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가로림만 점박이물범

2012. 6. 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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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홍길동처럼 백령도에 번쩍 경포대에 번쩍

가로림만서 만난 점박이물범

▶ 한반도 연안에서 점박이물범의 정주지로 인정되는 곳은 백령도·가로림만·경포대 등 3곳밖에 없다. 이보다 더 많았겠지만 미처 발견되기도 전에 연안 개발로 사라져왔다. 지금 물범은 한반도 어딘가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동안 발견 기록을 보면, 부산~거제도, 경북 영덕~울진 사이가 비교적 자주 보이는 곳이다.

"어렸을 적만 해도 풀등(썰물 때 드러나는 바다 한가운데 모래톱)에 새까맣게 있었지. 우리는 그냥 물개라고 불렀어. 2009년에 방송사 뉴스에 나와서 물범이라고 안 거지."(박정섭 가로림만조력발전반대대책위 위원장)

한반도에 사는 포유류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지 못하는 동물 중 하나가 점박이물범(spotted seal·잔점박이물범으로 혼용돼 불린다)이다. 한반도에선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이 물범이 태안반도 가로림만에도 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지난 6일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안개 낀 수면 위로 한 줄기 파문이 흘렀다. 배 앞에서 고개를 내민 건 하트 모양의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점박이물범이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기 무섭게 물범은 사라졌다. 몇 분의 정적이 흐른 뒤 배 뒤편에서 나타났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올해 가로림만에 내려온 물범은 5마리다. 해마다 3~9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점박이물범은 중국 랴오둥만의 얼음바다에서 겨울을 나고 백령도에서 봄~가을을 난다. 중국에서 관찰되는 개체 수는 600여마리. 이 가운데 200~300마리가 백령도에 온다.

중국 랴오둥만에서 겨울난 뒤봄~가을엔 한반도로 이동털갈이 위해 일광욕 즐겨백령도만 한해 200마리바위 놓고 자리싸움 치열해가로림만, 경포대 등서도몇년 전부터 소규모 서식 확인

백령도 집단 서식도 알려진 건 오래되지 않았다. 1976년 10월20일 <경향신문>이 사회면 머리기사로 올린 '물범 백령도 연안에 100여마리 서식'은 1982년 천연기념물(331호) 지정의 신호탄이 된다. 이때부터 백령도는 물범의 유일한 서식지로 굳어졌다. 그러다가 2008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와 중국 랴오닝성 해양수산과학원이 공동연구 중에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박태건 고래연구소 연구원이 말했다.

"랴오둥만에서 출발하는 야생 물범을 생포하는 데엔 실패했어요. 대신 수족관이 보유한 점박이물범 10마리에게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내보냈죠."

그해 4월14일 방류된 82818번은 산둥반도 칭다오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해를 건너 압록강 하구로 올라가더니 6월 중순께 백령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백령도가 종착점이 아니었다. 물범은 강화도 등 인천 연안을 훑더니, 전북 군산·부안, 전남 신안까지 내려갔고, 해남 부근에서 신호가 끊겼다.

82818번이 보낸 신호는 상식을 뒤엎었다. 점박이물범이 백령도에만 몰려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서해 연안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점박이물범은 서해 전 해상에서 목격됐다. 지금도 '해구신'(물개의 생식기) 채취 목적으로 시장에 팔리거나 서울 종로의 창경원에 이송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6일 새벽 2시경 서울지방전매청 앞길에서 약 1m가량의 물범이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것을 순찰 경관이 발견하고 창경원에 연락했으나 동물원 소유가 아니라는 통고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동대문서 직할 방화수통에 집어넣었다…이 물범은 며칠 전 경남 구포에 사는 어부가 잡아 창경원에 팔려고 상경했으나 값이 맞지 않아 동대문시장 상인 이성우(51)씨에게 보관 위탁한 것인데, 이날 밤 수챗구멍을 빠져 거리로 기어나온 것이라 한다."(경향신문 1963년 5월6일)

백령도 남쪽으로도 점박이물범이 여전히 내려가는 사실을 확인한 과학자들은 한반도 연안을 따라 물범에 대한 목격담과 혼획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30여차례 발견된 지역을 지도에 찍어보니, 물범은 남해안을 돌아 강원 강릉시 경포대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박 연구원이 말했다.

"2007년 포항 앞바다에서 혼획된 개체의 유전자 분석을 해봤어요. 랴오둥 반도와 백령도를 오가는 집단과 동일했죠."

1970년대부터 경포대에서 유람선을 운영한 윤구남(72)씨는 "1990년대부터 간간이 보였는데, 5~6년 전부터 아예 3~4마리가 새바위에 올라가 쉰다"고 "사람이 왕래가 드문 암초에 터를 잡은 거 같다"고 말했다.

점박이물범은 북극권이나 아북극권에 산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바다 위 얼음조각에서 편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이 아닌데도 서해에 점박이물범이 사는 이유는 겨울에 랴오둥만이 얼기 때문이다. 교미와 번식을 마치고 봄~가을 한반도 연안에 내려왔을 때에도, 물범은 고적한 풀등이나 암초로 모인다. 물범은 일 년에 한번 이상 털갈이를 해야 방수·보온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낮 일광욕이 가능한 풀등과 암초를 확보하는 건 물범에게 아주 중요하다. 많을 땐 200마리 가까이 몰리는 백령도 물범바위에서는 좁은 바위 위를 차지하겠다고 몸싸움을 한다. 힘이 약한 물범이나 새끼 물범은 하루 종일 물속에서 보내야 한다.

반면 가로림만과 경포대의 물범들은 힘겨운 서열 싸움을 피해 소규모 독립생활을 택한 이들이다. 특히 가로림만 물범은 겁이 많아서 배의 왕래가 잦은 낮에는 풀등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1940년대 서해에 8000마리 분포했던 점박이물범은 현재 600여마리가 랴오둥만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범 옆머리의 점박이 무늬를 식별하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를 식별할 수 있다. 고래연구소는 이런 방식으로 최근까지 백령도 물범 310여마리의 식별을 마쳤다. 나머지 300여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도 중국과 한반도 연안 어딘가에서 사람을 피해 쉴 곳을 찾아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가로림만/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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