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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드 대 처월드, '부양 갈등' 가장 크다

김태훈 기자 입력 2013. 02. 02. 20:24 수정 2013. 02. 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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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명절 때 시월드 스트레스 짧지만 강력… 처월드와 갈등으로 이혼하는 남성 증가

명절 때마다 한국의 부부는 위기를 겪는다. 각각 시댁과 처가를 가리키는 '시월드'와 '처월드'를 본격적으로 체험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이어져 왔거나 잠복해 있던 양가 사이의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증폭된다. 갈등의 중심에는 시부모 혹은 장인·장모를 부양하는 경제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아내는 손주를 더 자주 봐주는 건 친정 어머니인데 왜 시댁에 용돈을 더 드리고 자주 가야 하냐고 따진다. 남편은 이전 세대에 비해 늘어난 처월드의 개입과 경제적인 지원 요구가 부담스럽다.

동거부양 줄고 경제적 지원은 늘어

직장을 다니며 주부활동도 병행하는 정지원씨(가명·여·38)는 양가 부모가 같은 액수의 용돈을 받으면서 육아 부담은 친정 어머니만 지는 것이 불만이다. 네 살짜리 둘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정씨가 퇴근할 때까지 돌보는 역할을 친정 어머니가 전담하고 있다. 시부모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남편이 양가 부모에게 같은 액수의 용돈을 드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정씨는 "남편은 나보다 자기가 더 많이 버는 만큼 자기 본가에 더 드리는 거라고 말하지만 친정 어머니가 연로한 몸으로 매일 아이를 돌보는 수고를 실감하지 못한다"면서 "(남편이) 명절에도 거리가 먼 시댁에는 먼저 다녀오면서도 '처가는 가까우니 평소에도 자주 가지 않느냐며 다음에 들르자'고 해 명절 때마다 싸우는 게 연례행사처럼 됐다"고 말했다.

명절을 맞아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출발하고 있다./김영민 기자양가 부모를 부양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정씨의 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년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양가 부모와 동거하면서 부양하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양가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비율은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표 참조). 시댁·처가 식구들과 만나는 횟수도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나 물리적·시간적 거리는 늘어났지만 이만큼의 거리를 경제적 지원으로 대체하는 흐름이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가족실태조사에서는 노인 가족원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노인 부양을 맡은 가구에서 해결한다는 응답이 61%로 2005년의 44.6%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또 시댁·처가 식구로 인한 갈등을 경험한 비율도 2005년 30.3%에서 2010년 43.6%로 상승해 노부모 부양에 필요한 비용을 두고 갈등을 겪을 소지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장정순 신흥대 교수는 여성가족패널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의 결혼 만족도를 분석한 논문에서 시부모의 부양 책임이 며느리에게 있는 경우 결혼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기혼여성이 친정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1.5%에 그친 데 비해 시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9.3%로 6배 이상 높았다. 부양에 들어가는 금액도 친정 부모에게 월평균 9만8000원을 지출하는 데 비해 시부모에게는 월평균 17만8000원을 지출했다. 또 장 교수는 "친정 부모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시부모는 차로 2시간 이상 거리에 있는 경우 결혼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혀 기혼여성들이 시부모 부양에는 거리를 두고 친정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부모 부양의 부담은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의 스트레스도 유발한다. 이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이 시월드를 기피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험연구원의 김대환 연구위원은 부모 부양 부담의 남녀간 차이에 관한 연구에서 남성은 부모를 부양해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증가하지 않는 반면, 여성의 경우 매우 높게 증가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자기 부모를 부양하는 남성은 오랫동안 공유해온 가족문화 덕에 큰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낮은 반면, 다른 가족문화에서 성장한 여성은 남편의 부모를 부양함에 따라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고 밝혔다.

시아버지와 충돌하는 며느리들 증가

부모 부양문제가 만성적인 스트레스라면 명절을 시월드와 함께 보내며 겪는 스트레스는 단기적이지만 강력하다. 충남대 의학연구소 가정의학교실 강동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기혼여성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를 점수로 환산하면 '사업의 파산'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국 기혼여성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를 '사회 재적응 척도'로 측정하면 평균 38.7점으로 미국의 크리스마스 명절 스트레스 점수인 12점에 비해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특히 명절 스트레스 점수는 가족기능지수가 낮을 때 더 높게 나타나, 시월드를 비롯한 가정 내 갈등문제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트위터 계정 '시월드 옆 대나무숲'은 시댁 식구들을 성토하는 트윗을 올리도록 만든 공개 계정이다. 82쿡, 미즈넷 등 여성 회원이 다수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주장하며 시월드를 성토하는 글이 게시판을 가득 메운다. 시월드를 성토하는 게시글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시아버지에 대한 불만 글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고부갈등이 시월드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모양새를 바꾼 데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직접적인 갈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의 양정자 원장은 "최근 상담 사례들을 살펴보면 며느리를 편들어주는 기존의 시아버지 이미지와는 다르게 간섭과 참견을 일삼는 시아버지 때문에 고충을 겪는다는 예가 늘고 있다"면서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다른 인식을 가진 며느리들이 집안에서 권위적인 가장 자리를 유지하려는 시아버지와 충돌이 잦아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남성 회원 수가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시월드에 대한 불만 못지않게 처월드에 대한 불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월드와의 교류와 방문이 늘어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육아문제로 장모를 찾을 경우 주기적으로 처가 식구들을 만나게 될 일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현우씨(가명·34·남)도 처월드를 방문할 때마다 장인·장모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경우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수입이 정기적이고 일정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타박을 듣는다. 이씨는 "일하는 장소와 시간이 자유로워 낮에도 아이를 맡기러 처가에 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을 잡으라고 하거나 복장을 단정히 하라거나 하는 잔소리를 듣는다"며 "명절에 처가에 가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사위와 비교되는 것이 싫어 일부러 다른 식구들이 떠날 때쯤에야 찾아간다"고 말했다.

결혼 11년차인 직장인 남상익씨(가명·남·40)는 종교가 다른 처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개신교를 믿는 처가 식구들이 남씨가 종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타박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 무교였던 남씨는 결혼 후 아내와 처가의 요구로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본가의 제사에는 꼬박꼬박 참석한다. 아내는 제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명절이나 제삿날에 시댁에 가지 않는다. 남씨는 "여러 번 다툰 끝에 명절마다 따로 본가를 방문하기로 합의해 아내와의 갈등은 줄었다"면서도 "사정이 생겨 교회 주일예배를 빠지기라도 하면 장인·장모뿐만이 아니라 처갓집 식구 전부가 한 마디씩 하는 것이 듣기에 무척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처월드와의 갈등 탓에 이혼을 고민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2012년 11월 발표한 상담 통계자료를 보면 남성 내담자들의 이혼 사유 중 '기타 사유'를 제외하면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라는 사유의 비율이 15.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직전 연도의 통계에서 이 사유가 5.6%만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상담원은 이 자료에서 "처가와의 왕래가 과거보다 증가해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사위와 장인·장모 사이의 갈등이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부부간에 싸움이 잦아지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 사는 자녀를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노부부가 자녀에게 줄 보따리를 들고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빠져나가고 있다./김문석 기자 부양갈등 해결 위해선 노후대책 절실

전문가들은 시월드와 처월드를 둘러싼 갈등은 전통적인 가족문화와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문제라고 해석했다. 여성이 집안일이나 가정 내 돌봄을 담당하는 대신 경제활동에 나서게 되면서 가정 내 발언권이 커진 반면,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가족문화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 충돌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양정자 원장은 "상담 사례들을 보면 고부갈등 등 시댁과 관련된 상담건수의 양은 꾸준히 유지되는 가운데 최근에 와서는 남편이 처가와의 갈등으로 상담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며 "2007년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법·제도적인 면에서는 어느 정도 부부간 평등이 이뤄졌지만 아직 사회 전반의 의식은 서서히 전환되는 중이라 남편과 아내 양쪽의 불만이 더 자주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녀세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경제적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노후보장제도 확충과 더불어 주택가격 안정과 같은 복지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녀의 결혼 과정에서 상당한 지출을 감수함에 따라 부모세대가 노후준비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김대환 연구위원은 "가족간 배려나 세대간 소득 이전을 강조하는 문화 때문에 자녀의 교육, 결혼, 주택 마련 등을 위해 부모세대가 소득을 지출하면 은퇴 이후 자녀세대의 부양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노후준비를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수준으로 사회적인 노후보장체계가 정비돼야 자녀세대로 경제적 부담을 이전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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