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논쟁] 군복무 기간 단축

정민승기자 2013. 1. 1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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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직전 내놓은 '군복무 기간 단축' 공약이 논란이다. 육군 사병 기준 현행 21개월인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겠다는 것인데 여권 일각에서도 '안보 공백론'을 내세워 반대할 정도다.

당사자인 국방부도 당선인의 공약에 난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안보 여건의 변화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 했지만, ▦복무기간 단축시 연평균 2만7,000명이 부족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감안하면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다.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는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복무기간 단축으로 전투력이 저하됐다는 보고는 없고, 예산 문제는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장교 감축을 병행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당선인의 공약을 지지했다. 특히 그는 "복무기간 단축을 통해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무력흡수통일을 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고, 이를 계기로 안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는 "일반 사병의 군 복무기단 단축으로 학군장교, 군의관 지원율이 급감하고 있고, 군의관 임관 대상자 중 40%가 낙도나 오지의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며 "복무기간 단축이 단순한 군만의 문제도 아니고, 한번 줄인 복무기간을 다시 늘리긴 불가능한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신뢰구축에 새로운 지평 기대… 저비용 고효율 국방개혁 시발점으로"

●찬성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징병제국가 복무 12개월 남짓숙련도·전투력 저하 근거 미흡노동력 확보 경제안보 기여도

군 안팎에서 사병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반대론이 불거지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사병 축소를 대체할 부사관을 늘리면 연 1조원의 추가적인 국방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가 밝힌 1조원의 추가 예산은 새누리당이 대선 때 제시한 2,500억원보다 무려 4배나 많은 수치다. 또한 사병 감축을 반드시 대규모의 부사관으로 대체해야 하는 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는 복무기간 단축으로 사병 3만명이 줄어들면 부사관 3만명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장수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가 제시한 1만명과도 큰 차이가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장교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점에서 사병과 더불어 장교 감축도 병행한다면 예산상의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사병의 복무기간 단축이 전투 숙련도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 상당수의 복무기간은 12개월 정도인데 이는 박근혜 당선자가 약속한 18개월보다 6개월이 짧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이렇다 할 전력손실을 입고 있다는 보도는 없다. 또한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는 특수직이나 기술직은 부사관 위주로 대체해나가면 된다.

대개 안보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적 특수성이 강조된다. 100만 대군에 핵무장까지 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북 억제의 필요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것이 곧 복무기간 단축을 반대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한군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훈련도 못하며 상당수 무기와 장비가 노후해져 전쟁 수행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도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이기도 하다.

기실 군복무기간 단축은 노무현 정부 때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안보위기론을 강조하면서 국방개혁을 후퇴시켰다. MB 정부가 대군주의를 고집한 데에는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무력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무력 흡수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국제법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제2의 한국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김정일 사망이 급변사태로 이어져 흡수통일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김정은 체제는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박근혜 당선인이 군 복무기간 단축 약속을 지키는 것은 여러 모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국가안보는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때 튼튼해질 수 있고 이를 위한 필요조건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또 한국이 저출산·노령화 사회로 진입해 중장기적으로 노동력 확보에 큰 어려움이 직면할 것이라는 점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은 경제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에도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박 당선인은 대북정책의 화두로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고 있는데 병력 감축은 남북한의 신뢰 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병력 감축이야말로 북한을 무력으로 흡수통일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한이 실질적인 병력 감축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에게 상호 군축을 제안한다면 남북관계와 한국 안보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커지게 될 것이다.

문제를 풀려고 하면 해법을 찾으려 하지만, 피하려고 하면 구실을 찾기 마련이다. 복무기간 단축을 막고자 구실 찾기에 여념이 없는 군 당국의 태도를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또 한 가지. 복무기간 단축은 '고비용 저효율'을 '저비용 고효율'로 바꾸는 국방개혁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현행 21개월하에서도 숙련도 떨어져… 부사관 대체에 연간 1조 예산 더 필요"

●반대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전 안보문제연구소장3개월 단축땐 사병 3만명 부족복무 긴 초급장교 충원 불똥도안보등 고려 신중하게 접근을

세금 깍아주면 모두 좋아한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것 알면서도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복지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금처럼 병 복무기간도 깍아주면 좋아한다. 입대 예정인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님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새 정부는 병 복무기간을 줄여줄 모양이다. 똑 같은 국민의 의무인데 세금은 올리고 병 복무기간은 오히려 줄인단다.

벌써 초급간부들의 입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의 24시간을 병사들과 같이 생활하는 초급간부들은 복무기간 단축이 가져올 폐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현 21개월 복무체제하에서도 병사들의 숙련도 때문에 애를 먹는다. 7~10년의 병 복무기간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군과의 숙련도를 비교해 보면 가슴이 더 막힐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보고서도 "원활한 부대 운영을 위한 병력 순환율까지 감안하면 최소 복무 기간은 22~25개월"이 되어야 된다고 했다. 연구 결과대로 한다면 복무기간을 오히려 늘려야 할 판이다.

복무기간을 3개월 줄이면 연간 3만명의 장정들이 더 군에 입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전투경찰, 경비교도, 소방요원 등 대체복무 요원을 없애야 하고 입대 장정들의 신체 급수도 훨씬 더 낮춰야 한다. 대체 복무 요원을 없애는 만큼 이들을 대신할 공무원을 충원해야 한다. 큰 정부가 될 수밖에 없고 인건비도 수천억원이 된다. 또 입대 병사들의 낮은 신체 등급은 초급 간부들의 지휘부담을 훨씬 더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군은 초급장교와 군의관 확보에 이미 비상이 걸려 있다. ROTC와 학사 출신 초급 장교들이 전체 임관하는 장교의 90%이다. ROTC 장교들은 3,4학년 때 받는 훈련을 제외하고도 임관 이후 28개월을 복무한다. 학사장교들은 40개월 넘게 복무한다. 손익을 따질 줄 아는 젊은이라면 누가 ROTC나 학사장교로 가겠는가. 학사장교는 뽑을래야 지원하는 인원이 없고 ROTC의 지원율도 이미 급감했다. 중위ㆍ대위로 임관하는 군의관들도 36개월 복무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방향을 틀어 일반병으로 복무하겠다고 한다. 군의관 임관 대상자 중 약 40%가 낙도나 오지의 공중보건의로 근무한다. 이들은 또 어떻게 채울 것인가.

병을 대신하여 간부 비율을 높인다면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다. 초기에는 연 1조원 정도 들겠지만 이들의 계급이 올라가면 그 비용은 더 늘어나게 된다. 국회는 올해 복지 예산의 9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국방비를 3,000억원 이상 깎았다. 모두 전력 증강과 관련된 비용이다. 이런 정서 속에 인건비 1조원 이상을 더 투입해야 한다. 야당의 대선 후보도 18개월을 공약했으니 적어도 이 돈은 깎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전력 증강 예산 비율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의 최초 공약에는 복무기간 단축이 없었다. TV 토론에서도 병 복무기간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복무 단축이 가져올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대선 이틀 전에 이를 번복했다. 물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라는 전제 조건을 달긴 했지만. 지금은 이 전제조건을 검토해야 할 때다. 병 복무기간 단축은 단순히 군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찰, 소방방재청, 법무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이 모두 얽혀 있는 문제다.

병 복무기간 단축은 피라미드의 가장 하층부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가지고 있다. 병의 숙련도는 떨어지는데 그나마 이를 지휘할 초급장교들마저 충원이 안 될 판이니 그렇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도 같은 처지에 처할 것이다. 미래의 일이 아니라 곧 다가올 현실이다. 복무기간 단축은 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세금은 깎을 수?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단축된 복무기간은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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