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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세계 1등 한국제품 7년 만에 80 → 50개..미래 생각하면 아찔

조민근 입력 2011. 12. 12. 01:00 수정 2011. 12. 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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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지식경제 R&D 기획단장..무역 1조 달러 시대 '리스크 테이킹'을 말하다

[중앙일보 조민근]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R & D) '컨트롤타워'로 변신한 지 1년 반여. 황창규 단장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도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스타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R & D) 전략을 총괄하게 된 황창규 지식경제R & D 전략기획단장은 "다시 한번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할 때"라고 말했다. 잠재 성장률은 하락하는데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1조 달러'를 만든 성장동력을 이을 차세대 먹거리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그는 최근 '미래 먹거리' 육성 전략을 담은 '산업·기술 비전 2020'을 내놨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에서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전환하자는 것이 골자다. 황 단장은 "그러자면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하는데 아직 국가 시스템과 제도는 추종자 시절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기획단의 외부 자문단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포함돼 있다. 두 사람은 고교(부산고) 8년 선후배 관계다. 각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서 국내 정보기술(IT)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안 원장의 정계 진출과 관련해 그는 "안 원장의 책도 보고 방송 출연하는 것도 보는데 좋은 인상을 주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전 2020'을 내놨다. 우리가 잘하는 것에서 출발하자는 것과 '융합'과 '강소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대한민국이 지금 잘하는 산업을 20년 후에도 잘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융합을 통한 '퀀텀 점프(대약진)'를 해야 한다. 조선산업이 좋은 사례다. 중국의 거센 도전이 있었지만 우리 조선산업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휩쓸면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심해 자원탐사는 노르웨이가 잘하고, 선박 싸게 만드는 곳은 중국, 플랜트는 미국이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엮어 조선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게 한국이다."

 - 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을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신성장동력 관련 회의에 가보면 많은 참석자가 선진국들이 하는 걸 하자고 하는 경향이 있더라. 물론 남 따라 하는 것이 위험도 낮고 비판받을 소지는 적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절대 1등을 못한다. 각 부처에서 바닥부터 올라오는 R & D 과제들을 한데 엮어줄 국가적 '종합 계획'이 없는 것도 문제다. 부처 내도 마찬가지지만 부처 간 조정이 잘 안 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 & D 투입 자금 비중이 세계 4위다. 하지만 실제 성과와 경제적 효과는 이에 못 미치는 것도 그런 영향이 있다고 본다."

 - 국가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보면 과거와 다르다. 빠르고 과감하다. 기술에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한다. 기술의 리더십 없이 국가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학제 간 연구 육성, 벤처기업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 용인, 인재에 대한 배려에 신경 쓰는 것을 보면 절대 기술강국으로서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도 프로세스를 좀 단출하게, 결정도 보다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

 -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이 정부 예산안 제출 과정에서 확 깎였다. 섭섭하지 않았나.(※전략기획단이 뽑은 6개 프로젝트 중 그래핀·소형 원자로·뉴로 툴 등은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 시장성·공공성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머지 3개 분야 예산도 당초 389억원을 신청했으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협의 과정에서 결국 90억원으로 삭감됐다.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를 두고 부처 간 예산 나눠 먹기의 악습이 재연된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안타까웠다. 우리는 전 세계 700여 명의 최고 전문가를 동원해 '선도자'가 되려는 목표로 전략을 짰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분야의 권위자인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청해 돕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제도와 시스템은 여전히 '추종자'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예산은 세금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또 대기업의 역량이 커진 만큼 국가의 투자는 중소기업 지원, 기초과학에 집중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와서 보니 예산 감시 시스템이 잘돼 있더라. 기업에 있을 때는 조 단위 사업도 많이 했지만 여기선 10억원도 철저히 감사하고 공평성 따지고 평가한다. 이런 게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는 숨통을 막히게 하는 측면도 있다. 일각에선 내가 대기업 CEO 출신이라고 대기업만 위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편견이다. 시작부터 강소기업과 히든챔피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의 자금은 60~70%가 중소·중견기업에 간다."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편에선 위기론도 나온다.

 "무역 1조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는 90년대의 추동력으로 온 것이다.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우리 주력산업이 앞으로 3~4년은 잘할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1등 하는 품목이 2000년대 초 80개에서 2007년에는 50여 개로 줄었다고 한다. 몇 개 산업이 잘나가니 거기에 묻혀서 안 보이는 것뿐이다. 미래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느냐에 생각이 미치면 솔직히 아찔하다."

 -'아이폰 쇼크'는 잘 극복해가고 있는 건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드웨어에서 우리가 이룬 성과를 폄하해선 안 된다. 애플이 소송전을 벌이는 것은 삼성을 두려운 경쟁자로 봤기 때문이라고 본다. 애플이란 자극제가 우리 모바일 기기를 빠르게 발전시킨 측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과거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두각을 보인 건 컴퓨터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기기나 통신네트워크 기술로 가면 우리에게 강점이 많다. 위기지만 기회도 많은 것이다. 이걸 잘 엮는 게 필요하고 그러자면 제도와 시스템을 혁신하는 게 중요하다."

조민근 기자 < jmingjoongang.co.kr >

메모리 용량 매년 2배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 주인공

◆황창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사장을 지냈다. 지난해 4월 지식경제부의 R & D '컨트롤 타워'이자 미래 선도 산업 발굴을 맡는 민관 합동의 전략기획단장에 임명됐다. 지경부 R & D 예산은 4조5000억원 규모로 정부 전체 R & D 예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메모리 신성장론'으로 유명해졌다.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메모리 용량이 해마다 2배씩 증가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이 모바일기기와 디지털 가전이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이전까진 인텔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주창한 '무어의 법칙'(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이 통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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