진 미국 제약회사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특허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국내 제약사는 복제약을 시판할 수 없다. 결국 그 기간만큼 국내 제약업계의 매출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그 부담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허가지연 기간은 최대 1년인데, 1년간 허가가 지연되면 국내 제약업계의 매출 감소액은 협정 발효 후 10년간 연평균 898억~194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 보호기간과 저작인접권 보호기간을 기존의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해야 한다. 협상이 타결된 시점인 2007년 4월 당시 저작권법학회가 문화관광부 용역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에 따라 한국은 향후 20년간 2111억원의 추가 로열티 부담을 지게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한·미 FTA는 법률만이 아니라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도 바꾼다. 그러나 한·미 FTA가 비준될 경우 이로 인해 개폐되는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가 무엇인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FTA 협상을 할 때부터 범국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에서 관련 목록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는 공식 목록을 여전히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얘기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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