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내 1위 압축 프로그램 알집이 욕먹는 이유

입력 2012.03.05. 15:53 수정 2012.03.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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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성 무시한 독과점 마케팅 전략… ALZ·EGG 포맷을 버려라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이스트소프트에서 만든 알집은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의 압축 프로그램이다. 이스트소프트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중복 포함 사용자 수가 1487만명에 이른다. 이스트소프트는 알집(압축)과 알약(백신), 알씨(뷰어), 알툴바(검색), 알FTP(FTP) 등에서 국내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알송(음악 재생)과 알쇼(동영상 재생) 등은 각각 2위와 6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알 시리즈는 개인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기업 고객에게는 유료로 판매된다. 알 시리즈의 매출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44.5%, 기업부문과 광고부문이 각각 65.3%와 34.7%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이스트소프트는 한글과컴퓨터와 함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 못지않게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기업이기도 하다. 두 기업 모두 표준과 호환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알집을 비롯해 알 시리즈를 삭제하라는 게시물을 자주 맞딱뜨릴 수 있다. 알집을 지웠더니 컴퓨터 속도가 빨라졌다는 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알집에 대한 불만은 삭제하고 난 뒤에도 레지스트리가 복원되지 않는다거나 유니코드로 된 파일명을 지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이었지만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된 상태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지적하는 알집의 가장 큰 문제는 표준과 호환성에 있다.

알집은 ALZ나 EGG 같은 독자적인 압축 포맷을 쓰고 있다. 문제는 EGG로 압축된 파일은 알집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압축을 해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알집을 설치하지 않은 컴퓨터에서 EGG 파일을 열어보려면 울며겨자먹기로 알집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논란은 EGG라는 압축 포맷이 이스트소프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공개돼 있는 BZIP2라는 파일 알고리즘을 가져다가 포맷만 바꾼 정도라는 데서 비롯했다.

알집이 분할 압축을 지원하는 등 일반적인 ZIP 포맷에서 좀 더 발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단점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알집이 독자적인 포맷을 퍼뜨리는 것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알집의 사용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ALZ 파일도 늘어났고 알집의 독과점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알집이 좋아서가 아니라 남들이 모두 알집을 쓰기 때문에 알집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알집이 압축 포맷을 공개하지 않아 ALZ나 EGG 파일을 풀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조차 원천 차단했다는 데 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무료로 공개된 파일 포맷을 변형해서 유료 프로그램을 만든 데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스트소프트는 "BZIP2 포맷을 변형해 사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며 BIZP2에서 사용하고 있는 BSD 라이선스는 상업용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소스 공개 의무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스트소프트가 영업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압축 포맷이나 알고리즘을 모두 공개할 의무는 없다. 다만 다른 압축 프로그램들처럼 압축을 풀 수 있는 라이브러리 파일이라도 제공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GG 파일을 풀려면 무조건 알집을 쓰라는 마케팅 방식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스트소프트는 알집 8.0을 출시하면서 EGG 파일을 해제하는 모듈을 공개했지만 라이브러리 파일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스트소프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알집이 오픈소스를 가져다가 헤더만 바꿔서 유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지적하지만 이스트소프트는 "공개된 알고리즘을 가져다 쓴 건 맞지만 새로운 포맷을 만들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스트소프트는 압축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핵심 엔진을 가져다가 인터페이스를 씌워 만든 것 뿐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기준 이스트소프트 주요 프로그램 이용자 현황.

알집이 국내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은 쓰는 압축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특히 더 주목을 받는 것이겠지만 이스트소프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알집의 높은 시장점유율이 표준을 무시하고 경쟁회사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쌓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ZIP이 기본 확장자로 지정돼 있지만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ALZ로 압축이 되도록 설정돼 있었다. 호환성을 무시하고 자사 프로그램을 쓰도록 강요하는 이런 마케팅 방법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이스트소프트는 이밖에도 알집 8.0에서 압축한 파일을 7.0에서 풀지 못한다거나 알집 업데이트 과정에서 알툴바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설치하도록 유도한다거나 알툴즈의 업데이트 서버가 악성코드 유포지로 이용되는 등 여러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출시한 알백이라는 복구 프로그램은 설치는 무료지만 복구할 때마다 ARS로 6600원을 결제해야 하는 방식으로 컴퓨터 숙련도가 낮은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네이트 해킹 사건 때 이스트소프트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사과문.

비슷한 논란은 한글과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HWP)에도 제기된다. 한글이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아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2010년 6월, 21년 만에 HWP 파일 구조를 공개한 바 있다. 이때도 "지적재산권 사용을 원할 경우 한글과컴퓨터에 문의하라"거나 "한글과컴퓨터에 피해를 끼칠 경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문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을 최대한 자사 프로그램에 묶어두는 것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문서 프로그램이나 압축 프로그램 등은 기본적으로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호환성이 보장돼야 한다. 이스트소프트나 한글과컴퓨터처럼 의도적으로 호환성을 제약하면서 독과점을 강화하는 방식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알집을 쓰더라도 ALZ나 EGG 포맷으로 압축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참고로 알 시리즈를 대체할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다. 국산 무료 프로그램인 반디집은 알집에서 압축한 파일도 완벽하게 풀 수 있으면서 더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고도 없다. WinRAR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압축 프로그램이다. RAR 포맷은 완전히 공개돼 있다. 알약을 대체할 백신 프로그램은 안철수연구소의 V3나 어베스트, MSE 등이 있다. 알송은 푸바2000이나 송버드, 알쇼는 KM플레이어나 VLC플레이어 등이 대체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알집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됐다지만 중요한 것은 알집이 아닌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ALZ나 EGG 파일이 떠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알집을 찾는다. 아마도 알집의 독과점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호환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한 기업의 독선적인 마케팅 전략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불편하게 만드는지 알집이 남긴 교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