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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도량의 기운, 바다 풍경 그리고 관음의 미소..양양 낙산사

입력 2012. 01. 04. 16:37 수정 2012. 01. 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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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자 봉우리, 동해, 서해 몇 곳, 그리고 남쪽 바다 남해군과 여수가 생각난다. 거의 조건반사 수준이다. 겨울바다, 일출 등이 궁금했고 특히 양양이 생각난 것은 낙산사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5년 백두대간 양양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화재로 천년 가람들이 불타 가슴을 뻥 뚫어놓더니 어느새 복원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들려온다.

덜컥 들어온 시 한 수, 뜻밖의 색다른 여행길

이번 여행에는 친구 세 사람이 동행했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들은 늘 '쓸쓸한 여행길에 동.행.해.주.겠.다.'며 접근하지만 사실은 여행에 어지간히 이골이 난 나의 덕을 보겠다는 의중이다.

나 또한 나쁠 것 없다. 혼자 떠나는 여행길은 고즈넉한 낭만이 있지만 저녁 시간에 찾아오는 그 쓸쓸함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점심이라면 모를까 저녁 식사를 여행지 식당에서 혼자 한다는 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나름 장점도 있다. 관광지 식당에 들어가기가 머쓱한 탓에 여행지 중심을 벗어나 현지 마을 식당에서 밥을 먹다 보면 진짜 그 지역의 인심과 입맛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낙산사를 가는 길은 대략 세 종류가 있다. 경부나 중부 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나가 강릉 종점에서 동해고속도로 북쪽을 달려 양양 끝 지점에서 나와 7번국도를 이용해서 낙산으로 가는 법, 서울춘천고속도로 홍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영동고속도로와 만나는 법, 그리고 44번국도로 용대리까지 가서 한계령이나 미시령터널을 이용, 속초를 통해 양양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서둘러 출발했으나 고속도로는 매우 혼잡스러웠다. 대한민국에 여행 비수기란 없다. 그렇게 어디쯤 가고 있었을까? 동행한 친구 하나가 문득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여행한 곳 가운데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예요?" "아, 남해금산,이요"(초면이다).

"아! 남해금산!!!" 그리곤 줄줄이 읊어댄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이성복, '남해금산' 전문) '양양 가는 길에 이성복이 갑자기 나타나 가슴에 불을 지르는군…' 내심 이번 여행에 새로운 내용이 담기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동시에 일어났다. 사실 동행인이 있는 여행길 내내 시를 이야기하고 읊고 감격하고 깔깔거린 것이 학창 시절 문학기행 이후 처음 겪은 일이었다. 우리는 영동고속도로 내내 제주도를 노래한 이생진, 송강의 관동팔경, 고은 시인의 '절을 찾아서', 평론가이자 시조시인인 구중서의 '면앙정에 올라서서', 신경림의 '동해바다' 등을 조잘거리며 달렸다. 낯선 사람과 마음을 열고 달리는 여행의 묘미를 맛본 시간이었다. 영동고속도로가 끝나고 양양 방향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이야기는 다시 낙산사로 돌아왔다. 고속도로가 밀리는 바람에 예정 보다 늦은 시간에 우리는 양양에 들어갔다. 해는 백두대간 봉우리 근방에 있었고, 잽싸게 움직이지 않으면 복원된 낙산사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푸른산 푸른바다, 중생의 마음 쓰다듬는 관음성지 낙산사

낙산사를 관음성지라 부르는 것은 이곳이 자비 정신을 근본으로 하는 도량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하는 명상이나 기도의 주제를 용서, 화해 등 대인배 모드로 삼는 게 좋은 까닭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자비니 관음이니 종교적 색채를 빼더라도 낙산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절이다. 바닷가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벽과 얕은 산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 얘기할 만하다. 1300년 전 의상대사는 도대체 어느 길을 걷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세를 발견했을까. 의상 대사를 이끈 힘은 그러나 길이 아닌 관음보살이었다고 전해진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절망하여 바다에 투신, 목숨을 버리려 했다. 그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의 자리라고 한다.

1300년 전에 창건한 낙산사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사찰이 된 것은 의상과 관련된 불심의 힘도 컸겠지만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풍광도 큰 힘을 발휘했다. 또한 불교를 억제했던 조선이 전국의 명찰들을 파괴하거나 핍박하지 않고 보전될 수 있도록 한 것도 고마워 할 일이다. 낙산비치호텔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홍예문을 지나 가람으로 들어가면 사천왕문, 빈일루, 응향각, 그리고 원통보전과 7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원통보전에서 되돌아 내려가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그 동선보다는 해수관음상으로 연결되는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걸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도량의 기운이 집중되어 있고 멀리 바다 풍경과 관음상의 모습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보석같은 길이다.

해수관음상은 낙산사 꼭대기에 있는데, 동쪽에서 바라보면 저 뒤로 설악산의 봉우리들이 보이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푸른 동해에서 올라온 모습이다. 높이 16m의 해수관음상은 왼손에 감로수병을 받혀 들고 오른손에는 수인을 지은 모습인데,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해수관음상 제단 아래에 두꺼비석상이 엎드려 있는데, 그곳에 손을 더듬어 보면 다리를 세 개 만질 수 있는데,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를 쳐들고 손을 더듬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수관음상 앞 절벽 위에는 관음전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정면에 창문이 있는데, 각도를 잘 조절해서 올려보면 창 안에 해수관음상의 얼굴이 내려보고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 도량, 홍련암과 어화 둥둥 동해바다

경내를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홍련암을 보지 않고 떠날 수는 없다. 홍련암은 석모도 보문사, 남해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도량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기도의 힘이 세다고나 할까? 하기야 수직 절벽 위에 암자를 만들어놓고 번민과 미음과 갈등과 오해를 풀어낸 자비로움을 비는 곳이니 깊은 공력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의상대사의 좌절과 희망의 순간에 관음보살이 알려준 지점이 바로 이곳 홍련암이다. 대나무가 솟아있던 이곳에 의상이 암자를 지은 것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의 일이었는데, 조선조 광해군 12년(1619년)에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홍련암 건너편 언덕에서 홍련암을 내려보니 검은 산과 절벽에 붙어있는 암자와, 암자를 밝힌 불빛, 그리고 암자 뒤로 멀리 보이는 대포항의 불빛이 어우러져 화려한 어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시간과 상관없이 기도하는 바닷가 도량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암자를 떠난 우리는 양양의 물치항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낙산사에 있을 때는 마치 자신들이 스님이라도 된 듯 엄숙을 연기했지만, 횟집 즐비한 속세로 나오자 마음은 다시 탐욕 모드로 돌변, 자연산 회에 매운탕에 개불에 소주 몇 병까지 들이키고 양양까지 가서 대리 운전을 이용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몇 가지 동선은 일반 여행과 다를 바 없었으나 간간히 시를 읊었다는 점에서 이번 양양 여행은 분명히 색다른 여정이었다. 예정상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 낭랑한 목소리로 시낭송회를 갖기로 했으나, 모두들 시심에 취한 나머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양양-속초 여행에서 꼭 들려야 할 곳이 설악산이다. 물론 등산을 준비한 것은 아니므로 끽 해야 신흥사나 권금성 정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고작이다. 권금성은 신흥사 입구에서 케이블카로 5분, 걸어서 5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간단한 길이지만 날씨만 도와준다면 일출 또는 푸른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설악산 필수 코스다.

추천 맛집

물치항 꼭지네 횟집

오래전 물치항의 난전으로 시작한 회센터가 제대로 된 건물을 짓고 물치항어촌계회센터란 이름으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대포항을 비롯해서 비슷한 회센터가 많지만 직접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선주에 한해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자연산이 많다. 입점해 있는 횟집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추첨을 통해 가게 위치를 바꾸는 '재밌고 공정한' 회센터다. 그 가운데 '꼭지네'가 특히 저렴하면서도 친절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위치

양양군 강현면 물치리 문의033-671-5952 [글 = 이영근 (여행작가) / 사진 = 이책007]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10호(12.01.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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