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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만 오는 아빠 "엄마 닮은 년" 온몸 때려

입력 2012. 09. 19. 19:20 수정 2012. 09.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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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또다른 성범죄, 청소년 성매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② 폭력

아침마다 한자쓰기 강요한 아빠"지각한다" 말하니 입에 농약 부어새엄마는 회초리질에 발로 밟기도이혼한 아빠 따라 할머니집살이툭하면 때리는 부모에"집보다 거리가 낫다"

낮엔 거리를 쏘다니면 그만이다. 그러나 쉴 곳 없는 밤은 길다. 거리의 소녀들이 편히 잠들 곳은 없다.

지난 11일 밤 12시 무렵 세 소녀는 서울 변두리의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의자를 이어붙여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플라스틱 의자는 딱딱하고 울퉁불퉁했다. 그래도 지민(가명·14), 아영(가명·14), 혜리(가명·14)는 비좁은 의자에 머리를 붙이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소녀들은 이날 내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거리를 쏘다니기만 했다.

"3층 영업 마감해요." 새벽 3시 패스트푸드점 직원이 그들을 깨웠다. 소녀들은 2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플라스틱 의자를 붙여 누웠다. "매장에 누워 계시면 안 돼요." 새벽 5시, 직원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영과 혜리는 잠이 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청소시간입니다. 나가주세요."

아침 7시 아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삼각김밥을 한 개씩 집어 들었다. 다시 거리의 하루가 시작됐다.

왜 이러고 다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민의 거리생활은 벌써 6년째다. 간혹 집에 들어갔다가도 금세 뛰쳐나온다. 집은 거리보다 더 냉혹하다.

지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아빠는 날마다 한자를 200자씩 쓰고 학교에 가게 했다. 어느 날 늦잠을 잤다. "지각하니까 다녀와서 쓰면 안 돼요?" 그다음 벌어진 일에 대해 지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농약 병을 들고 와 컵에 부었다. "너 그렇게 말 안 들을 거면 나가 죽어!" 아빠는 지민을 바닥에 눕혔다. 어깨를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지민의 입으로 컵에 담은 농약을 쏟아부었다. 지민은 죽기 싫었다. 입을 꽉 다물었다. 농약이 입술 주위로 콸콸 흘렀다.

아빠가 잠들면 새엄마가 지민을 때렸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다고, 초등학생 지민을 대나무 회초리로 때렸다. 시험 성적이 나쁘면,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지민의 머리를 쑤셔넣었다. "기절하기 직전에 풀어주더라고요." 새엄마는 지민을 집 앞 골목으로 데리고 가 발로 밟기도 했다.

"나 여기서 못 살아요. 죽을 것 같아요. 차라리 고아원 보내주세요." 자신을 찾아온 큰엄마에게 지민은 그렇게 호소한 적이 있다. 열한살 소녀가 간절히 원한 것은 맞아 죽지 않는 방법이었다. 살아남으려고 택한 것이 가출이었다.

지민은 말수가 적은 소녀다. 그래도 새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숨차도록 말을 이어갔다. "새엄마한테 당한 일을 말해봤자 또 혼나니까 아빠한테도 이런 이야기 안 했어요."

폭력의 뒤에는 가난이 있다.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간 뒤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아영은 말해주었다. 엄마와 헤어진 뒤 아빠는 직장을 그만뒀다. "집에 있어봐야 짜증만 난다"며 아영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서울 외곽의 한 공장에 취직한 아빠는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주말에만 집에 들렀다.

아영은 할머니와 살았다. "쟤 엄마 없어서 할머니랑 산다"고 친구들은 수군거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빠는 아영을 때렸다. "가시나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할머니가 이르면, 아빠는 아영의 뺨을 쳤다. 주먹으로 온몸을 때리기도 했다. "지 엄마 닮은 년, 니네 엄마처럼 될려고 그러지?"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외로움이 남았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 학교 가방 챙기는 일이 서러웠어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열세살 무렵의 아영은 생각했다. "엄마처럼 될 것 같다"는 아빠의 말이 뱀의 혓바닥처럼 아영의 심신을 괴롭혔다. 그 슬픔과 외로움을 삭이는 법을 아영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아영은 엄마처럼 집을 나와버렸다. 아영의 나이 열세살이었다.

거리에 나선 열세살짜리를 보호해줄 울타리라곤 먼저 가출한 언니·오빠들밖에 없고, 그들과 함께 먹고살려면 남자들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아영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엄지원 박아름 기자 umkija@hani.co.kr

가출 소녀 56%가 '빈곤가정'…15%가 학대수준 폭력 겪어

10대 청소년들의 가출 사유가 모두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통된 호소는 "거리가 집보다 낫다"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가출 10대 소녀 가운데 다수가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다. 조사 대상 청소년 17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6%가 자신의 가정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으로 자존감이 무너진 부모는 가족간 소통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에게 부모의 상황을 물은 결과, 20.9%는 부모가 서로 불화를 겪었고 17.9%는 부모의 심각한 간섭에 시달렸다. 15.2%는 부모로부터 학대 수준의 폭력을 겪었고, 11.2%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이들 부모의 7%는 알코올 중독, 4%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가출 소녀 가운데 일부는 친족에 의한 성폭행도 경험했다. 처음 가출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 175명 가운데 8.5%인 14명이 "가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서"라고 답했다.

엄지원 기자

※ ③'탈출'에서는 거리로 나온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에 발 들이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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