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에 얻어맞은 여섯명이 뭉쳤다

2012. 2.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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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지식전사 6명, 팀블로그 만든 이유

"토론불가 트위터 밖에서 진영논리와 싸우리"

한국 사회의 대표적 '키보드 워리어' 6명이 뭉쳤다. 진중권·고은태·박권일·이택광·한윤형·허지웅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트위터를 중심으로 각종 시사이슈에 관한 사회적 논쟁을 주도해온 이들은 2월 마지막 주부터 팀블로그 <리트머스>로 활동 공간을 옮겨 본격적인 '담론 투쟁'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지식인, 혹은 지식전사로 불리는 이들 6명의 '집단이주'는 이달 초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의 제안에서 비롯했다. 당시 트위터는 이른바 '비키니 논쟁'으로 뜨거웠다. 논쟁의 시작은 인터넷 팟캐스트 라디오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출연진이 여성의 비키니 사진을 보며 내놓은 성적 발언이었다. 지난해부터 나꼼수가 제기하는 음모론의 위험성 등을 지적해온 진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꼼수의 선정성을 앞장서서 비판했다. '진중권 vs 나꼼수 지지자'의 비키니 논쟁에 불이 붙었다.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진 교수 트위터의 타임라인(트위트 모음)은 그에 대한 비방글로 물들었다.

"진중권은 왜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을 싫어할까. 열등감인가."

진 교수는 "감정적이고 선정적이고 선동적이기 쉬운" 트위터에서 합리적 논의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지난 9일 자신의 트위터에 "합리적으로 자신을 주장할 준비가 된 사람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 교수가 깃발을 들자 고은태 중부대 교수(건축디자인학과)가 곧바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과) 등 나머지 네 사람도 속속 합류했다. 진 교수 표현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나꼼수 이야기 한마디씩 했다가 얻어맞은 사람들" 6명은 지난 19일 서울에서 첫 오프라인 모임을 열고 새로운 담론의 진지, 곧 팀블로그 리트머스 개설에 대한 뜻을 모았다. 리트머스를 연다고 당장 트위터 '절필 선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활동무대는 블로그로 바뀐다.

6명의 지식인 가운데 트위터에서 진 교수만큼이나 자주 '얻어맞는' 사람은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다. 허씨는 지난해 12월 종합편성채널 개국 직후 <동아일보>가 대주주로 있는 <채널에이>의 영화 정보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했다. 허씨는 이 결정으로 트위터상에서 1만건 안팎의 비판을 들어야 했다. 허씨 비판에 앞장섰던 한 시사주간지 기자는 '적전 분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를 변절자로 내몰았다. 그가 허씨를 향해 쏟아낸 수많은 막말 트위트 가운데 하나다.

"조용히 찌그러져서 빌어먹어"해당 기자에게 논쟁 요구하자"마트에 생강 사러 가야 해"

"조중동에 부역하는 지식인들에게 일벌백계의 교훈을 주기 위해 한마디만 한다.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서 빌어먹어!"

허씨는 변절의 기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욕설을 쏟아내는 것이 '니편 내편'으로 진영을 가르고 우리편이 아닌 '적'으로 간주되면 무조건 공격을 퍼붓는 우익테러리즘과 다를 바 없다며 해당 기자 등에게 토론을 요구했다. 허씨가 얻은 것은 토론 기회 대신 "마트에 생강 사러 가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생강이란 음식 재료로 쓰이는 그 생강을 가리킨다. 허씨는 "트위터가 정보공유의 측면에서 탁월한 기능을 갖는 도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대개의 논쟁은 소모적일 때가 많다"며 "특히 스스로 파워 트위터리언이라 일컫는 일부 이용자는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는 식의 착시 효과를 조장하고 그 착시 효과로 인한 이득은 사유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씨도 나꼼수 음모론 등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가 트위터에서 '찍힌' 인물이다. 나꼼수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지난해 하반기에 그는 트위터와 매체 기고글 등을 통해 "민중이라는 단어의 중독성에 몸을 의탁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 하는 방법으로 반지성주의에 기반하면서 지성인으로서의 지분을 획득한다"며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를 비판했다. 나꼼수 지지자로부터 반격이 쏟아졌다.

리트머스 구성원이 꼽는 대표적인 나꼼수 음모론은 중앙선관위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사건과 관련한 '선관위 내부자 소행설'이다. 지난해 10월26일 재·보궐선거 당시 선관위 누리집이 마비된 것이 선관위 내부의 소행일 수 있다는 의혹제기였다. 경찰 조사 결과 디도스 공격은 한나라당 의원 비서관이 저지른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뒤에도 나꼼수는 의혹제기를 멈추지 않았다.

<안티조선 운동사>의 저자 한윤형씨(자유기고가)가 리트머스 합류를 결정한 배경도 나꼼수와 트위터의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한씨는 "강용석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 무분별하게 제기한 의혹을 조중동이 기사화하면서 의혹제기 당사자와 언론이 함께 신뢰를 잃은 것처럼, 진보 진영 안에서도 어느 한두 사람의 견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며 "리트머스 기획은 나꼼수 콘텐츠가 자칫 놓칠 수 있는 논의의 빈 공간을 채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블로그 출발 배경과 구성원의 면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리트머스는 '진영 논리'가 아닌 '싱크리티즘'을 내세운다. 싱크리티즘이란 이질적인 사상·종교·문화가 대의를 위해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 진 교수는 2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권교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였지만, 6명 모두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 있는 만큼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행동 원칙"이라고 말했다.

나꼼수·SNS 한계를 넘으려는새로운 담론공간 '리트머스'진중권 허지웅 한윤형 등 합류

나꼼수를 지지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트위터에서의 진영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리트머스는 상식과 게이트키핑(뉴스 및 정보의 취사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진 교수가 말한 싱크리티즘의 원칙은 상식이라는 말로도 풀이될 수 있다. 이택광 교수는 "누구나 트위터라는 미디어를 지니고 있는 미디어 민주주의의 공간에서 시민은 특정 당파성을 띠는 주장보다 중립적·객관적·상식적 가치를 선택하게 마련"이라며 "팀블로그를 통해 우리의 의견을 단순 전달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이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엠비(MB)'라는 하나의 정치적 목표 아래에 모인 다양한 성향의 지식인 연대라는 면에서 리트머스의 원형은 1999년 강준만·김규항·진중권·김정란 등이 꾸린 <아웃사이더>를 닮았다. 아웃사이더는 각기 중도, 좌파,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이들 4명의 지식인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의 복원'을 주장하며 만든 동인지 성격의 격월간 잡지로, 이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극우집단주의로 규정하고 그 본산이자 결정체로 <조선일보>를 지목했다.

<88만원 세대>의 공동 저자 박권일씨는 리트머스에 대해 "모인 사람의 구성을 보면 아웃사이더에 가깝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본격적인 논쟁을 주고받겠다는 취지를 살핀다면 과거 안티조선 사이트 '우리모두'나 '진보누리', '깨끗한 손'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모두는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한 지식인들이 주로 활약했던 사이버 공간이고, 깨끗한 손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이문옥 전 감사관의 팬클럽으로 진중권 교수와 박권일씨 등이 깨끗한 손의 인터넷 누리집 게시판 토론을 주도했다. 깨끗한 손에서 활약한 논객의 상당수는 이후 민노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 진보누리로 옮겨갔다.

리트머스가 트위터와 나꼼수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지만 그 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중권 교수는 '보험'이라는 표현으로 리트머스를 소개했다. 그는 "나꼼수는 일종의 놀이였는데, 이 놀이에 대한 열기가 비키니 논쟁을 거치며 급격히 식었다"며 "리트머스는 나꼼수에 찾아올 수 있는 더 큰 위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라고 설명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 '리트머스'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팀블로그 성격의 온라인 토론사이트다. 이르면 27일 진 교수가 강용석 전 의원의 무분별한 폭로를 되짚어보는 첫 글을 올리며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출발은 6명으로 하지만 블로그의 문을 닫아놓을 생각은 없다. 싸움에 끼어들기를 원하는 각 분야 전문 필진에게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목표는 정해놓았지만 싸움의 상대는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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