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하늘의 평화

문창극 2012. 12. 2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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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대기자대통령 선거 결과를 다룬 외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박근혜 당선자를 지칭하면서 전 군사 지배자(former military ruler), 또는 전 독재자(former strongman)의 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한국민의 선택을 은연중 비아냥거리거나 경멸하는 투가 배어 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뭐 대단한 건가라는 말없는 무시가 깔려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이 그들의 시각처럼 그 정도 나라에 불과한 건가? 선거 후에 낙선자가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 그리고 승자가 패자를 감싸려는 모습… 설령 겉모양일지라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높은 투표율과 팽팽한 득표율… 어느 민주 선진국 못지않은 결과였다. 세대별 득표율이 확연히 갈라진 게 흠이지만 미국도 레드 스테이트니, 블루 스테이트니 해서 한 정당이 싹쓸이하지 않는가? 선거 당일까지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지만 우리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나라를 두고 마치 미숙해서 그런 사람을 뽑았다는 투의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숙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보다도 더 성숙되어 있음을 이번에 보여 주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포퓰리즘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고통을 겪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도 양쪽 모두 포퓰리즘을 띤 공약을 했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우리는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포퓰리즘 쪽을 택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약점은 개인의 이기주의에 있다. 나라나 공동체를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이해에 따라 판단한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안보를 걱정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공동체의 안전에 대해 그만큼 책임감을 느꼈다는 증거다. 이렇듯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았고, 공동체의 안전을 걱정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에 들어갔다는 말이 아닌가?

 이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대가 50대였다는 분석이 많다. 50대는 누구인가? 60대 이상이 가난의 압박에 너무 시달렸다고 한다면, 40대 이하는 그런 고통은 이미 벗어났던 세대다. 50대는 이 나라가 독재로 억압받고 있을 때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고 나라의 가난을 경험한 거의 끝 세대로서 경제발전에 직접 참여한 세대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억압받을 때 고통을 느꼈고, 가난이 무엇이라는 것도 아는 세대다. 그들이 이번에 왜 90%에 가까운 놀라운 투표 참여율을 보였는가? 그들의 선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은 민주와 경제를 모두 아는 세대였다. 그들이 선거 과정에서 느낀 것은 불안이었다고 한다. 나라가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현대사를 모두 체험한 그들로서 무엇이 나라를 위해 올바른 길인지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념이나 개인의 이익을 넘어 나라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 세대였다.

 민주주의에서 한 표는 똑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한 표라도 이긴 쪽이 승리자다. 그러나 표의 값이 같다고 표의 무게도 같을까? 이 나라 현대사를 몸으로 체험하고, 인생 50년 역정을 견뎌온 사람의 한 표와 지금 겨우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의 한 표 무게가 같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들은 무게를 따로 계산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자식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홀로 묵묵히 투표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모인 표가 이번 선거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비록 표의 값으로는 아슬아슬한 과반을 넘겼지만 그 표의 무게로 본다면 우리 현대사의 좌우 시소게임을 완전히 끝장내게 한 그런 선거였다. 50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젊은 세대는 겸허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반대의 결과가 되었을 때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역사의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신은 늘 우리 일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베일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만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는 베일을 뚫고 나타나는 것 같다. 마치 동화에서 수호천사가 갑자기 나타나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 주듯이 말이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던 그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혹자는 그것을 집단지혜라고도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가 50대의 마음을 움직여 이 나라를 붙잡은 것 같다.

 역사는 순환이 아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예수가 왜 이 땅에 아기로 와야 했는가? 우주의 주관자가 그 권리를 포기하고 가장 낮은 자로 내려온 것이다. 우리에게 평화와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제 승자는 그 권리를 포기하고 상처 받은 쪽을 감싸고 안아 주어야 한다. 이긴 자와 진 자가 거의 반반이다. 일대일로 안아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면, 하늘의 평화가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문창극 기자 moochain@joongang.co.kr

▶문창극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mooch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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