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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서 마음을 적시다

입력 2012. 11. 15. 14:44 수정 2012. 11. 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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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 심리테라피를 받다

태조로 초입에서 본 한옥마을

바짝 마른 펌프에 물 한 바가지를 퍼 넣으면 마법처럼 콸콸콸 솟아나던 땅 속 깊은 곳의 물. 전주 한옥마을은 그런 마중물 같은 공간이다. 역사는 깊되 근엄하지 않고, 담을 쌓았어도 도도하지 않은 한옥마을에서 여유로움에 대한 갈증을 풀어 본다. 타박타박 걸음걸음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버석했던 마음에 마중물 한 바가지를 축인다.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한국방문의해위원회 www.visitkoreayear.com

도시인, 심리테라피를 받다전주 한옥마을 여행은 불만을 쌓아 온 한 도시인의 심리치료였다. 내 땅에도 내가 이어 갈 옛것이 존재한다는 '발견'이 움츠린 어깨를 쭉 펴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한옥마을이 군락을 형성했던 계기는 '자존심'과 연관돼 있다. 20세기 초 조선에서 점점 영역을 확장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 상권을 형성했고, 위기감을 느낀 조선인들은 지금의 전주 교동·풍남동 일대에 모여들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경기전 주변에 그들이 과거부터 살아왔던 모습 그대로의 집을 지었던 것이다. 일본식 목조건물이 늘어나면서 거리의 풍광이 서서히 바뀌던 그때, 사람들은 그래 왔던 것처럼 흙담을 쌓고 나무기둥을 세워 기와를 얹었다. 그것이 전주 한옥마을을 일군 1세대의 민족의식이었다.

한옥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목대에 오르면 주변과 대비되는 이곳만의 풍광이 더욱 뚜렷해진다. 오목대는 경기전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한양으로 귀경하던 도중 들러서 연회를 벌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본격적으로 마을을 돌아다니기 전에 들러 가면 좋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빙긋이 웃고 있는 한옥지붕의 유려한 선들을 만날 수 있다. 오목대에서 감상하는 한옥마을은 작은 섬을 굽어보는 느낌이다. 한옥마을을 빙 두르고 있는 현대식 빌딩 때문에 저 세계와는 대조된 공간감이 느껴진다. 산책로 반대 방향은 한옥마을 외곽으로 이어지니 걸어 올라왔던 길 그대로 내려가는 게 낫다. 오목대 입구의 관광안내소에 들러 본격적인 한옥마을 탐방을 시작하자.

한옥마을을 걸을 때는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기와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질 거다

누군가가 벗어놓은 고무신. 사랑채에 누군가 들어갔나 보다

한옥마을 길에는 최명희길, 술도가길 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산책하듯 종횡무진 걷다오목대에서 내려오면 한옥마을을 관통하는 태조로로 들어선다. 경기전까지 쭉 이어진 길이다. 어느 골목에서 구경하든지 태조로 방향만 놓치지 않으면 한옥마을을 헤매지 않고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 한옥마을은 1977년 보존지구로 지정되고 난 후, 지금까지도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꾸준히 정비해 왔다. 태조로가 한옥마을의 종적인 축이라면 횡적인 축은 은행로다.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두 축을 기준으로 내 좌표를 좇으면 지도를 보기 수월하다. 또 두 거리는 한옥마을에 첫발 딛고 정취를 맛보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주말마다 전통차와 공예품을 파는 노점이 들어서 흥을 돋운다.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면 마을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눈에 담고 싶은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면 그만이다. 개방된 전시관과 갤러리들이 많고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방도 있다. 태조로 어귀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 들러서 정보를 얻고 출발하면 좋다.

역사적 공간은 으레 '박제화'된 경우가 많다. 박물관 안에 갇혀 인공조명을 쐬는 유물들이나 철창 속에 있는 동물원의 동물과 같은 처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남산 한옥마을이나 삼청동 일대는 커피숍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서면서 밤에는 낮시간의 생기가 사라지는 상업지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반면 전주한옥마을은 특유의 삶의 온기가 남아있다. 현재 마을의 한옥은 700여 채로, 모여 사는 세대수만 1,000여 가구에 이른다.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외부인에 점령된 관광지가 아니기에 마을 골목골목을 거닐다 보면 사람냄새가 느껴진다. 거주하는 주민들이 일군 텃밭, 손맛어린 장이 그득한 장독대,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어르신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반면 살곰이 끼어든 카페, 편의점은 함부로 나서지 않고 한옥마을을 존중하며 들어섰다. 덕분에 여행자들은 한옥마을 한쪽 골목에선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더라도 다른 쪽 골목에선 저녁녘에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그네들 삶이 어린 공간에 머문다.

세련미를 가장한 새것이 그 자리에 뿌리박혔던 옛것을 대체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이 사라지는 걸 관망해 왔을까? 현재 천편일률적인 대도시의 모습은 우리가 추구해 온 가치의 표상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과거가 어린 공간에서 색다른 현재를 만날 수 있는 매력. 지켜 왔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여유. 그것들을 두 손에 담아와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 살포시 퍼트려 본다.

Travel to Jeonju

1세기가 다 돼가는 전주의 명물 전동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옥마을에선 슈퍼도 미용실도 편의점도 한옥마을스럽다. 새것도 한옥마을의 정취를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동락원 내부

+볼거리

한 세기, 믿음처럼 오롯이 전동성당

한옥마을에서 경기전 쪽으로 가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붉은 성당 건물이 눈에 띈다. 세월이 갈수록 전동성당만의 고풍스러움은 더해 가고 있다. 2014년에 준공 100주년을 맞는 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 사적지다. 전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정책의 최대 피해지이기도 했다. 수많은 순교자가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구원을 바랐다. 천주교와 대척점에 서 있을 법한 조선의 초대 군주인 이성계의 영전이 봉안된 경기전과 마주보고 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 100만원 안팎에 혼례를 치를 수 있다고.주소 전주시 완산구 전동1가 +먹거리와 맛집한국집미슐랭가이드 한국편에 소개된 집. 1952년부터 비빔밥을 판매하며 3대째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놋쇠비빔밥, 돌솥비빔밥, 육회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주소전주시 완산구 전동 2가 2-1 문의063-284-2224 베테랑한옥마을 안에 있는 베테랑은 들깨 칼국수와 만두가 유명한 집이다. 1977년부터 성심여고 맞은 편에 둥지를 틀었다. 전주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든 한번쯤 들른다는 식당. 주소 전주시 완산구 교동 84-10 문의 063-285-9898 마패호두과자뽀얀 앙금이 인상적인 호두과자. 붉은 팥 껍질을 벗겨서 만들었단다. 전국에서 택배 서비스를 할 만큼 마니아층이 두텁다. 큼지막한 호두 알도 인상적. 주소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66-2 문의070-8830-2257

+거리축제

미각 충전! 맛 축제 한국음식관광축제

매년 10월에 열리는 전주 일대의 대표 맛 축제로 한식뿐만이 아니라 각 나라의 전통음식 향연이 펼쳐지는 장이다. 축제마당을 방문하면 전세계 맛기행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 전주까지 왔으니 한식의 고장, 전주에서 우리 전통음식의 깊은 맛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듯. 음식관광축제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발효음식축제, 막걸리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 프로그램을 준비해 놨다. 더불어 전통염색체험, 한식쿠킹클래스 등도 겸할 수 있으니 내년에는 꼭 방문해 볼 것!

+한옥체험동락원한옥마을을 잠깐 산책하는 것만으로 아쉬운 이들은 전통가옥 숙박을 선택한다. 개중 인기가 높은 곳이 '함께 즐거이 노니는 공간'이란 뜻의 동락원同樂園. 전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전통가옥이다. 동락원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단아한 안채가 맞아준다. 양지바른 마당을 낀 사랑채는 조용히 외지인을 반긴다. 뜨끈한 구들장에서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 개운한 아침을 맞으면 '유익한 불편함'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리라 짐작이 간다. 이에 공감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동락원 주말 숙박은 최소한 두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주소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44번지 문의 063-287-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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