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쓴 혁신 아이콘, 애플 실체는] <상> 협력업체 무덤 된 공급체인

김흥록기자 2012. 10. 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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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사 경영 샅샅이 파악해 단가 인하 요구하고 손실은 전가경쟁 구도·비밀주의 활용해 가격 못맞추면 철저히 외면모방제품 판매 방지 빌미로 발주 취소 물량도 못팔게 해

8월 일본의 전자부품업체 시코는 85억엔(약 1,197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파산했다. 시코는 스마트폰 소형카메라용 자동초점모터를 개발한 기업으로 애플이 직접 지명해 구매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업체였다. 파산의 계기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애플의 구매 유도에서 시작됐다. 시코에는 애플이 사신(死神ㆍ죽음의 신)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글로벌 협력사를 보유한 애플은 ▦협력사에 일방적 손실 전가 ▦무차별적인 단가 인하 ▦특허권 착취까지 하며 협력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참다 못한 글로벌 협력업체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코 파산 스토리로 본 애플 횡포=

시코의 파산 스토리에서 드러난 애플의 횡포는 믿기 힘들 정도다. 시코는 생산량을 늘리라는 애플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쏟아부었다. 5억엔 규모의 외부공모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애플은 비용절감을 못하는 거래처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단순 납품단가 인하가 아니라 비용절감에 필요한 신규 설비 비용을 견딜 수 있는지 재무 상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애플은 결국 시코가 2007년께 환율금융상품 거래로 월 5,000만엔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시코가 받기로 했던 애플의 대량 주문은 경쟁사로 넘어갔다. 납기 지연 한 번 없던 시코는 그렇게 도산했다. 이는 일본의 경제전문주간지 다이아몬드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소위 '애플발 도산'의 사례다. 협력업체의 경영 전반을 손바닥 위에 놓고 관리하는 애플식 공급체인 관리 방식의 부작용인 셈이다.

30%를 웃도는 애플의 놀라운 실적 이면에는 이 같은 애플의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전자 및 정보기술(IT) 부품업계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한때 부품업체의 자부심이었던 애플과의 거래관계가 이제는 부품업체의 무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애플은 해외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무차별한 단가인하를 실시하고 있다"며 "통신 사업자에 마케팅 비용을 분담하지 않으면서 스마트폰 부품 업체에는 강도 높은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만 잘살겠다는 '애플'의 사업구조=

협력업체를 위기로 몰아가는 이면에는 애플의 ▦협력사 복수 운영과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애플의 공급망 관리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애플은 사소한 부품에서 핵심 부품에 이르기까지 어느 업체 한 곳이 특정 제품을 독점 생산하지 않도록 분산 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공식적으로 애플과 거래한다는 사실을 발설할 수 없으며 시코의 경우처럼 어느 경쟁사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플이 경쟁구도와 비밀주의를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도 다양하다. 애플은 우선 공급선이 늘어날 때마다 업체에서 공급 받는 가격을 깎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품업체의 관계자는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는 엄격한 신뢰도 검증을 통과하기 힘들어 공급선이 1~2개에 불과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면 후발업체도 테스트를 통과하게 돼 공급을 시작한다"며 "이럴 때마다 애플은 기존 업체에 가격인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애플이 가격을 인하하는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공개된 애플과 샤프의 가격협상 사례에 따르면 애플은 가격협상 전 50명 규모의 감사인단을 샤프 카메야마 공장에 파견해 원가파악을 실시했다. 이들은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불과 몇 %의 오차 수준으로 원가를 파악해내 샤프의 숨쉴 틈을 없앴다. 중국에서도 애플은 이미 수익률 1%에 불과한 폭스콘에도 수시로 가격인하 압박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단 일본과 중국의 사례 뿐만이 아니다. 국내의 한 전자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이와 관련해 "0.004달러를 인하해달라고 하기도 했다"며 고충을 토로했으며 또 다른 전자기업 대표 역시 "애플과의 가격협상은 일종의 전쟁"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익은 애플, 손실은 전부 협력업체=

이 같은 애플의 철두철미한 관리는 납품거래계약서에 잘 나타나 있다. 애플은 협력업체와 작성한 계약서에 비밀보호 유지 조항을 넣어 이를 어길 경우 거액의 위약금을 내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경우 위약금 규모가 약 300억원에 이르렀던 경우도 있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자사 제품의 모방품이 판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업체에 발주했다 취소한 물량도 따로 팔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자업체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0만개를 주문했다 70만개만 가져가고 30만개가 남을 경우 어디에도 팔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내 전자 부품업체가 애플의 관리 시스템 밑에 놓이면서 점점 한국의 전자산업이 애플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애플과의 거래가 시작되는 순간 매출의 상당 비중이 애플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니조차 이미지센서 생산량의 60%를 애플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김흥록기자 ro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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