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백기완]미 제국주의, 가진자와 평생을 싸우다

입력 2012. 08. 27. 00:09 수정 2012. 08. 2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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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80이 넘은 그의 이름을 잘 모른다. 하지만 386세대는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과 전두환의 군사독재 암흑기에 민주화를 위해 몸을 사라지 않았던 사람. '백범사상연구소'와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해 통일운동에 앞장선 사람. 87년 대통령 선거 때 민중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위해 과감히 사퇴했던 사람. 그의 이름은 백기완이다.

지금도 이어져 오는 백기완 선생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은 특정한 이념과 사상에 얽매여 있지 않다. 그의 운동은 모두 '현실'에서 출발한다. 통일운동은 한국전쟁 때 흩어진 그의 가족에서부터 시작됐고, 민주화운동은 매 순간 한국 산업발전의 그림자에 숨겨진 모든 이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순우리말을 좋아해 '새내기', '동아리', '달동네'와 같은 단어를 만든 것도, 그의 관심이 '한국'이라는 현실에 있다는 걸 방증한다.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역사의 현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백기완 선생은 권력과 돈은 물론이고, 명예와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한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의 삶, '요즘 젊은이'들도 백기완 선생이 궁금할 법하다.

2010년 11월25일,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서울대 공연을 앞두고(이은 감독 찍음)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무엇입니까?

나의 삶의 원칙은 '살티'야. 생명 아닌 것과 싸워서 생명을 얻자고 하는 그 생명을 우리말로 '살티'라 그래. 나의 삶에 대한 태도와 원칙은 생명 아닌 것과 싸워서 진짜 생명을 살려내는 거야.

2007년 12월 4일, < 경향과의 만남 > 때 찍은 사진( < 경향신문 > 우철훈 기자 찍음)

젊은 시절 가장 열중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우리나라에 허리가 뚝 잘렸어요. 그러니까 내 고향이 저 북쪽인데 우리 집안이 여덟 식구가 딱 네 식구씩 잘렸어. 남쪽에 네 식구, 북쪽에 네 식구. 내 젊은 날엔 어떤 놈이 우리의 허리를 뚝 자른 거냐, 허리를 뚝 자른 건 무얼 뜻하느냐, 그에 대한 물음을 늘 하면서 살았어. 13살부터 30살까지.

고민 중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허리를 뚝 잘랐다는 거, 그 자체가 침략이라는 거예요. 우리 한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했다는 그게 침략이란 거지. 그 침략한 게 누구야. 미국이다 이거야. 그래서 미국을 몰아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조금 세월이 가보니까 몰아내는 거 갖고는 안 되겠어.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면 딴 데 가서 또 남의 나라의 허리를 뚝 자르고 침략전쟁을 도발할 테니까. 그래서 미국 놈들을 이 땅별(지구)에서 아주 없애야겠다 했어요. 그런데 미국을(나라 자체를) 없애느냐? 아니라 이거야. 미국의 독점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결체인 미 제국주의를, 사람이 사는 이 땅별에서 없애야겠다는 것이 젊은 날의 내 기본적인 과제였어요.

그래서 내 어느 글을 보면 '해방이란 두 글자를 깨우치는 데 30년이 걸리고' 그런 피눈물의 구절이 있어. 나는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 30년이나 걸렸다 이 말이여. 지금도 마찬가지야. 미 제국주의를 없애자고 싸우고 있어요.

2011년 8월 27일, 4차 희망버스 청계광장

젊은 날에 지녔던 초심을 한결같이 지켜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랬다면 오늘날까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혹은 젊은 날과 지금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나는 나 혼자 생각은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내가 뭐 멱다시 잡고 싸울 수는 없어. 나 혼자는 어렸을 때, 젊은 날에 내가 가졌던 그 뜻을 지켜왔다고 생각해요.

나는 끊임없이 뜸꺼리(문제)를 이 피눈물 나는 역사의 현장에서 받아요. 어려운 말로 한 번 쓰면, 문제 제기를 삶의 현장에서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책이나 글로, 뭐 느낌이나 감상 이런 데서 뜸꺼리를 얻는 게 아니고 피눈물 나는 삶의 현장에서 문제 제기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젊은 날부터 가졌던 뜻을 지금도 이룩하려고 한결같이 몸부림치지 않느냐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요.

1987년 12월, 민중후보 백기완, 대학로 연설사진(*이날 민중후보 연설엔 시민 30만명이 모였다)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저는요 6∙25 전쟁 때 군인으로 갔다 왔어요. 그런데 우리 집안은 삼형제였는데 하나는 국군으로 죽고, 하나는 인민군으로 잡혀갔다가 감옥에 살고 있더라고. 모든 게 잿더미야, 잿더미…. 이때 잿더미란 게 무어냐. 이 땅에 목숨, 살티인 생명이 죽었다 생각한 거예요. 미국의 침략으로 죽었다 생각한 거야. 생명을 일으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선 사람을 깨우쳐야 하고, 두 번째는 이 역사가 올바로 되기 위해서 싸워야 해요. 그러면 사람을 깨우치는 방법은 뭐냐. 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이 땅에 살티, 생명을 심자 이거야.

그래서 젊은 날에 '나무 심기 운동'을 10년 동안 울면서 했어요. 그때 부른 '나무심기노래' 이 노랫말을 내가 지었어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2학년 다니던 김광일 박사가 노래 작곡을 했고. 이 노랠 부르면서 어떤 때는 젊은 애들이 몇만 명 모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몇백 명밖에 안 모일 때도 있고. 한 십 년 나무를 심느라 온몸을 바쳤어요. 나무는 생명인데, 내 가슴에도 심고 네 가슴에도 심고, 잿더미가 된 이 땅 구석구석, 세계 구석구석에 다 심자 이거야.

지금도 이 땅은 자본주의 때문에 잿더미가 됐잖어…. 여기다 살티를 심어야 해요. 생명을 심어야 해. 살티가 뭐야. 생명 아닌 것과 싸워서 생명을 얻어내는 것. 이것이 정말 살티예요. 그냥 추상적인 생명이 아니라!

< 자진녹화대_노랫말: 백기완, 노래곡 : 김광일 >

1957년 여름, 강원도 양양군에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할 때 벗들과 함께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부끄러웠던 건 많아요. 난 한 게 없거든. 그러니까 한순간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일생이 부끄러워. 그런데 하날 꼬집으라 그러면은….

6∙25전쟁 때야. 중학교 3학년 15살 난 계집애를 미군들이 윤간했어요. 그래서 그 어린애가 미군부대 철창 앞에서 '이 개새끼들아 나와라' 라고 외치는 거야 매일. 그러면 미국놈들이 그 계집애의 머리를 깎아. 그래도 오니까 헌병경찰에 저년이 빨갱이니까 잡아 때리라 그래. 그런데 헌병경찰이 와서 잡아 때려도 계집애는 또 와서 우는 거야. 그러니까 미군놈들이, 미군부대 앞에서 껌 장사 초콜릿 장사하는 깡패들한테 그래, 저년 빨갱이니까 때리라고. 그럼 발로 차고 그래. 근데 그때 전쟁통에 먹질 못해서 여드름도 못 난 창백한 어린 소년이 미군 부대에 가서 격투를 신청했어요. 너희 부대에서 가장 센 놈 나와라 이거야. 미군들이 막 웃으면서 베이비하고는 안 싸운대. 거 붙어봐야 될 거 아니냐 하니까, 코끼리 같은 놈이 나왔어요.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인데, 동그라미를 쳐놓고 '여기 안에서만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내가 너한테 지면 날 죽여도 좋아. 그런데 네가 나한테 지면은 매일 저 철조망을 붙들고 우는 여학생이 있어. 그 애한테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랬더니 좋다 이거야. 그래서 붙었는데 그 어린애가 견디겠어요? 밥도 굶고 다니는 애가 한방에 떨어져서 죽게 됐어. 그래도 애가 비실비실 일어나서 미군의 얼굴을 차려 그랬는데 너무 커가지고 급소를 찼어요. 그렇게 미군을 쓰러뜨리고 외치는 거야. '조선의 소년이 마침내 양놈의 새끼를 정복했구나!' 하고. 그때는 한국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백 명 중에 하나도 없었던 때거든요. 전쟁 통 때만 해도 전부 조선이라고 했어.

그런데 이건 일시적으로 원수를 갚은 거야. 그때 미국놈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여자 성 겁탈을 일 년에 십만 건씩 저질렀어요.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이 그렇게 모욕을 받고 살았는데, 모든 신문잡지가 미국놈 욕을 하나도 안 해. 지금도 안 하잖아. 그게 부끄러워. 왜 개인적인 복수만 했지 민중을 일으키지 못했느냐. 그리고 살티, 생명만 살린다고 어찌 보면 답답한 일만 했느냐. 그 부끄러움은 그냥 부끄러운 게 아니라 피눈물이 나는 거지 뭐….

민중의 원수를 갚는다는 건, 역사적 깨우침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역사적 자각을 해야 해. 이 역사를 그르치는 것이 뭐냐는 데에 대한 자각. 그래야 진짜 부끄러움이 뭔지 알아요.

2010년 11월 25일, 백기완 서울대 공연_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

본인에게 부모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엄마 얘기 하나 할게. 우리 엄마 얘기. 왜정 때는 일본놈들이 쌀을 많이 뺏어가고 돈도 뺏어가고 금은보석 다 뺏어갔어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살 수가 없었어. 우리만 가난한 게 아니야. 제국주의란 체제적으로 식민지를 가난하게 강요하는 거거든. 그런 섣달그믐 날 우리 엄마보고 어린 내가 '엄마, 왜 저녁이 됐는데 우리 집만 밥을 안 하는 거야. 남들은 떡도 한다야. 왜 우린 밥도 안 하고 떡도 안 해.' 그랬어. 근데 엄마가 그냥 불만 때. '엄마 밥하는 거야?' '아니.' '떡 하는 거야?' '아니.' '그럼 왜 불만 때?' 그러니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야. 지금 다 어려운 때, 굴뚝에서 내(연기)가 안 나가면 쌀이 떨어진 줄 안다는 거야, 이웃이. 그러니까 군불을 땐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배고파. 대여섯 살 때야. 내가 '에잇 엄마 미워!' 하고 가서 찬 바닥에 누워있으니까 우리 어머니가 나를 푸욱 껴안고 우시면서 하시는 얘기가. '기완아' '응?' '사람은 이 어려운 때에 자기 배지만 부르고 자기 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키가 안 커. 너 빨리 커야 우리 겨레의 원수를 갚을 게 아니야?'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어. 이 얼마나 멋있는 얘기야.

요즈음은 공부 일등 해서 명문 대학 가라고 그러잖아요. 물론 공부 잘한 애들 모이는 학교에 들어가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야. 문제는 자기 배만 부르고 자기 등만 따시려 하잖어…. 그러면 키가 안 커. '육체적인 키'는 커도, '정신적인 키'는 안 큰다는 것을, 낫 놓고 기역도 모르는 우리 어머니가 나한테 좌우명으로 가르쳐 주셨어요. 조선의 어머니들은 이런 걸 가르쳐 주셨다니까?

1950년 17살 때의 소년 백기완, 피난길에 빌려입은 옷이라 학교 단추가 다르다.

인생에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젊은 날, 돈이 가졌던 의미와 지금의 돈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다릅니까?

여기서 돈이 배고플 때 김밥 사 먹을 돈, 그런 돈을 말하는 게 아니지? 나는 말이야. 돈은 '다슬'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슬은 자비라는 말이야. 불교에서 얘기하는 자비, 기독교에서 행하는 사랑. 그와는 다르게 우리말로 다슬이라고 그래요. 다슬이라는 것은 있는 대로 다 내놓는 땀이야. 사람이 땀을 흘리면 땀이 땅에 떨어져서 거름이 되잖아. 내 거가 아닌 거, 그걸 보고 다슬이라 그래요. 돈은 다슬이어야 된다 이거야. 거름이 되어야 해. 거짓재비 가짓말 사랑이 아니라 몽땅 누룸(자연)의 것이 되는 다슬. '돈만 있으면 나도 뭐하고, 돈만 있으면 난 어디 가서 별장 짓고, 돈만 있으면 우주 정거장도 내가 만들겠어.' 이런 게 아니야. 진짜 돈은 내 거가 아니야. 몽땅 '자연'의 것이지.

나는 스무 살이 돼서야 가래떡을 얻어먹었어요. 가래떡 구워서 파는 게 얼마나 먹고 싶던지…. 그런데 돈이 있어야 먹지. 스무 살 그날 길을 가는데, 초등학교 3학년짜리하고 5학년짜리 형제가 구두를 닦고 있더라고. 근데 한 미군이 그 어린 구두닦이가 구두를 잘못 닦았다고 구두통을 발로 차고 그냥 가더라고. 애들이 울면서 좇아가는데 때리더라고 어린애를. 난 그냥 배고파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 그렇지만 (미군을) 툭툭, 돌아서는 걸 그냥 들이받았지 뭐. 그러니까 그 미군이 얼굴이 없어졌어. (웃음) 그랬더니 구두닦이 꼬마가 '아이 형!' 기분 좋아서 먹던 가래떡을 요만큼 날 줬어요. 그때 아… 돈이라는 것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한테 눈물과 한숨을 강요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돈이 있었을 때, 없을 때를 다 겪고 이 나이에 내가 돈에 대해 느낀 건…, 돈은 그건 부패고, 또 한편으로는 한숨과 눈물만 자아내는 잔인한 흉기로구나,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젊은 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지금 그 일을 다시 겪는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난 생각을 하면 꼭 실천에 옮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기질을 가졌어요. 근데 그러지 못한 때가 있어…. 내 사랑하는 동무가 있었어요. 공부는 일등인데, 집안 사정 때문에 탄광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죽었어. 내가 그 친구를 병원에 입원시켰으면 살았을 텐데…. 탄광 노동 2년 만에 진폐증으로 죽었단 말이야.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에요. 그 친구를 돕기 위한 '실천'을 하지 못한 게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지. 그땐 술을 마셔도 막소주를 마셨어. 막소주란 도수만 높은 싸구려 술을 말해요. 돈이 없어서 그 친구랑은 안주도 없이 막소주만 마셨을 뿐….

2008년 6월 백기완 대학로 공연_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첫사랑이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묻는 거야?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야?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지금 '할머니'가 됐을 거고, 젊은이들은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니 내가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해줄게.

55년도 이야기예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 피부가 하얗고 목이 길었어. 하루는 나한테 쪽지가 왔는데 다짜고짜 창경궁으로 나오라는 거예요. 내가 자주 가는 찻집에 쪽지가 놓여 있었어. 처음에는 다짜고짜 나오라고 해서, 나랑 싸우자는 줄 알고 신발 끈을 조여 매고 갔어. 그런데 웬 여자애가 있는 거야. 그 친구와 걸어서 고려대학 둘레(근방)까지 걸었어요. 그땐 고려대학 너머는 보리밭, 밀밭이었어요. 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지.

그런데 그땐 연애하기가 어려웠어. 잘 곳도 먹을 곳도 없는데, 사내와 계집이 놀고먹고 얘기할 곳이 어디겠어요. 또 한창 나는 '나무 심기 운동' 때문에 바빴지. 연애 좋지. 손잡고 걷는데 뭐가 나빠? 그런데 나는 젊은이가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개인적인 감정, 감상, 욕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 친구와 멀어졌죠. 그 친구가 써준 편지 구절이 아직도 생각나긴 해. "언젠간 길을 잃는다 이거야 내가. 그럼 자긴 등대로 있겠다"고.

1957년 가을, 아내 김정숙과 함께(서울 남산)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가장 바꾸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순간을 왜, 어떻게 바꾸고 싶습니까?

다시 태어나면 나는 계집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사내로 태어나니깐 자꾸 앞장서고 싸워야 하잖아. '희망버스' 같은 거 타면 이 늙은 할아버지 맨 앞에 태우잖아. (웃음)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내가 정기교육을 받아야 스승이 있지. 나에겐 길거리에서 피눈물로 사는 민중들이 스승이에요. 13살 때 내가 싸움이 붙었어. 내가 만날 매를 맞다가, 그날은 그 키 큰 놈을 내가 이겼어. 신이 나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쳐. 서울역에서 어깨에 짐을 져먹고 사는 사람을 '가대기'라고 하는데, 그 가대기 형이 나한테 말을 건 거예요. 나는 신이 나서 "형, 오늘은 내가 이 자식하고 싸워서 이겼어."라 말했지. 그런데 형은 "가진 거라곤 '이' 밖에 없는 놈들끼리 싸워봐야 코피만 터져. 싸움은 가진 놈, 나쁜 놈하고 싸우는 거야 인마. 없는 놈들끼리 싸워봐야 코피만 터져."라고 말하는 거야.

지금도 내 소원은 서울역 어디 구석에다 땅 3평만 사서 거기다 그 얘기를 새겨놓는 거예요. 새긴돌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 "싸움이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다. 그래야 이기고 지는 게 있다"라고. 그 가대기 형 이름도 성도 몰라. 그런데 내 평생의 스승이야.

인생에 영향을 준 책과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각각 한 권을 추천(모두 2권)해 주십시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라는 책을 추천해 주고 싶어요. 다 아는 얘기지만. 가장 감명받은 책은 자본론이에요. 난 자본론을 아직도 읽어.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후회라는 것은 뉘우치는 것인데, 보통 뉘우친다 할 땐 어리석었던 일을 뉘우치는 거예요. 이때 어리석었던 일이란 게 범죄는 아니에요. 범죄는 뉘우치는 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뉘우치지 않을 수 있나. 모자라게 나가지 말라는 거야. 이 모자란다는 건, 순정이 없다는 말이에요. 순정이란 건 진짜 좋아하는 건 목숨을 걸고 일생을 좋아하는 걸 말해요.

바보 온달 얘기 알죠? 바보 온달이 왜 아직도 얘기 되느냐? 순정이 있잖아. 바보지만 순정이 있잖아. 순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머저리, 멍청이라 그래요. 바보 가운데 바보가 바로 머저리예요.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은 순정이 없어…. 자기만 보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눈앞만 보려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자기만 보지 말고, 자기가 겪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앞을 보라는 건, 자기 욕심만 보지 말고 바랄(꿈)을 보란 거예요. 바랄은 이상하고는 다른 건데, 요새 젊은이들이 바랄이 없어. 목숨을 걸고 일궈야 할 꿈이 없다 이 말이여. 그래서 바보도 못 되고 머저리란 말이야. 머저리가 되면 안 되잖어…. 젊은이들이여, 순정의 잎새가 되시라. 비바람에 노다지(늘) 시달려도 나무의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리박으며 고개 들어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처럼 살아가는 잎새….

백기완 선생은 인터뷰 도중 흥이 돋으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현실'의 어두움을 말할 땐, 격한 표현을 하며 세상을 비난했다. "이 할아버지가 말이야"라고 말할 땐, 백기완 선생은 따뜻한 '우리들'의 할아버지를 연상케 했다. "녀석들 밥도 못 챙겨줘서 어떡하지?" 선생은 인터뷰가 끝난 후 떡볶이를 사 먹으라며 용돈을 챙겨주었다. 그날만큼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의 통일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투사'가 아닌, 꾸깃꾸깃한 용돈을 아이들에게 쥐여주는 인자한 '우리들'의 할아버지였다. 비 오는 대학로에서 백기완 선생이 쥐여주신 따뜻함 덕분에,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윤지연

백기완 선생님은 '청춘'이다. 늘 궁금했다. 서점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청춘'이란 단어가 무엇인지. 백기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청춘은 순수함에서 오는 열정이라는 걸. 돈․권력․명예에 목메지 않는 삶은 여든이 넘어도 순수하다. 백기완 선생님의 여느 '젊은이들' 못지않은 바랄(꿈)에 대한 열정도 이 순수함에서 오는 듯하다. 할아버지의 때 묻지 않는 그 '도도함'이 근사했다. 댓거리(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다짐해본다. 나도 청춘이어야겠다고. -이휘주

현재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노나메기추진위 고문이며 일생을 반독재, 해방통일 운동을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으며,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 혼자 공부했다. 1950년대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도시빈민운동을, 60년대엔 한일협정반대투쟁을 전개했으며, 70년대에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반유신투쟁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되었고, 80년대엔 전두환 정권 밑에서 모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통을 겪었으며, 1987년, 민중후보로 민주세력의 통합과 군사독재의 끝장, 분단/부패 세력을 없애고자 했다.

요즈음은 우리 겨레의 이야기 속에 숨 쉬는 민족문화와 민중문화를 끄집어내 새롭게 창작하는 일과 우리말 살려 쓰기에 힘을 쏟고 있으며,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다듬고 통일의 알짜는 '노나메기' 라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노나메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노나메기'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살자는 뜻이다.

민요연구회와 전노협 고문, 반핵평화운동연합 상임고문,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쓰신 책《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부심이의 엄마생각》,《백기완의 통일이야기》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장산곶매 이야기》

시집 《이제 때는 왔다》,《젊은 날》,《백두산 천지》,《아! 나에게도》외 다수의 책이 있다.

윤지연, 이휘주/인터넷 경향신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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