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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 추석땐 친정 가라..나도 내 친정 가마"

입력 2012. 09. 30. 14:01 수정 2012. 09.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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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가람 기자]

2009년 3월 결혼 후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 난 결혼 후 첫 명절인 추석 땐 출산을 두어 달 앞둔 임산부였다. 다행히 시아버님이 막내시라 차례를 지내지 않아 명절음식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님께선 새 식구 들이고 첫 명절인데 함께 나눠 먹을 음식 몇 가지는 장만하신다 했다. 배도 부른데 음식 한다고 일찍 올 필요 없으니 아범 늦잠 충분히 잔 후 추석 전날 시댁으로 오라 하셨다.

그래도 며느리인데,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추석 이틀 전부터 시댁에 가지고 갈 불고기를 만들고, 추석 전날은 아침부터 일어나 산적을 구웠다. 결혼 전 친정에서 늘 명절에 전 부치는 일은 했었지만 시댁 어른들이 드실 음식이라 생각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 대강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

시어머님은 아가씨와 함께 오전부터 전을 부치셨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거의 끝이 나있었다.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남은 전이라도 부치려고 앉는 내게 전을 부치던 아가씨가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며느리가 이렇게 늦게 와도 되느나며 자리를 내주었다. 웃으며 했던 말을 아가씬 생각도 나지 않겠지만, 3년 반이나 흐른 지금도 난 명절만 되면 아가씨의 한마디가 생각나 마음이 바빠진다.

▲ 그래도 맛있는 차례음식

경상도에선 나물을 이렇게 비벼 먹는다.

ⓒ 정가람

아, 새언니 그땐 내가 정말 미안했어요!

나도 그랬었다, 결혼 전에는, 친정 오빠의 부인, 내 새언니에게! 큰집이라 명절 음식을 많이 장만했던 친정은 추석 전날 아침부터 꽤 많은 양의 명절 음식을 장만해야 했다. 아침부터 전을 부치면서 새언니가 언제 오나, 작은 엄마가 언제 오나 시계를 보고 또 봤었다.

새언니가 오면 은근슬쩍 내 방으로 가 쉬곤 했고, 명절날 아침엔 부엌에서 엄마와 새언니가 차례상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도 최대한 늦게까지 이불 속에 누워 있곤 했었다. 그렇게 몇 년 더 얄미운 손아래 시누이 노릇을 하다 시집을 와 이젠 내가 시누이 눈치 보며 전을 부친다. 명절날엔 새벽같이 일어나 시어머님과 단둘이서만 만두를 빚어야 했다.

결혼 후 첫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새언니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 그동안 알게 모르게 미안한 게 너무 많았다는 부끄러운 사과를 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새언니는 얼굴도 못 본 정씨 집안 조상님들 차례상을 차린 것이다. 친정집 음식 장만에 비하면 시댁은 반의 반도 안 되는 양이었는데 며느리라는 위치 때문이었는지 시댁에서 1박 2일 첫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몸살을 앓았었다. 이런 내 얘길 들으신 친정엄마는 한마디 하신다.

"후후, 그게 바로 시댁이란 거다!"

이렇게 결혼 후 명절은 달라졌다. 어릴 때는 학교도 안 가고 맛있는 거 먹으며 오랜만에 친척들 얼굴 보며 노는 빨간 날의 연속이었고, 결혼 전에는 아주 조금 부엌일을 도우며 밀린 작업을 몰아서 하는 쉬는 날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명절은 챙겨야 할 게 많은,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 아무리 마감이 임박한 작업이 있어도 손도 댈 수 없는 심신이 바쁘고 피곤한 연휴 아닌 연휴가 돼 버렸다.

음식 장만은 앞에서 충분히 언급했고, 현실적인 고민의 시작은 아무래도 명절 선물일 것이다. 시댁과 친정 부모님을 시작으로 집안 어른들께 드릴 선물 준비로 명절 며칠 전부터 고민이었다. 그러다 결국 성의 없어 보이지만 가장 나은 선물이라 판단내린 현금이 든 봉투로 4년째 명절을 넘기고 있다. 어릴 적엔 명절이면 두둑해지는 지갑이 명절 최고의 즐거움이었는데 이젠 큰 지출만 있는 명절이 되었다.

명절 당일 저녁은 꼭 친정에서!

이제 명절 선물은 준비되었고, 다음은 친정에 언제 가느냐의 신경전이 기다린다. 명절 당일 아침을 먹고 큰댁에 인사를 다녀오고 나면 그때부터 눈은 거의 시계에 가 있다. 어떻게 하면 저녁 먹기 전에 일어날 수 있을까 눈치작전.

결혼한 많은 친구들이 결혼 전 남편들에게 각서처럼 받아낸다는 약속이 있다. '명절 당일 저녁은 꼭 친정에서 먹기!' 우리 부부의 경우 남편은 어릴 적 명절엔 대부분 3일 내내 큰집에서 놀아서 명절 연휴에 외가에 가는 일이 낯선 일이었다. 더구나 서울에서 차로 4시간 걸리는 남편의 처가, 나의 친정은 명절이면 주차장 같은 도로를 지겹게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결혼 후 처음 귀성길에 올라본 남편은 몹시 힘들어 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정체를 피해 다녀올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 12시에 떠나보기도 하고, 명절 다음 주말에, 혹은 명절 전 주말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장시간 운전하는 남편을 대신해 중간에 조금씩 운전을 하기도 했지만 운전은 거의 남편 몫이었다. 명절에 시댁 다음 친정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명절이면 운전하는 남편 눈치를 보고, 저녁까지 먹고 가면 좋겠다며 서운해하시는 시부모님 눈치를, 길이 멀어 자주 못 오는 딸네를 몇 주 전부터 기다리시는 친정 부모님 눈치도 봐야했다.

운 좋게 명절 연휴와 주말이 이어져 있으면 연휴가 길어 도로 사정도 좋고 시간도 여유로워 양가를 오고 가는 길이 덜 피곤한데, 올해처럼 주말을 낀 연휴에는 연초 달력을 확인하고는 한숨이 나왔다. 어떤 주부들은 연차를 써서 연휴를 늘리지 말고 정해진 그만큼만 쓰고 빨리 명절을 끝내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도 하지만, 우리처럼 가야 할 길이 먼 경우에는 시간적 여유가 더 중요하다.

주말과 월요일 하루뿐인 유난히 짧은 올 추석 연휴에는 궁리 끝에 추석 다음 주말에 친정에 가기로 했다. 상황에 맞게 내려오라 하시면서도 7월에 외손주들 보시고 못 본 친정 부모님의 아쉬워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여보, 설은 시댁에서 추석은 친정에서... 어때?

▲ 즐거운 명절

다시 아이처럼 명절을 기다려본다

ⓒ 정가람

당연히 가야하는 명절 인사길인데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 툴툴거렸더니 남편도 한마디했다.

"나는 마냥 편하기만 한 줄 알아? 본가에서 음식하는 당신 옆에서 엄마 눈치 보느라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방에 들어가 낮잠도 못 자."

민족의 명절이라는 즐거운 설, 추석에 우린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할까? 마음만 조금 고쳐먹으면 몸이 조금 고되더라도, 길이 조금 멀어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기쁜 명절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자주 못 보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향을 찾아 친구들과 옛 추억을 나누는 명절이다. 며느리로서, 먼 곳에 사는 딸자식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뿌듯할 수 있도록 올 명절도 애써봐야지.

그리고 딴에는 여러 명절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남편에게 제안했다가 한심하다고 이야기 들었던 소원을 덧붙인다.

"얘 며늘아가, 설은 우리 집에서 함께 보내고, 추석은 친정에서 보내거라. 나도 내 친정 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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