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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빚은 작품 '의암호 물안개' 장관.. 경춘선 전철 타고 떠나는 춘천 겨울여행

입력 2012. 02. 08. 18:23 수정 2012. 02. 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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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매력을 찾아 경춘선 전철에 몸을 싣는다. 어떤 이들은 그 매력이 학창 시절의 MT 추억이라고 믿는다. 어떤 이는 닭갈비 맛이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의암호의 물안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상봉역을 출발한 경춘선 전철이 도시의 불빛을 뒤로 하고 북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하얗게 얼어붙은 들판을 배회하고 산골짜기를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에는 새벽별의 푸른 기운이 담겨 있다.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옛 모습은 잃었지만 청평역 가평역 등 정겨운 이름의 역사가 김 서린 차창으로 흐른다.

전철이 강촌역에 정차하자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우르르 내린다. 배낭을 둘러메고 양손에 라면박스를 든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북한강변에 위치한 옛 강촌역사. 텅 빈 플랫폼과 역사에는 스프레이로 그린 그래피티가 아직도 선명하다.

강촌역에서 2.5㎞ 떨어진 봉화산의 구곡폭포는 빙벽타기를 하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하다. 아홉 구비를 돌아 들어가야 만난다는 구곡폭포는 산 주차장에서 900m. 상큼한 소나무 향기와 계곡 얼음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아 걷다 보면 하늘에서 흰 천을 드리운 듯 구곡폭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주차장에서 구곡폭포와 폭포 위 문배마을을 거쳐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약 7㎞ 길이의 '물깨말구구리길'은 강촌을 대표하는 산책로. '물깨말'은 물가마을을 뜻하는 말로 강촌을 의미한다. 주차장에서 강촌역까지 걷는 사람이 많다. 버스는 1시간에 1대 꼴로 다닌다.

강촌역을 출발한 전철은 한참을 달려 김유정역에 닿는다. 한옥으로 지어진 김유정역의 본래 이름은 신남역. 춘천 출신 문학인 김유정을 기리기 위해 2004년에 전국 최초로 사람 이름을 따서 김유정역으로 명명됐다. 신역사 북쪽에 위치한 구역사는 드라마 '간이역'과 영화 '편지'의 촬영지다. 경춘선에서 가장 서정적인 간이역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녹슨 자물쇠가 출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김유정문학기념관이 위치한 신동면 실레마을은 '봄·봄' '동백꽃'의 작가인 김유정의 고향마을. 김유정의 소설 대부분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떡시루를 닮아 실레로 명명된 마을에는 김유정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실레 이야기길'이 조성돼 있다.

은세계로 변한 금병산 자락에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을 비롯해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16개 무대가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종착역인 춘천역에 내리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의암호로 이어진다. 호수 중간에 붕어섬 중도 위도 등을 품은 의암호는 한겨울 추운 날에는 엄청난 양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겨울철 물안개는 한낮에 따뜻해진 수면이 다음날 아침 기온이 일교차 10도 이상으로 떨어질 경우 피어오르는 자연현상. 특히 의암호의 소양2교에서 소양3교 사이에는 왕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뤄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황홀한 상고대를 연출한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강추위에 의암호에서 물안개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푸른 어둠 속에서 물오리떼가 자맥질을 하며 한가롭게 호수를 유영한다. 수면에 뿌리를 내린 왕버드나무 군락이 부글부글 끓듯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숨바꼭질을 한다.

이윽고 동녘하늘에서 오렌지빛 햇살이 쏟아지자 물안개가 연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호수를 어슬렁거리고 물안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맹렬하게 피어오른다. 순간 바람이 물안개를 살짝 걷어내자 상고대가 핀 왕버드나무 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시간 가까이 피어오른 물안개가 갈색 왕버드나무 가지에 달라붙어 얼면서 남태평양의 산호처럼 변신을 한 것이다.

한겨울에 발길을 춘천으로 돌리게 하는 매력. 그것은 의암호의 물안개가 만들어내는 왕버드나무의 상고대 때문이 아닐까.

춘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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