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절차 무시하고 무죄 구형 '막무가내 검사'

입력 2012.12.31. 03:08 수정 2012.12.3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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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재심사건 구형 과정에서 부장검사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 평검사가 부서 내 결정을 무시하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무죄를 구형한 뒤 징계를 자처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다른 형식의 항명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부장 김국일) 임은정 검사(38·사법연수원 30기·사진)는 1961년 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제정 반대 운동 등을 주도한 혐의(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징역 15년이 확정됐던 고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장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28일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바로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는 구형 과정에 있었다. 이 사건의 담당 검사 자격을 다른 검사에게 넘기기로 결정한 뒤 임 검사가 이를 따르지 않고 선고 당일 법정에 들어가 검사 출입문을 잠근 채 일방적으로 구형을 해 버린 것. 출입문 손잡이에는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적은 쪽지를 붙여놓았다고 한다.

검찰은 이 사건처럼 무죄가 예상되는 재심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를 해 달라"는 통상 의견으로 구형을 대신한다. 물론 위헌 결정이 내려진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사건 등에서는 드물게 무죄 구형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올 9월 무죄가 선고된 박형규 목사 재심사건 때도 임 검사는 무죄 구형 의견을 냈고 당시 검찰 수뇌부는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임 검사는 구형 당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렸다"고 밝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이미 숨졌고 △생존 당시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한 점 △현재로선 사실관계를 뒤집는 내용을 재확인하기 어려운 점 △적용 법률에 대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이 없었던 점 △공범 5명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를 해 달라"는 통상 의견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자"는 입장이었다.

임 검사는 계속 "무죄를 구형하겠다"며 맞섰고, 김국일 공판2부장은 임 검사에게 무죄 구형이 적절한지 심의하는 위원회(공소심의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자고 했다. 임 검사는 "다른 의견은 절대 따르지 않겠다"며 공식 절차를 무시했다고 한다.

갈등 끝에 김 부장과 임 검사, 그리고 다른 검사 2명이 참석한 내부 회의에서 이 사건을 다른 검사에게 맡기기로(재배당) 결정을 내렸는데 구형 당일 임 검사가 돌발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이날 임 검사는 법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검찰 내부 게시판에 "제 능력 부족으로 상급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지만 해당 재심 사건의 무죄 구형은 의무라고 확신하기에 저는 지금 법정으로 갑니다"라며 "어떠한 징계도 감수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임 검사 측은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건 재배당을 통보받았을 뿐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임 검사의 행동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의견이) 충돌할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법령에 마련된 장치마저 모두 무시할 정도로 자신의 양심과 그 양심을 표현하는 방식에 자신이 있다면 일단 그것을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목적을 위해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무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등의 글이 올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임 검사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에 대한 징계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지성·장관석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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