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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6명이..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행렬

입력 2012. 08. 27. 20:00 수정 2012. 08. 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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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5월부터 자살 줄이어

6명 모두 지자체 관리밖

주민이 서울시에 글 올려

"삶 포기 않게 도와주세요"

아파트 화단이 동트기 전 '붉게' 물들었다. 새벽 5시20분 이도희(94)씨가 가동 13층 집 베란다에서 잠든 손자를 뒤로하고 투신했다. 14평 집 안방에선 장애 아들 내외가 자고 있었다. 지난 3일이다. 나흘 뒤 이씨의 동네 단짝 차배숙씨도 나동 6층 복도 밖으로 몸을 던졌다. 오후 6시45분께 늙은 아들에게 차려준 밥상을 치운 뒤다. 복도 벽은 차씨가 감당할 높이가 아니다. 98살 노파는 유모차를 끌어와 버겁게 딛고 올랐다. 일주일 뒤인 14일 다동에 거주하는 21살 이준호씨는 외조부모가 잠든 13층 집 앞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밤이었다.

홀로 사는 손한수(63)씨는 집안에 설치된 간이소화기에 빨랫줄을 묶고 목을 맸다. 누구를 기다렸는지 현관문을 열어뒀다. 이웃이 발견했다. 5월15일 가정의 날이었다. 두 발목도 줄에 감겨 있었다.

보름 전인 5월1일 나동, 경찰이 김수연(35)씨가 잠근 욕실을 열어젖혔다. 문짝 틈새까지 두른 청테이프가 뜯어졌다. 욕실 안 김씨는 다 타버린 번개탄 옆에 누워 있었다. 안방엔 유서가 있었다. "나를 화장해 바다에 뿌려줘."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김종석(22·지적장애 2급)씨는 아버지가 음주폭력으로 입건된 사이 투신자살했다. 7월20일이다. 나동 1층에 사는 김씨가 15층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길을 승강기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기억했다. "불안해하며 계속 층수만 보더라고요. 1층, 2층, 6층, 15층…. (경찰이) 그러고 바로 뛰어내린 거래요." 따로 살아왔던 김씨의 형(31)이 울며 말했다.

서울 강북권에 위치한 이 영구임대아파트엔 1780여가구 4250여명이 산다. 지난 5월부터 100여일 동안 이도희·차배숙·김수연·김종석·손한수·이준호(모두 가명)씨 등 주민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일 거주환경에서 단기간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

3~4년 가중된 경제난과 박탈감 등이 이곳 빈민들의 삶을 무력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 아파트의 최근 자살률은 1000명당 1.41명꼴이다. 2010년 전국 평균 자살률인 1000명당 0.31명, 서울시 0.26명과 단순 비교하면 4.5~5.4배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0.11명)의 12.8배다.

자살한 6명 가운데 단 한명도 자치구나 정신보건센터, 서울시 지원을 받는 단지내 사회복지관의 사례관리·상담군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주변아파트 주민 여럿은 이 아파트 학생들을 '임대애'로 부른다. 재력·건강·소속(커뮤니티)이 없는 '3무 시민'으로 공공복지체계의 사각에 놓여 있다.

단지내 한 주민이 지난 16일 서울시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존경하는 서울시장 및 공무원 여러분 우리 동네에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시고…, 답답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주민들에게 존엄성과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지난 3월 시행된 '자살예방법'에 따라 서울시는 다음달, 보건복지부는 연말께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세상을 뜬 여섯 망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영구임대아파트 역사

영구임대아파트는 1990년 10월 서울 도봉구 번동에서 처음 입주자들을 맞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수급자, 새터민, 유공자 등에게 거주 자격이 주어졌다. 1993년 사업이 중단되고, 정권에 따라 공공임대아파트나 국민임대아파트 등이 등장했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임대아파트 가운데서도 최저빈곤층의 주거공간으로, 사회 전반의 차별이 집중된다.

전국엔 영구임대아파트가 20만가구가량, 국민임대 아파트가 37만가구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공사가 공급·관리하지만, 자살 현황은 파악하지도,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는다. 에스에이치공사가 일부 제공한 자료는 경찰 집계와 차이가 컸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의 죽음을 따로 연구한 정부나 학계의 보고서도 없다.

박원순 시장, 임대아파트서 1박2일 현장회의서울시 "직접 주민 의견 듣고 전문가와 대책 논의 진행키로"

서울 강북지역 영구임대아파트에서 5월 이후 100여일 사이 입주자 6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자(<한겨레> 8월28일치 1면), 박원순(사진) 서울시장이 영구임대아파트에서 1박2일 숙식하며 주거·건강·복지를 연계하는 영구임대아파트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빈곤·소외층에 저렴한 임대료의 주택을 제공하는 선에 그치던 영구임대아파트 정책 방향을 전환할지 주목된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28일 "박 시장이 한 영구임대아파트를 찾아 1박2일 머물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와 대책을 논의하는 숙의를 하기로 했다"며 "영구임대아파트만을 대상으로 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서울시 복지건강실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시는 박 시장의 방문 시기와 장소, 구체적 방법을 검토중이다. 박 시장은 내부 정책회의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한다'는 뜻의 숙의(熟議)로 정하고 교통·복지·주택정책 등을 다뤄왔다. 또다른 시 고위 관계자는 "박 시장의 현장 행정으로 실무 공무원들의 이해도와 집행력이 높아지고,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의 생존권 문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상범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이날 오전 자살이 잇따라 발생한 영구임대아파트를 방문해 자치구·정신보건센터·사회복지관 등과 현장 회의를 했다.

서울에는 서울시 산하 에스에이치(SH)공사가 강남·강서·노원·마포·중랑구에 지은 2만2370가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강서·강북·노원·동작구에 공급한 2만4854가구 등 모두 4만7224가구 영구임대아파트가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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