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100명 중 66명이 가정환경 탓.. "탈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이진희기자 입력 2012. 11. 19. 02:41 수정 2012. 11. 1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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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청소년 20만명, 우리 아이들 어디에 있나]<1>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

●생활환경이 큰 원인가정폭력·학대·빈곤 등 벼랑끝 아이들에겐 달리 돌파구가 없어●3명중 2명은 범죄 경험알바 구하기 어려워 인터넷 사기·성매매 등 집단적 범죄에 빠져들어

생존을 위한 출구로 가출을 택한 수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 이제 그들을 단순히 '탈선한 아이들'로 치부할 때는 지났다.

경기 안산시의 한 청소년쉼터에서 만난 강민서(20ㆍ가명)양은 4개월 전 이곳에 와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의 학대, 자신에게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 가정이 그를 중3 때부터 거리로 내몰았다.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살았던 강양은 아버지로부터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사소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일어서지 못할 만큼 맞기 일쑤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중3때 처음 집을 나갔고, 그렇게 청소년 시기에 수도 없이 가출했던 강양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역시 가출한 친구 영선(18ㆍ가명)양과 고깃집에서 일하며 찜질방 등에서 생활했고 돈이 떨이지면 지하주차장, 놀이터에서 잤다.

이렇게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은 생활의 수단으로서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불법적인 범죄정보가 공유되고 집단적 범죄에 빠져드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지난달 초 가출한 지훈(17ㆍ가명) 군이 인터넷 중고장터 사기라는 범죄에 빠져든 것은 합법적으로는 돈을 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당 서빙이나 주방 아르바이트로 식사라도 해결하고 싶었지만 금방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들통나 쫓겨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원룸 거주비 등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라는 스스로의 핑계로 사기를 쳤다. 인터넷 포털에서 구한 옷, 가방, 휴대폰 사진을 올려놓고는 돈만 받고 물건을 주지 않았다. "계좌에 입금하면 더 깎아준다"고 해놓고, 돈을 받으면 계좌를 폐쇄하는 식이었다.

이제 지훈군에게는 "휴대폰 유심칩을 제거하고, 와이파이 잡히는 곳에서 카카오톡만 해야 경찰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정보'가 거리에서의 생활에 더 유용하다. 모두 가출한 또래들이 알려준 것들이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기본적인 숙식을 지원하는 청소년쉼터에는 왜 가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지훈군은 "청소년쉼터에서 왔다고 해서 따라 가보면 강제노동을 시키고 성매매도 시키는 사기꾼들이 있어 위험하다고 가출한 친구들이 그랬다"며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했다. 그는 "(쉼터에 갈 바에야)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낫다"고도 말했다.

지난달 30일 경기 의정부경찰서에 조건사기 혐의로 붙들려온 B(17)양. 두 달 전 가출한 B양은 5명의 '가출팸'(가출 패밀리ㆍ가출청소년끼리 구성한 가족 형태) 구성원 중 유일한 여자였다. 조건사기는 인터넷 등으로 성매매 제의를 한 뒤 성매수 남성과 만나 성관계를 하기 직전, 가출팸 멤버들이 나타나 "청소년과 성관계하려 하냐"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 여학생을 앞세워 이런 범행을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장 송정근(51) 목사 등이 지난 5~6월 가출 청소년 423명을 인터뷰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가출 원인으로 꼽은 것은 부모와의 갈등, 가정폭력, 빈곤, 가정불화 등 가정적 요인이 65.7%였다. 학교폭력, 따돌림, 성적부담 등 학교요인에 따른 가출은 7.3%였다. 이들 중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는 답변을 한 비율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3명 중 2명 꼴로 가출 후에 절도ㆍ폭행ㆍ성매매 등의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고 답했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출 청소년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경제위기에 따른 절대적ㆍ상대적 빈곤의 증가가 그 큰 원인이다.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인구 중 시장소득(근로소득+비근로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 비율이 2006년 10.7%에서 2010년 12.1%로 늘어났다. 송 목사는 "쉼터에 입소한 아이들 중 부모가 모두 있는 아이들의 비율은 5% 미만이고, 이혼 가정이 95% 정도"라며 "또 5% 정도만 경제적으로 괜찮고 나머지는 거의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이라고 말했다.

송 목사는 "전국 쉼터를 100개(정부지원 92개)로 잡아서 정원 15명씩 꽉 채운다고 해도 1,500명밖에 보호를 못한다"며 "가출 청소년 규모가 10만~20만명이라는 추정이 있는데, 10만명이라고 하더라도 그럼 나머지 9만8,500명은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청소년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유낙준(53) 신부는 "10여년 전 IMF사태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위기를 겪은 가장들, 지금 또다시 경제위기로 몰락하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하는 등 가정의 위기가 더해지면서 청소년 가출이 30%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가출 청소년들은 이 같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겪은 위기의 탈출구로 가출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범죄에 빠져들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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