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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을 읽고]류근일 칼럼에 이의 있다

이광철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 입력 2012. 03. 28. 21:37 수정 2012. 03. 2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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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류근일이 아닌, 경향신문의 류근일! 편집자의 의도마저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크게 보아 진보와 보수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화라면 생산적이어야 한다. 대화를 빙자해 현실의 문제를 정당화하고 문제의 근원을 은폐해 결과적으로 현존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현학적 공론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진보로 표방하는 경향신문에 부합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간 경향신문에 실린 류근일 칼럼과 달리 3월28일자 류근일 칼럼은 단언컨대, 경향신문을 조선일보로 만들었다. 이 칼럼은 라이트 밀스 저작을 인용하며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건을 겨누는가 하더니 곧장 러시아, 프랑스 혁명기 혁명가들의 광포한 부도덕의 사례들을 열거한 후 칼끝을 이정희와 곽노현과 나꼼수와 전교조에 들이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실의 여론조사 조작행위도 바로 그런, 절대선을 자처하는 쪽의 거칠 것 없는 배덕(背德)이었다."

분명히 강조하건대, 이정희와 곽노현과 나꼼수와 전교조 등은 우리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공적 역할과 위상에 비추어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진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진보진영 일각의 진영논리는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판의 지향과 내용이다. 문제를 덮으려는, 혹은 문제의 지점과 원인을 착시시키려는 의도가 대화의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라면 이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한 비판은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야 한다. 이정희가 이번 여론조사 사태를 '절대선'이라고 강변했던가?

류근일은 어제 칼럼에서 권력 엘리트든, 그 반대편이든 권력에 취해 막가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오십보백보론이다. 조선일보가 정치인 김대중을 포함한 진보진영을 향해 집요하게 구사해온 논리다. 류근일 또한 그 최선봉에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가 진지한 탐색은 애초부터 관심 없다. 한쪽 편의 큰 허물에는 눈감고 그 반대편의 상대적으로 작은 도덕적 허물을 집요하게 문제 삼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는 논조는 지금도 조·중·동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런 말장난을 경향에서마저 보아야 하는가? 생각의 다양성을 당연히 인정하는 관점에서도 이 칼럼은 경향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문제이다. 사회의 진보가 단 한 걸음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허물이 있을 수 있다. 비판받을 일이 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놈이 그놈이라고 치부하면서 교묘하게 어느 한 놈의 더 큰 허물과 그 이면의 모순과 문제점을 은폐시키는 일을 진보언론이 해서야 되겠는가? 경향의 지면에 이런 글이 다시 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광철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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