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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성(性)스러운' 법정

김은지 기자 입력 2012. 07. 06. 10:08 수정 2015. 07. 0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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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된 사진은 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요?' '아침에도 서고요, 발기 자체만으로 성행위를 묘사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로도 발기가 될 수 있는 것이고요.' 판사가 묻자 로스쿨 교수가 답했다.

변호사도 나섰다. '글래머 아줌마의 섹소리'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재판정에서 1분 가까이 틀었다. '(여성이 팬티를 입은 남성의 성기 부위를 핥고 있는) 이 동영상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성기 노출이 없습니다. 단순한 성기 노출과 이 영상 중 뭐가 더 음란한가요?'

검사는 이에 맞서 남성의 성기 노출 사진을 확대경 위에 올려놨다. '더 안 보여줘도 될 거 같다'는 재판장의 제지에도 확대경 위 같은 사진을 재차 큰 화면에 띄웠다. '이 사진 자체는 어떻습니까, 음(淫)한가요?'

ⓒ시사IN 이명익 박경신 교수(41)는 이번 사건에 관해 자신의 트위터(@un beatenpath)를 통해 계속 의견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성기·음부·발기라는 단어가 무수히 등장한 이 '성(性)스러운' 법정은 6월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음란물 유포 혐의로 열린 형사재판이었다. 피고인석에는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앉았다.

지난해 7월20일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yungsinpark)에 올린 '검열자 일기 #4 이 사진을 보면 성적으로 자극받거나 흥분되나요?'라는 게시물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남자 성기가 노출된 사진 5장과 함께 '성적 서사가 없는 성기 사진이 사회 질서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삭제 결정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검열이다'라는 글을 블로그에 남겼다. 자신이 위원으로 있는 방심위가 '6:3(찬성:반대)'으로 해당 사진을 음란물로 결정하고 삭제한 조치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엿새 후에 불거졌다. 한 인터넷 매체가 '방송심의위원이 블로그에 성기사진 파문'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박 교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이름이 오르고, 하루 평균 방문자가 열댓 명에 불과한 블로그에도 수십만 명이 다녀갔다. 7월27일 박 교수는 '청소년이나, 나와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해당 게시물은 내렸지만 다음 날 또 다른 글을 올렸다.

생애 처음 피고인 된 법학자

여성의 음부를 그린 쿠르베의 미술 작품 <세상의 근원>을 블로그에 게시하며 '내가 올린 문제의 (남성 성기) 사진들은 지금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는 <세상의 근원>과 같은 수위의 것이었다. 당시 통신소위회의에서 심의하여 차단 결정한 수백 건과 달리 성기 외에는 아무런 성적 서사나 성적 기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라는 글을 남긴 것이다. 성기에만 집중된 여론의 관심을 표현의 자유와 검열로 옮기기 위해 쓴 글이었다.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해당 글에 관한 기사는 '男 성기 사진 올렸던 방통심의위원, 이번엔 블로그에 여성 음부 그림 올려' 따위 제목으로 실시간 온라인에 올라왔다. 음란물에 방점이 찍힌 논쟁은 더 거세졌다. 7월29일에는 건전미디어시민연대로부터 고발당했다. 건전미디어시민연대는 '박 위원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사진을 게재했지만 이는 방심위에서 음란물로 지정한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 상식을 벗어난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한 박승진 이사장이 이끄는 건전미디어시민연대는 2008년 '살인게임 반대모임'으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다. 경찰과 검찰 조사를 거쳐 올해 2월 그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미네르바'의 연관 검색어에서 '성기 노출' '소음순'의 연관 검색어로 바뀐 법학자 '박경신'이 생애 처음으로 당사자가 돼 형사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첫 공판은 지난 3월 열렸다. 두 번째 공판부터는 형사 단독이었던 재판이 합의부로 바뀌었고, 그림자 배심원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림자 배심원제는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배심원과는 달리 개인 목적으로 재판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박 교수의 변호를 맡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는 '재판을 시작한 후 재판부가 바뀌는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번 재판의 중요성을 법원에서도 인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사와 변호인 간에 본격 공방이 벌어진 6월25일은 4차 공판이자 결심 공판. 검찰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라는 음란 개념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하며, 성기 노출은 음란물로 보는 것이 판례 경향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박경신 교수의 (학술적) 의도보다는 성적 이미지에 성적 수치심이나 도색적 흥미를 갖기 쉽다'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변호인 쪽은 다양한 자료를 제시했다. 남녀의 성기 모양과 성행위를 알려주는 잡지 <웰치 성의 과학>은 일반 서점에서 살 수 있고, 딸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목욕시켜 주며 발기된 성기가 나오는 영화 <저녁의 게임>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남녀 간의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동영상 <미션 섹파서블>은 2008년 대법원에서 음란물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중에는 금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가 전날 직접 케이블 TV에서 유료 결제를 한 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성인물도 있었다. 금 변호사는 '일부러 집에서 영상을 찍었다. 이처럼 TV나 인터넷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화면과 박 교수가 블로그에 게재한 사진 중 뭐가 더 음란한가. 단순히 성기 사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음란물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변호인 쪽 증인으로 나온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말을 보탰다. 검사 쪽은 증인을 따로 신청하지 않았다.

ⓒ시사IN 자료 최정규·조광희·금태섭·박주민 변호사 등 변호인단 47명은 무료로 이번 사건을 맡았다(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한인섭:음란물이라고 하면 화면 가득 뭔가 음란한 이미지가 떠야 하는데, (박 교수 게시물에는) 그런 유가 없다. 음란성이라는 게 흥분·자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쿨다운(cool down·진정시키다)하다 못해 찬물을 끼얹는 학술을 논의하는 글이다.

검사:검열 기준에 대한 논평이 없는 성기 사진 그 자체는 음란하지 않나?

한인섭:모든 텍스트(text·글)에는 콘텍스트(context·맥락)가 있다. 콘텍스트를 알려주지 않고 그 사진 자체가 음란한지를 물으면 답을 할 수 없다.

검사:성기 사진 그 자체는 절대로 음란하지 않나?

이인호:성애에 대한 묘사가 연관되지 않는 한 성기 사진 자체가 음란할 가능성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검사:대법원 판례에 과도하고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하는 경우에 음란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성기 사진 자체는 음란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인호:판례의 앞부분을 빼놓고 읽었다. 성애라는 맥락 속에서 표현·묘사할 경우 성기 사진이 음란하다는 뜻이다.

증인 심문이 끝나고 검사의 구형이 이어졌다. 벌금 500만원이었다. 금태섭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1992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 <크라잉 게임>과 지난해 개봉했던 <안티 크라이스트>를 인용했다. '<크라잉 게임>에 남성 성기가 등장한다. 그때 굉장히 쇼크 받았다. 그런데 <안티 크라이스트>에서는 남자 성기가 잘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받은 충격은 과거와 또 다르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기준도 바뀐다. 이 사건은 성기 사진 자체가 음란한지 여부를 처음으로 다룬다. 그런데 정작 사진을 올린 사람이 아니라, 이걸 차단하는 게 옳으냐 묻는 사람이 재판을 받고 있다.'

김인규 교사 '고장 난 레코드처럼 느껴져'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이어지는 재판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소설가 박민규씨는 중간에 휴정을 하자 한마디 내뱉었다. '어떻게 저 사진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공판이 끝난 후 그림자 배심원들의 평결이 있었고 그 결과는 비공개에 부쳐졌다.

공판 내내 검찰·변호인 쪽에서 음란판례로 거론된 사건의 당사자 김인규 교사(충남 천안 오성고)도 공판결과에 대한 소감을 <시사IN>에 전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음란물에 대한 사회적 비평이나 예술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려는 모습이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것 같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느껴진다.' 김씨는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2001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부부 알몸 사진 등을 올려 1·2심에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최종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박 교수 사건에 대한 선고는 7월13일 오후 1시30분 서울서부지법 303호에서 이뤄진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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