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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꺼리는 산부인과, 아이는 어디서 낳지?

입력 2012. 07. 19. 19:10 수정 2012. 07. 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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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업무강도 높고 의료사고 압박

폐업 많아 지난해 50곳 감소

의대생·간호사들 지원 기피

분만실 없어 '출산난민' 우려

"공공의료로 지원해야" 지적

갓 태어난 아기의 우렁찬 울음은 중독성이 강했다. "의사들은 (사람이) 죽는 걸 많이 보잖아요. 분만실에선 달랐어요." '새 생명을 받아내는 경외감' 때문에 최석훈(44·가명) 원장은 2005년 서울에 산부인과를 열었다. 종합병원 한 곳을 빼면, 구 안에서 분만실을 둔 유일한 산부인과였다. 개원 뒤 5년 동안 최 원장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은 일이 없다. 병원에서 30분 거리 이상 벗어난 일도 손에 꼽힌다. 분만 산부인과는 야간·긴급상황에 늘 대비해야 했다.

그러던 최 원장은 2년 전 분만실을 닫았다. '자연분만' 산부인과 대신 '보톡스 시술'과 '모공 관리'를 앞세운 여성의원 간판을 내걸었다. "고된 당직근무는 둘째치고 언제 발생할지 모를 의료사고에 대한 공포감은 해를 더할수록 커졌다"고 최 원장은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52곳의 산부인과 병원이 개업했고 102곳이 간판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50곳 줄어든 것이다.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개업을 기피하는 외과 병원이 지난해 12곳 줄어든 것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난다. 반면 이비인후과는 47곳, 피부과는 41곳, 안과는 30곳, 성형외과는 19곳 늘었다. 산부인과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는 어렵다는 게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겪는 가장 큰 압박은 의료사고다. 최근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져 고위험 임신이 늘었다. 경기도 구리에서 10년 넘게 산부인과를 운영한 이아무개(48) 원장은 올초 분만 중 아기가 산소 부족으로 숨지는 사고를 겪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의사의 과실이 없는 불가항력적 사고"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들은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금전적 여유가 없던 이 원장은 지난 3월 자신의 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에겐 이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불가항력'으로 일어난 사고에서도 의료진이 30%의 보상금을 분담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신생아사망률이 1000명당 2.2명으로, 프랑스 등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의료진 입장에서 보면, 500명의 산모 가운데 1명의 태아는 숨질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새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책무를 강조하는 만큼 이를 돕고 후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아쉽다는 게 산부인과 의료진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의대생들도 줄고 있다. 올해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는 90명으로, 2001년(270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재 전국 산부인과 전문의 가운데 45%가 50살을 넘겼을 정도로 고령화돼 있다. 야간에 분만실을 지켜야 할 30대의 젊은 의사들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간호사들도 산부인과를 꺼린다. 20년 넘게 서울 마포구에서 분만 산부인과를 운영해오다 최근 분만실을 닫은 한 전문의는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야간당직 간호조무사를 구해야 하는데, 피부과·성형외과 등 더 편하고 잘 나가는 곳에 간호사들이 몰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진료 서비스 교육을 하려 들면, 그나마 버텨준 간호사들도 곧 그만둬 버린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결과, 주·야간 긴급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도 드물어졌다. 전국 230여곳의 기초 시·군·구 가운데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가 58곳이나 된다. 의료계에선 일본처럼 '출산 난민' 사태가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방 소도시의 임산부들이 다른 도시의 병원을 찾다 사망하는 일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최안나 대변인은 "의료를 민간영역에만 맡기면 성형외과·피부과만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공공의료 개념으로 분만실 확보와 함께 산부인과 전문의를 양성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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