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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문화계 인물](3) 철학자 김영민

밀양 | 글 백승찬·사진 홍도은 기자 입력 2013.01.08. 21:59 수정 2013.01.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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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독립하되 고립은 안돼.. 사회적 약자와 어울려 깨쳐야"

한겨울에도 밀양의 햇빛은 그 이름처럼 빽빽했다. 철학자가 살 만한 터전이 따로 있겠냐마는, 별달리 기억할 만한 것도 없는 이 산자락의 농촌은 아무래도 철학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잔설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보니 철학자 김영민(54·사진)의 거처가 나왔다.

서재, 작업실과 분리돼 지어진 침실은 장작으로 방을 덥힌다. 김영민은 매일 산책 삼아 인근 야산으로 가 땔감으로 쓸 소나무를 가져온다. 그것이 이 철학자의 하루 중 유일한 외출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밀양에 자리를 잡은 지도 5년쯤 됐다. 부산에 계시는 노모를 뵈러 갈 수 있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없어 숨어들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밀양이었다. 물론 그도 여느 학자들처럼 도심의 대학에 자리를 잡은 적이 있다. 그러나 네 번 교수가 됐다가 네 번 다 스스로 그만뒀다.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학 바깥에서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 스스로 재야가 된 철학자의 변이었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인문학 공동체 운동에 공을 들였다. '장미와 주판'이라는 모임이었다. 함께 읽고 강의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기존 대학과는 전혀 다른 대안대학의 설립을 10년간 준비했다. 계획은 실패였다. 김영민은 모임을 해체하고 혼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죽었던 공동체를 작은 규모의 여러 모임으로 '부활'시켰다. 서울, 부산, 광주에서 '장미와 주판'의 맥을 이은 인문학 모임들이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김영민은 이러한 인문학 공동체의 전망에 대해 낙관하고 있지만은 않다.

▲ 네 번의 교수직 다 박차고 나와20여년간 인문학 공동체 운동자본주의와 '창의적 불화' 선택"지는 싸움이지만 해야 하는 것"

"'혁명의 다음날'에 대한 준비가 없는 것과 유사한 이유입니다. 책 읽고 공부 열심히 하고, 강의는 영원히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 후배와 독자들 중에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공동체가 이어지려면) 소비가 아니라 자기노동이 필요합니다. 다르게 살겠다는 '생활양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대부분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똑똑하고 서로 공명하고 대의도 분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체 바깥과 같은 갈등, 불화, 이기심을 보입니다. 좋은 이념, 전망,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몸'이 없어요."

김영민은 8년째 '1일 1식'을 실천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창의적으로 불화"하기 위해 채택한 생활양식이다. 오후 5시쯤 먹는 한 끼가 유일한 식사다. 나머지 시간엔 차를 마신다. 그는 하루 세 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이라고 말했다. "처음 6개월은 힘든데 이후론 괜찮습니다. 기자님은 하루 네 끼 먹으면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두 끼 먹으면 그렇습니다. 저의 1일 1식은 정치적인 행동입니다." 휴대폰 역시 연애 혹은 사업할 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써본 적이 없다. 오직 쓰고 읽고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김영민의 생활이다.

쓰는 것이 생활이니 당연히 다작이다. 지난해 말 나온 < 당신들의 기독교 > 는 그의 26번째 단행본이었다. 확정해 말하긴 힘들지만 올해도 두어 권의 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화두는 '0도의 인문학'이다. '0도'란 기존의 모든 관계가 재설정되는 지점이다. 김영민은 "예를 들어 예수는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라 불렀다. 그것이 0도 체험이다. 기존 시스템이 요구하는 모든 관계가 0도가 된 뒤에야 새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민의 작업은 급진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이라는 것은 패배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본에 종속된 대학 바깥으로 나오긴 했지만, 대학 바깥에도 자본은 촘촘하게 그물을 쳐두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시장에 포박됐다. 남자들은 더욱 그렇다. 10여년 전부터 김영민의 인문학 공동체에는 여초 현상이 일어났다. 올해까지 23년에 걸쳐 60회 이상 진행한 '독서여행'의 참석자는 이제 80%가 여성이다. 그는 "남자들은 모두 기업체에 가거나 시험 준비를 하거나 술집에 가 있다"고 말했다.

"내우외환이죠. 하지만 이건 윤리적으로 해야 하니까 하는 겁니다. 지는 싸움이지만 해야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낫게 살기 위해 애쓸 뿐이지요."

그것이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싸운 방식이었다. 모두 중과부적의 주류를 상대해 당시로선 터무니없는 이상론을 설파하다가 끝내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는 방식을 통해서 세계를 고발했고, 패배를 계속해서 인문의 급진성을 보였다. 그들은 패배하고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차후를 시사하고 약속을 보냈다.

출판계에서는 쓸 만한 인문 필자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학이 논문으로 교수들의 실적을 계량화하니, 교수들은 논문에 매달려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을 쓰지 않는다. 반면 김영민은 논문을 쓰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논문을 쓰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논문이란 서양이 개발한 학술적 글쓰기의 한 방식일 뿐이기에, 삶의 이치에 맞는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골에 머문다고 은둔은 아니다. 김영민의 지론은 "독립하되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인문학 운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하는 것도 인문학이 종교화되거나 개인수양화되는 현상이다. 그는 "인문학은 도시의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사는 곳이 동굴이어도 시선은 도시를 향해야 합니다. 어울려서 깨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끼리 연대해야 한다. 혼자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자 운동만이 공부의 실천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 밀양 | 글 백승찬·사진 홍도은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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