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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신작 장편소설 "여성 눈으로 남성이 만든 '근대의 약점' 돌아봤다"

한윤정 기자 입력 2012. 11. 25. 21:38 수정 2012. 11. 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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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작가 황석영 신작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소설가 황석영씨(69)는 야권 대선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의 단일화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정치개혁과 단일화 실현을 위한 문화예술인·종교인 모임'을 결성해 처음부터 끝까지 두 후보를 압박했다. 여론조사도 담판도 아닌, 안철수의 후보 사퇴 선언으로 결론이 나는 바람에 실망스러웠지만 기존 모임의 성격을 바꿔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연대 발대 겸 단일화 축하 시민문화제'(26일 서울광장)를 열고 지금부터는 투표시간 연장운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올해 칠순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은 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발언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개헌을 통한 권력 분산, 경제민주화, 북방정책 등 세 가지 목표를 다음 정권에서 꼭 이뤄야지요."

그는 특히 이명박 정권에 기대했던 북방정책을 숙원사업으로 꼽았다. 몽골부터 카자흐스탄까지 북방 국가들과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이룸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닦는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북방정책의 골자다. 이를 위해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순방에 동행했다가 많은 비판에 시달렸던 그는 < 강남몽 > < 낯익은 세상 > 등 장편을 발표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둔 원로작가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계기로 다시 전면에 나선 건 정권교체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칠순과 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황석영씨는 앞으로 제3기의 만년문학을 하겠다고 밝혔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그에게 올해는 등단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경복고 재학 중이던 1962년 월간 사상계에 단편 '입석 부근'이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최근 펴낸 장편소설 < 여울물 소리 > (자음과모음)는 반세기의 글쓰기를 결산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신통은 중인 계급 출신의 이야기꾼이자 동학 혁명가인데 평생 소설과 사회운동을 병행해온 황석영 자신과 닮았다.

"이야기꾼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동학이라는 근대의 맹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지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사상을 바탕으로, 중인 독서계층과 예술가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끌어낸 게 동학이었으니까요."

이 소설의 배경인 19세기는 이야기가 넘쳐나던 시대였다. 지금 전해지는 언문패관소설만 150여종에 이르는 데다 가정부인들이 쓴 규방소설도 정리가 안된 채 엄청난 양이 남아 있다. 전기수, 강담사, 이야기꾼, 소리꾼들이 전국 팔도를 떠돌면서 각종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혁명의 기운을 전파했다. 이야기는 곧 변화에 대한 열망이 담긴 사회적 에너지였다.

< 여울물 소리 > 는 이신통의 아내인 박연옥의 눈으로 그의 생애를 좇아간다. 시골 양반과 기생첩 사이의 서녀인 연옥은 열여섯 살에 시골 부자의 후처로 들어간다. 그러나 연옥의 마음에는 어머니의 주점에 머물렀던 이야기꾼 신통이 정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집간 뒤 남편이 투전판을 드나들면서 집안을 돌보지 않자 연옥은 삼년 만에 파경을 선언하고 충청도 강경의 친정으로 돌아온다. 연옥은 민란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신통과 재회해 짧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나라에서 금지한 천지교의 신자인 신통은 탄압받는 동료들을 모른 척할 수 없다며 연옥의 곁을 떠난다.

그때부터 신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내는 건 연옥의 몫이다. 신통의 아이를 사산한 연옥은 강경에서 무주, 금산, 옥천 그리고 신통의 집이 있는 보은까지 열흘의 여행에서 신통이 양반집 서얼로 태어나 고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한양으로 떠났다가 담배 장수 서일수를 만나 친해져 이야기꾼의 길을 걸었으며 가출 이전에 결혼한 아내와 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신통은 서일수를 통해 천지교에 입교한다. 그 후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천지교의 경전을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신통의 삶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 즉 이야기(소설) 속의 이야기(신통의 삶)라는 이중구조를 갖는다. 작가는 "여성화자의 눈을 통해 남성이 만들어놓은 근대 세계의 약점을 보고자 했다"며 "탈근대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천황제가 남아 있는 일본,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인 중국, 분단상태인 한국 등 동아시아 3국에서 근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 오래된 정원 > < 심청 > < 바리데기 > 등 2000년대 이후 작품에서 여성화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는 근대를 뒤집어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50년간 소설을 써온 게 고맙고 행복합니다. 방북(1998년) 이전이 1기, 망명과 투옥 이후가 2기였다면,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3기의 만년문학을 시작하겠습니다."

만년문학은 날선 감각으로 현실의 단면을 잡아채는 중단편 집필로 시작한다. 노년의 여유 있는 형식실험과 장편 집필 대신 현실의 모순에 더욱 바짝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이어 3~4년 뒤에는 한국 근대를 노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철도원 3대 이야기'를 원고지 5000장 분량으로 쓴다는 계획이다. 그런 그를 위해 후배 문인들(초청인 최원식 이시영 김정환 김사인 신경숙 이승우)은 다음달 6일 등단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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