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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준다고 해 갔더니 성폭행"..병 얻어도 돈 없어 방치

입력 2012. 09. 23. 20:30 수정 2012. 09.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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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또다른 성범죄, 청소년 성매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④ 추락

"가출하면 누구나 당하는 일"숙식 해결할 돈 없어 순응·체념성병 감염되고 폭력에 망가져"공포증도 생기고 한없이 울적"

"괜찮아요." 아영(가명·14)은 말했다. "어차피 당했는데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성폭행당한 일에 대한 조심스런 질문을 받고서 아영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가출하면 다 당하는 일이에요." 괜찮으니 편하게 물어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소름 끼쳤죠."

아영은 지난해 처음 성폭행을 당했다. 갈 곳 없는 아영을 재워주겠다는 20대 남자를 온라인에서 만났다. 처음 보는 가출 청소년 두 명이 20대 남자 집에 얹혀 지내고 있었다. "나랑 사귀자." 20대 남자가 말했다. "나랑 여자친구 하면 내가 재워줘도 경찰에 안 걸려." 그게 무슨 뜻인지 13살 아영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집에서 지낸 지 나흘째 되던 날, 아영은 '소름 끼치는 일'을 당했다.

20대 남자 집에 함께 살던 다른 가출 소녀들도 같은 일을 겪었을 것이라고 아영은 짐작한다. "가출하면 다 당하는 일"이라는 아영의 말은 그저 추정이 아니었다. 숙식을 해결할 돈이 없는 10대 소녀들을 어른들은 손쉽게 성폭행한다.

그 뒤로도 네댓 차례, 아영은 서로 다른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재워주겠다는 데 가면 다 (성폭행)당한다고 보면 돼요. 나쁜 짓 안 한다고 하는데 다 해요." 경찰에 신고한 적은 없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잘 곳이 없으니까요." 14살 소녀의 눈가에 체념의 빛이 깃들었다.

모든 일이 괜찮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아영은 자신을 성폭행한 20대 남자의 집을 뛰쳐나왔다. 함께 지내던 언니가 아영을 붙잡고 말했다. "걔 성병 있어. 치료 안 하면 아기 못 가져. 병원 가봐." 그래도 아영은 병원에 가지 못했다. 가진 돈이 없었다. 병원에 가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터치'만 허락하는 '키알'(키스알바)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지난 11일, 아영과 그 친구 지민(가명·14)은 기자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와 세균이 두 소녀의 몸에서 발견됐다.

거리의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들 모두 성폭행 또는 성매매의 첫 경험에 대해 "끔찍하다"거나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다만 그들은 그 상황에 쉽게 순응했다. 끔찍하고 싫은 일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을 더 찾지 않고, 쉽게 포기했다. 그리고 그들을 굴복시키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의지할 어른이 없어 스스로 어른이 되는 길을 선택한 지민에게도 처음 겪은 그 일은 끔찍하다. "오, 사, 삼, 이, 일." 그 일을 떠올리면 거머리처럼 검고 끈적하게 자꾸 지민에게 달라붙는 목소리다.

한달 전 가출한 지민은 처음엔 공중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잠을 잤다. 견디다 못해 재워줄 사람을 찾았다. 온라인에서 "재워주겠다"는 쪽지를 받고 무턱대고 서울에 올라왔다. 일면식도 없는 스무살 남자의 집이었지만, 남자의 삼촌도 함께 살고 있었다. 내심 안도했다. 가족이 있으니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남자는 지민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어른들이나 하는 행동을 강요했다. 처음 겪는 일에 지민은 "싫다"고 소리쳤다. 알고 보니 함께 사는 남자의 삼촌은 나이만 많을 뿐 지능이 떨어졌다. 지민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진짜 안 해?" 지민을 윽박지른 남자는 숫자를 셌다. "오, 사, 삼, 이, 일." 지민은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쳐? 오, 사, 삼, 이, 일." 남자는 무언가를 강요할 때마다 숫자를 셌다. "더러웠어요. 숫자 세는 거에 공포증 생겼어요." 그 일을 떠올리는 지민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첫 성폭행 뒤에도 폭력은 계속된다. 거리의 생계를 위해 '조건만남'에 나서면 '조건 밖의 폭력'이 시작된다. 지민의 가출친구인 선화(가명·15)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조건만남에 나섰다. 그래도 선화는 여전히 그 만남이 두렵다. 술 취한 아저씨들은 '선불'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선화를 때렸다.

선화의 몸은 금세 망가졌다. 못 참을 복통에 병원에 가니 의사는 골반염과 자궁염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사는 제가 미친 것 같아요." 혼자 누우면 한없이 울적해진다고 선화는 말했다.

엄지원 박아름 조애진 기자 umkija@hani.co.kr

※ ⑤ '착취'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성적 학대와 착취의 덫에 소녀들을 가둔 남성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① 만남

② 폭력

③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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