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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때 의사가 "왜 힘 못줘" 핀잔산모는 산부인과가 불편해

입력 2012. 07. 10. 20:20 수정 2012. 07.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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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불안한 산모에 의료진 불친절

충분한 설명 없이 유도분만도

동의 없이 수련의들 참관 여전

"의료진보다 산모 배려를" 지적

간호사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못 견딜 진통에 병원을 찾은 것은 새벽 4시40분이었다. 응급실에 들어선 남주현(31·가명)씨를 보자마자 간호사의 얼굴이 짜증으로 얼룩졌다. 남씨의 질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본 간호사가 힐난하듯 말했다. "이제 손가락 한 마디네. 2㎝밖에 안 열렸잖아요."

남씨는 "간호사의 태도 때문에 출산 과정에서 얼마나 무섭고 긴장되고 눈치보였는지 모른다"며 "마음 편안하게 긴장감 없이 출산을 한다며 '인권 분만'을 내세운 병원이었는데도 불친절한 간호사들 때문에 전혀 인권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산부는 긴장 속에 40주를 보낸다. 태아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게 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런 임산부들에게 상당수 산부인과는 친절하지 않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5월부터 산부인과 진료 경험이 있는 여성 21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산부인과의 과잉진료 권유와 배려없는 분위기에 불편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한 응답자는 "출산 때 의사가 '이 엄마 왜 이리 힘을 못 줘?', '소리 지르지 마세요'라고 말해 불쾌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여성도 "의사가 '왜 이렇게 힘을 못 주느냐, 어제 뭐했냐'고 핀잔을 주더라"며 불편한 기억을 토로했다. "30대 중반에 처음 임신했는데 의사가 아기집이 안 보인다는 등 무서운 엄포를 놨다"는 여성도 있었다. '큰 일'를 치르는 임산부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배려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분만에 대한 불편한 기억은 '정보 불균형'에서 빚어진 불쾌감으로 이어진다. 2년 전 첫 아이를 임신한 채수진(31·가명)씨는 의사 권유대로 '유도 분만'을 택했다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다. 출산 예정일은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뱃속의 아기는 2.3㎏으로 몸집이 작았다. 담당의는 "뱃속에 둬도 안 큰다. 반드시 유도 분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곡기를 끊고 촉진제를 투여한 지 사흘이 지나도 진통이 오지 않았다. "임부가 너무 건강해서 그렇다"며 담당의는 채씨에게 더 강한 촉진제를 투약했다. 진통은 시작됐지만 태아의 심박이 떨어졌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꺼냈다. 채씨는 "유도 분만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 줄 몰랐다"며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선 의료진이 미리 설명해준 뒤 판단하도록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전체 자연 분만 가운데 유도 분만이 차지하는 비율은 54.8%(2010년)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산부인과학회에서는 "유도 분만이 제왕절개 분만 위험을 2배 이상 높인다"는 이유로 임신 39주 이전에는 선택적 유도 분만을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산부인과에서 으레 권하는 기형아 검사도 임산부에겐 '계륵'이다. 오는 10월 첫 출산을 앞둔 김미림(30·가명)씨는 올초 산부인과에서 기형아 검사를 권유받았다. 기형아로 판명이 되면 치료가 가능한지를 묻자 의사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의사가 간접적으로 낙태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김씨는 말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최안나 대변인은 "우리나라처럼 기형아 검사를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며 "기형아 검사를 모두 보험 처리해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대변인은 "태아 기형아 검사로 판별 가능한 것은 다운증후군과 신경관 결손 정도로 모두 뱃속에 있을 때 치료 가능한 장애가 아니다"라며 "결국 기형아 검사는 불법 낙태를 부추기는 효과만 낳을 뿐이므로 환자의 선택에 맡길 수 있도록 보험 항목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병원 수련의들이 환자의 동의없이 분만 과정을 참관하는 관행 또한 임신 여성들에겐 공포다. 3년 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장기은(29·가명)씨는 "분만실에 담당 의료진 외에 5명의 인턴들이 들어와 출산 시작 때부터 회음부 봉합 과정까지 모두 지켜봤다"며 "의사 수련에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두고두고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출산률이 떨어져 수련의들이 참관수업을 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전 서면동의 절차를 두면 수련의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위협받는다"고 고충을 호소한다. 결국 대학병원을 찾는 임산부들이 '참관수업'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 외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김상현 인권분만연구회 회장은 "대형병원에서는 대개 병원의 일방적인 매뉴얼에 의해 의료인 중심으로 분만이 이뤄진다"며 "분만은 여성의 본능인 만큼 의료진이 산모가 원하는 자세와 분위기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돕는 분만 철학을 가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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