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국일보

[지평선/5월 28일] 전길남 박사

이충재 논설위원 입력 2012. 05. 27. 21:29 수정 2012. 05. 27. 21:29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시 전자기술연구소(KIET,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길남(당시 39세)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젊은 연구원들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현 컴퓨터공학과)에서도 젊은이들이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수십 명의 눈길 속에 키가 하나씩 눌러지고 마침내 화면이 뜨자 구미와 서울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성공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이 개통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대에서 수학한 전길남 박사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했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박정희 정권의 해외과학자 유치 사업 때 가장 먼저 귀국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근대화에 뒤처진 고국을 혁신하기 위해 인터넷이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3년간의 노력 끝에 SDN(시스템개발네트워크) 개발에 성공,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란 명칭을 얻었다.

■ 전 세계 인터넷 초기 개발자 5명에 꼽힌 전 박사는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ISOC(인터넷 소사이어티)가 만든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전 세계 인터넷 형성에 기여한 개척자 30명을 기려 만든 이곳에는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팀 버너스리, 인터넷 통신규약(TCP/IP)을 만든 빈트 서프,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 등 IT계의 세계적 리더들이 올라 있다.

■ 하지만 대한민국을 오늘날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그를 정작 국내에서는 잘 모른다. 인터넷 10주년이나 20주년 행사도 치르지 않았고, 정년퇴직 때도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인터넷을 가르쳐준 데 대한 보답으로 게이오대 부총장으로 모셔갔다. 정부는 뒤늦게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넷 도입 30주년 기념식을 갖고 전 박사에게 공로상을 준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연재
    더보기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