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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수사에.. 노숙소녀 안 죽였다"

수원 입력 2012. 08. 28. 02:47 수정 2012. 08. 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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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 초유 출소 뒤 재심수원 살해 사건 혐의 30대, 5년여 복역 마치고 출소 "누명 벗고 효도하고 싶어"무죄 증거 나와 반전 기대

지난 2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법무법인 경기 사무실 문을 열고 정모(34)씨가 들어왔다. 2007년 5월 14일 수원 모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일명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범인이다. 정씨는 5년 2개월간 복역하고 이달 2일 만기출소했다. 지난 6월 28일 대법원이 상해치사죄에 대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해 재심이 시작됐지만 아직은 '살인범'이란 굴레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정씨는 160㎝가 조금 넘을 듯한 작은 키에 체격이 왜소했다. 청바지에 흰색티셔츠를 입었고, 머리는 짧았다. 고도근시라 렌즈가 두꺼운 흰색 뿔테 안경을 썼다. 밤에는 안경이 없으면 앞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노숙소녀가 살해된 그날 밤 그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정씨는 출소 뒤 한 달에 25만원인 수원의 한 고시원에 거처를 정했다. 이날은 하루 종일 택배 상ㆍ하차 일자리를 알아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사건 이야기를 꺼내자 깊은 한숨부터 내뱉었다. "수감 초기 자살 같은 안 좋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끝도 없이 후회 했고, 나를 범인이라고 진술한 친구 강모씨에 대해서도 나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수사기관에 대해서도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군화발로 정강이를 차고, 서류뭉치로 뒤통수를 때려 공포심을 느꼈다"며 "하지만 난 죽이지 않았다. 그날 밤 그 학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정씨는 출소 며칠 뒤 울산에 사는 홀어머니를 만나고 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 5년여 만에 악몽이 시작된 수원역에도 다시 갔다. 그는 "역 앞에 서니 마음이 착잡했다"고 했다.

상해치사 혐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영향을 미친 강씨와는 얼마 전 대전에서 재회했다. "그 친구가 나를 보더니 '수사 받을 때 너무 무서웠다.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이미 형을 다 살고 나온 마당에 더 이상은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씨는 재심이 마무리되면 평범하게 살기를 원한다. 취업과 결혼,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그는 "한번도 어머니께 효도를 하지 못하고 걱정만 끼쳤다"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살인범으로 만든 수사기관에 대해서는 "재심 판결이 나오면 그때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상해치사죄에 대한 서울고법 재심(항소심)은 이달 21일 개시됐다. 형사사건 범인이 수감 중 재심이 결정되고, 출소 뒤 재심이 열리는 것은 사법역사에 없던 일이다. 경찰과 검찰에 의해 두 번의 별도 수사가 이뤄지고, 법정위증 사건이 추가된 뒤 재심까지 결정되며 노숙소녀 살해사건은 한 사건에 총 15번의 법원 판결이 나오는 희귀한 기록도 세우게 됐다.

재심을 이끌어낸 박준영 법무법인 경기 변호사는 이번에도 무죄를 확신하고 있다. 대법원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한 이상 유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씨와 강씨의 법정위증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증언이 위증이 아닌데 상해치사에 대해 또 유죄가 나오면 이전 판결들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박 변호사는 "정상인과 지적장애인의 경계선상에 있는 정씨가 새 삶을 살수 있기를 바란다"며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진범이 없는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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