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폭탄'에 무너지는 '하우스푸어'의 비명

이석 기자 입력 2013. 1. 9. 13:37 수정 2013. 1. 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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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 아무개씨(54)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봉은 8천만원 수준이다. 수도권에 50평 규모의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다. 주변에서 꽤 '비싼 동네'로 소문 나 있는 곳이다. 한국 중산층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김씨는 현재 아파트 대출 이자로 매달 3백만원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이자를 뺀 나머지 돈으로는 아이들 학원비나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했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는 월급 전체를 은행 이자로 쏟아부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근근이 생활비를 충당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점을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삼고 있다. 김씨는 "집 한 번 잘못 장만했다가 5년 가까이 은행의 이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통이 터진다"라고 토로했다.

김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계 바늘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32평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했다.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수천만 원씩 뛰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은행 이자보다 집값 상승률이 높았다. 김씨는 살고 있던 전셋집의 보증금과 은행 대출 1억8천만원을 보태 아파트 구입비 3억원을 마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내 집이 생겼다는 사실을 뿌듯해했다고 한다. 문제는 2006년에 터졌다. 살고 있던 아파트가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노부모를 모실 생각으로 52평짜리 아파트를 신청했다. 추가 분담금이 4억원에 달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면 되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매매 역시 뚝 끊겼다. 부모님 아파트를 처분해 추가 분담금을 지불하려던 계획 역시 무산되었다. 가격을 5천만원이나 내려 매물로 내놓았지만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은행에서 3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김씨는 "매달 받는 급여의 실수령액이 6백만원 정도였다. 이자와 함께 원리금까지 은행에 상환하면서 급여 대부분을 대출 이자로 날린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에 입주했다.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부모님이 살고 있던 아파트가 마침 팔리면서 일부 대출금도 상환했다. 하지만 김씨의 부담은 아직 줄어들지 않았다. 은행 금리가 많이 하락했음에도 여전히 3백만원 안팎의 이자를 물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좀 더 작은 평형대의 아파트로 갈아타는 것도 힘들었다. 평수가 크다 보니 거래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써는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이 언제 풀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저래 은행에 내는 이자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김씨는 "요즘 회사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다. 지금까지는 월급이라도 있어 버텼지만, 이마저도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 이자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고정적인 월급이 나온다. 매달 이자를 납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운 좋게 시장이 살아나면 아파트를 처분해 새 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집값 대출자 중에는 현재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집을 팔 수도 없다. 이미 집값이 은행 대출금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추가로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마음대로 집을 처분할 수조차 없는 처지에 몰렸다. 그렇다고 계속 원금과 이자를 납부할 상황도 못 된다. 가계 재정이 악화되면서 제2 금융권뿐 아니라 사채에도 손을 뻗어보았지만 이자를 대기에도 버거운 형편이다. 결국 이들은 은행의 경매 처분만을 기다리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남 창원에 사는 이 아무개씨(34)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씨 부부는 현재 자녀 한 명을 둔 맞벌이 부부이다.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이씨 역시 조그만 회사에 다니면서 가계를 보탰다. 지난 2006년에는 2억원 상당의 아파트도 구입했다. 전세금 7천만원에 은행 대출 1억3천만원을 받아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다. 이씨는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당시만 해도 경기가 나쁘지 않았다. 처음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남편의 사업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은행에 손을 벌리려고 해도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씨가 은행뿐 아니라 제2 금융권 대출을 통해 남편의 사업비를 대신 조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사이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에 진 빛이 6천만원을 넘어섰다. 1백20만원의 월급으로는 아파트 대출 이자를 대기에도 버거웠다. 결국 이씨는 기존 대출 이자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고금리 사채에까지 손을 뻗기 시작했다.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받은 돈 역시 2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이씨는 "현재는 사채 이자를 막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은행에서도 조만간 집을 경매로 처분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할 수 없이 채무자 지원 단체인 사단법인 희망살림에 손을 벌렸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었다. 허웅 희망살림 사무국장은 "전형적인 다중 채무 상태로, 이자나 원리금 상환이 한계에 달해 있었다. 아파트 매각이 어려운데다, 팔린다 해도 대출 원금을 다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라고 귀띔했다.

경기 용인시 ㄷ아파트는 2007년 분양 당시 경쟁률이 20.5 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하우스푸어가 늘어나는 곳이 되었다. ⓒ 뉴스뱅크

수도권 경매도 연일 사상 최고치 경신

연체가 시작된 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프리워크아웃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워크아웃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씨의 경우 2억1천만원의 부채 중에서 8천만원만 구제받을 수 있었다. 허사무국장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도 월 1백20만원의 수입으로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 신용대출 원금을 분할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채 감면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씨와 비슷한 경우이다"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앞의 두 사람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하우스푸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사람은 한때 내 집 마련이 꿈인 소박한 서민이었다. 남들이 다 하는 부동산 투기도 하지 않았다. 모자란 돈을 은행 대출로 매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부동산 대란'에 휩쓸리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우스푸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은행 이자를 매우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문제는 현재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집값 대출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최근 하우스푸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내 하우스푸어가 4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잠재적인 위험군은 19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경제연구원은 하우스푸어가 1백56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수치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하우스푸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 조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여서 실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는 사이 경매로 집을 잃은 하우스푸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수도권의 경매 건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부동산 경매 전문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경매로 나온 수도권 아파트는 2012년 11월 말 현재 3만4천5백76가구를 기록했다. 9월에 월별 최고치인 3천건을 돌파했고, 이후 계속해서 상승 추세이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은 역대 최저치인 74.3%를 보였다. 2001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였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은 "경매 대기 중인 건수를 감안할 때 2013년에도 수도권 아파트 경매 물건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정부나 금융권에서는 연일 하우스푸어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자 유예나 대출 연장을 해주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하지만 하우스푸어에게는 남의 얘기처럼 들린다. 기자가 만난 한 자영업자는 "우리은행의 '트러스트 앤 리스백(Trust and Lease back)' 제도는 당행 대출자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대출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제2 금융권에도 손을 댔기 때문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신한은행의 '주택 힐링 프로그램'은 처리 건수가 1백50건을 돌파했다. 우리은행의 신청자가 지금까지 단 한 명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 상품 역시 연체자에게 해당하는 상품이어서 정상적인 하우스푸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권은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고, 금융 당국은 다시 정권의 눈치를 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래저래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들의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2012년 8월16일 국회에서 하우스푸어 대책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관련 기관별로 발표 내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2013년 집값이 올해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가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가능성 진단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 시장 버블 붕괴 과정이 현재 미국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글로벌 경기 침체를 촉발시킨 국가이다. 지난 2006년 집값이 꼭짓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현재는 고점에 비해 33%나 하락한 상태이다. 한국 역시 지난 2000년대 초에 주택 대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거품이 생성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현재 거품이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는 '부동산 버블이 해소되는 데는 통상 6~7년이 소요된다. 한국 집값은 앞으로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집값 하락에 따른 가계 부채 문제가 폭탄이 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김부성 부동산부테크연구소장은 "하우스푸어 문제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회적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정부나 금융기관에서 추진하는 하우스푸어 대책은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하우스푸어는 병 자체가 아니라 병으로 파생된 증상이다. 근원적인 병인 부동산 시장을 치료하지 않고 증상만 줄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하우스푸어 정책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소장은 "결국 시장이 살아야만 이들 하우스푸어들도 살아날 수 있다. 새 정부에서 좀 더 실효성 있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우려도 표시한다. 정부가 개인의 부채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낼 경우 채무자들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의 악몽 역시 재현될 우려가 크다. 이덕희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하우스푸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우스푸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정책은 시장을 망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석 기자 / ls@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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