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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미터 철탑 위 농성.. 생리현상이 가장 어렵습니다"

입력 2012. 10. 28. 11:19 수정 2012. 10. 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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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석철 기자]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자 굵어졌다. 27일 오전 10시,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차 명촌중문 앞 인도에는 울긋불긋 나뭇잎이 비를 맞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럴 때면 우수에 젖은 시 한자락 나올 법도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10일 밤을 꼬박 20m 높이 송전탑에서 날밤을 세우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두 명이 있기 때문이다.

빗줄기를 맞으며 15만4000볼트 고압이 흐르는 송전탑을 멀리서 보니 금방이라도 전기가 몸을 휘감을 것 같다. 비도 오는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밥은 먹고 잠은 자며 생리현상은 해결할까? 온갖 생각이 든다. 드디어 송전탑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비 내리는 날, 송전탑 농성장엔 합판 대신 철판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중문앞 송전탑 고공농성장의 나무판자 위에 26일 비계가 마련됐다

ⓒ 박석철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는 적막이 감도는 법, 어젯밤 이곳에서는 영남권 노동자 대회를 포함한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행사가 있었다. 전국에서 노동자, 시민사회가 모여 치러진 1박 2일 행사는 이날 오전 9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고공 농성 중인 두 비정규직노동자를 응원하러 각지에서 모인 동지들이 떠난 자리는 쓸쓸함마저 감돌았다.

송전탑이 가까워지면서 색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와서 봤던 그곳과는 다른 장면이었다. 송전탑 17m 높이에 있던 최병승(36) 조합원, 그보다 3m 더 높은 곳에 있던 천의봉(31)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차장의 나무합판 농성장 위에는 새로 널직한 비계가 마련됐다.

처음 송전탑에 올라갈 당시, 이 둘은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의 나무합판에 밧줄로 몸을 감아 농성을 시작했다. 이어 농성장은 2cm 두께의 2㎡가 채 안 되는 나무합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동안 비가 오면 나무합판이 젖어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넓어 보이는 비계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21일, 비가 올 것을 우려해 비닐 커버를 철탑 위로 올리는 것조차 막았던 회사 측이 철판이 올라가도 막지 못한 것은 왜일까? 지난밤 1000명이 넘는 연대 동지들이 두 조합원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문화제 행사를 송전탑 위에서 함께 했는 듯, 철탑 위 두 조합원은 아침 단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외롭지 않았다. 새로 마련된 비계에서, 침낭을 뒤집어 쓴 두 조합원이 나란히 옆에 붙어 있었다. 위에는 조합원들이 쳐 준 간이비닐도 있어 굵은 빗줄기는 피할 수 있었다.

철탑 아래에는 두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노조 해고자 15명이 매일 보초를 선다. 그들도 밤새 연대 행사에 동참하느라 아직 침낭 속에 있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 30대 초반의 그는 철탑 위 두 조합원에게 밥과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올려주는 주요한 보직을 맡았다.

밥은 낮 12시, 오후 6시 하루 두 번 올려주는 데, 음식은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부인들이 번갈아 가면서 마련한다.

우상수 사무차장은 "병승이 형과 의봉이가 어젯밤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26일 저녁, 비정규직노조에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24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안에서 경찰에 체포됐던 박현제 지회장의 구속영장이 26일 저녁 기각됐기 때문이다. 철탑 위에 있는 천의봉 사무장의 체포영장도 기각됐다.

어느 조직이든 수장이 잘못되면 조직 전체가 힘을 잃듯, 박 지회장이 체포되고 난 후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의 걱정이 컸다고 한다. 특히 마음이 여린 철탑 위 천의봉 사무장은 이틀을 불안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철탑 농성에서 제일 힘든 것은... 생리현상

10월 17일 밤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노조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이 건재하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우상수 사무차장이 분주히 움직였다. 두 조합원에게 밥을 올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 사무차장이 식사 준비를 하러 간 사이 철탑 위 천의봉 사무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박현제 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너무 기뻐다"며 "새롭게 용기가 솟는다"고 말했다.

철탑 위 두 조합원은 10일간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했다. 바닷가 쌀쌀한 바람, 철탑 밑을 수시로 지나는 기차 소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처한 상태가 잠을 잘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면할 수 있는 시간은 그나마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낮이다.

천의봉 사무장은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 밤에는 선 잠을 잔다. 그럴때면 아예 눈을 뜨고 조합원들과 어머니께 편지를 쓴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밥은 꼭 먹고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신다"며 말끝을 흐렸다.

철탑 위에서 10일 밤을 지새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추위, 배고픔, 쓸쓸함은 참을 수 있는데… 생리현상 해결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20m 지점의 고공 농성장은 멀리서도 보인다. 심리적으로 배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불규칙한 생활, 다른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압박감은 시나브로 배변의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천의봉 사무장은 "배변을 처리하는 동지들에게도 미안하고…"라며 쑥스러워했다.

천의봉 사무장은 어린시절 냇가에서 15볼트 전기로 물고기를 잡다 감전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에게 감전 트라우마는 아직도 무시못할 두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그가 비오는 날 15만4000볼트 고압이 흐르는 송전탑 바로 아래서 밤낮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는 "법에 따라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만이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라고 했다. 그 신념이 감전 트라우마를 지켜주는 강력한 힘인 것이다.

철탑 위 고공농성 중에는 씻지 못하는 괴로움도 있다. 머리를 하루만 감지 않아도 가려워서 견디기 힘들었던 천의봉씨가 10일을 씻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도 그런 일념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이 철탑 위 두 조합원에게 밥과 배터리를 올리고 있다

ⓒ 박석철

오후 1시가 되자 식사준비를 하러 갔던 우상수 사무차장이 왔다. 오늘 점심 메뉴는 동태찌개다. 비가 온다고, 평소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주 가는 식당 아주머니가 특별히 마련해 준 것이다.

우 사무차장은 밥과 충전한 휴대전화 배터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철탑 위로 올리면서 철탑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병승이형, 미안해요 깜빡잊고 수건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밥이 묶인 밧줄을 당기던 최병승씨가 소리쳤다.

"괜찮아. 내일 수건 준비하려거든 아주 싼 것으로 해라."

밑에 있는 조합원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소리로 들렸다.

"대선후보들 찾아오지만... 솔직히 믿기 어렵다"

철탑 밑에는 여러 개의 천막이 쳐졌다, 철탑 바로 밑에는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농성사수장 천막이 있다. 이곳에서 그들도 밤을 새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더 조금 밑에는 현대차 정규직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연대 농성을 시작하며 친 천막이 있다. 발전기도 보인다. 주로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가동한다.

이곳 철탑 농성장은 최근 대선 후보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농성장을 사수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정치권이 비정규직에게 보여준 학습효과 탓이다.

우상수 사무차장은 "대선 주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는 대선주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이라며 "혹시 표를 의식해서 오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해결 의지를 보여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젯밤 전국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진보정당, 시민단체들이 한걸음에 오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자기일 같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빗줄기는 어느새 더 굵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어젯밤 수천 명이 북적거렸던 행사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적막감만 감돌았다.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2012 < 오마이뉴스 >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이 기사는 < 시사울산 > 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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