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1)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

2012. 8. 1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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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여기 그늘에서 수업 듣던 아이, 지팡이 짚고 앉아 허, 세월 참..

[서울신문] 고향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마을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둥구나무를 연상하기 십상인 것처럼, 어린 시절의 학교를 떠올릴 때에도 대개는 학교 안의 나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딱히 시골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웬만한 학교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학교의 상징처럼 서 있게 마련이다. 학교마다 교목(校木)이나 교화(校花)를 지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교목, 교화의 의미를 강렬하게 남기기 위해 학교에서는 그 나무를 교정 앞 화단이나 울타리에 줄지어 심어 키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며 매일 나무를 쳐다볼 때에는 나무를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못한다. 나무가 오롯이 떠오르는 건 필경 학교를 떠난 뒤 어린 시절의 풍경을 추억할 때다.

●한재초등학교의 상징이자 자랑

전남 담양 대전면 대치리, 한재초등학교에는 그러나 지금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조차 매우 특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무 한 그루가 교정 안에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이들로서 나무 없는 학교를 떠올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그만큼 나무가 크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한재초등학교 교정 한편에 서 있는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8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다. 우리나라의 느티나무 가운데서는 키가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된 이 나무의 키는 무려 34m나 된다. 도시의 일반적인 건축물에 견주면 무려 12층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나무다.

사람의 가슴높이에서 잰 나무의 줄기 둘레도 8.78m라는 엄청난 수치를 나타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면 예닐곱 명이 둘러싸야 겨우 손을 맞잡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다. 규모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몇 그루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교정을 가득 채울 듯 치솟은 나무의 융융한 높이 탓에 학교 건물이 실제보다 더 낮아 보일 수밖에 없다.

"동문들 누구라도 학교를 이야기할 때면 이 나무를 먼저 떠올리지요. 느티나무 없이 우리 학교는 그려지지 않아요. 어디 가서 무엇을 하며 살더라도 느티나무는 우리 마음의 기둥이에요. 동창회 때면 모두 나무 그늘부터 찾지요. 한결같은 우리 학교의 상징이자 자랑이니까요."

한재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인 이봉근 칠성건설 대표는 총동창회의 주요 행사는 운동장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기본 행사만 마치면 동창들 누구나 느티나무 그늘부터 찾아든다고 한다. 동창회 기념 사진의 배경에 반드시 느티나무가 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손수 심은 나무

동창회뿐 아니라, 한재초등학교 교장실을 비롯한 곳곳에 걸린 학교 풍경 그림이나 사진에는 어김없이 느티나무가 등장한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무가 이 학교의 상징임은 금세 알 수 있다.

하긴 이만큼 크고 아름다운 나무라면, 굳이 이 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을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싶다. 물론 학교 이웃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대치리 느티나무는 마을의 자랑이며 상징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대치리 느티나무는 크기뿐 아니라, 전해 오는 유래까지 남다르다. 나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손수 심었다고 한다. 고려 말의 명장이던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들러 치성을 드리고 심은 나무라는 이야기다.

이야기대로라면 나무의 나이는 620살을 조금 넘는다. 이만큼 오래 살아온 나무치고는 생육 상태가 무척 건강한 편이다. 오래 전에 학교 운동장을 정비하던 때에 나무가 있는 자리를 조금 높여 나무 뿌리 부분에 복토를 한 흔적이 뚜렷하지만, 생육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대치리 느티나무 외에 이성계가 심은 것으로 전하는 나무는 한 그루 더 있다. 전북 진안 마이산의 아늑한 절집 '은수사' 경내에 서 있는 청실배나무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이성계가 건국의 기원을 다지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나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재초등학교 아이들은 나무 앞에서 이 나라의 역사를 배우면서, 태조 이성계가 심은 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나무에 대한 혹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키웠을 것이다. 나무는 그냥 그늘만 드리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이 나라 역사에 대한 자긍심까지 불어넣은 것이다.

●여전히 방과후 수업의 교실로 활용

"한국전쟁 때 우리 학교가 완전히 불에 타서 무너진 적이 있었어. 그래도 학교는 계속 유지됐는데, 교실이 죄다 불에 탔으니 당장에 공부할 자리가 없잖아. 그때 아이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가 바로 이 나무 그늘이었어. 그래서 선생님들은 이 그늘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하듯이 서두르곤 했지."

한재초등학교 졸업생인 정정수(89) 어르신은 당시 이 학교에서 가장 좋은 천연의 교실이 바로 느티나무 그늘이었다고 강조한다. 전쟁 통에 교실을 잃고 느티나무 그늘을 찾아 공부했던 때와는 다르지만 요즘도 느티나무 그늘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실로 활용된다. 이즈음처럼 무더운 날, 느티나무 그늘은 자연과 어우러진 더없이 좋은 교실인 까닭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삶과 역사를 배우고, 지금 이곳의 문화를 이뤄가는 아이들의 삶이 아름답기만 하다. 나무가 키워내는 사람살이의 현장이다.

글 사진 담양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전남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787-1 한재초등학교 내. 서해안고속국도와 호남고속국도를 연결하는 고창~담양 간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담양 지역을 빠르게 갈 수 있다. 북광주나들목의 요금소를 나가서 우회전하여 1㎞쯤 간 뒤, 대전면 대치리 마을로 들어서는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간다. 곧바로 좌회전하여 도로 아래로 난 길로 들어선다. 1.2㎞를 직진하면 대치사거리가 나오고 한편에 한재초등학교가 있다. 사거리 모퉁이의 농협 뒤편에 공용주차장이 있다. 나무는 한재초등학교 교정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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