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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내 제사는 지내지 마라"

황보람 기자 입력 2013. 02. 09. 08:01 수정 2013. 02. 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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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제사는 양반문화 모방한 가짜전통..제사 대신 가족모임을"

[머니투데이 황보람기자][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제사는 양반문화 모방한 가짜전통…제사 대신 가족모임을"]

"차례나 제사는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문화가 아니에요. 남자들은 자기 부모 늙으면 기저귀 한 번 안 갈아 주고 아내에게 '리모콘' 효도를 시키죠."

여성운동가 및 시골한의사 고은광순(58)씨.

여성운동가 고은광순(58)씨는 2009년 10월 "아이들아 내 제살랑 지내지 마라"라고 외치며 '제사 거부 운동'에 나섰다. 고은씨에게 제사란 뿌리도 전통도 없는 '허례허식'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제사'가 우리의 전통 문화가 아닐뿐더러 가부장적인 제도만 강화하는 폐습이란 것이다. 고은씨는 '호주제'가 하드웨어라면 '제사'는 소프트웨어라고 했다. 90년대 여성주의 운동에 뛰어들어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등에 나선 그로서는 '제사 거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상제사는 3300년 전 중국에 '조갑'이 아버지 명을 어기고 형을 죽여 왕권을 차지한 걸 합리화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이성계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흉내 낸 거고요. 평민이 따라하면 데려다가 곤장을 내릴 만큼 독점적인 행사였어요. 세상이 바뀌고 너도나도 양반을 모방하면서 자리 잡은 가짜전통이죠"

그렇다고 고은씨가 모든 사람에게 '제사 거부'를 권하는 건 아니다. 강요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그는 안다. 고은씨가 만든 '제사 거부' 인터넷 커뮤니티도 지난해 9월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고은씨 주변에도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들은 친인척 관계에 묶여 있잖아요. 여성 리더라는 국회의원들도 명절만 되면 '평범한 며느리 입니다' 해야 표가 나오거든요. 지금 우리들이 선언해야 합니다. 내 자식들, 내 며느리에게는 이런 짐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고은씨는 스스로 조용하지만 강한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 몇 해 전 운영하던 한의원을 정리하고 아픈 어머니와 함께 충청도 갑사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모시고 싶어서였다. 돌아가신 후에는 무덤 없이 한 그루 나무 아래 묻어드렸다.

일부는 이런 주장을 드센 여자들의 '귀차니즘'(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고은씨는 '멍청한 것에 대한 지혜로운 대안'이라고 응수했다.

"제사는 첫째 아들 집이 맡는데 첫째 며느리가 죽으면 제사상 차릴 사람이 없다고 둘째 집으로 넘어가요. 그런 식으로 여자들에게 책임이 부과되는 거죠. 철저히 남자 집안의 행사인데도 말이에요."

대다수 가정의 명절 모습이 그렇단 얘기다. 장보고 음식하고 차례상 차리는 게 가장 주요한 행사다. 그 이후엔 남자끼리 여자끼리 아이들끼리 흩어져 시간을 보낸다. 남자들은 화투치고 여자들은 남편 흉보고 아이들은 게임이나 하는 식이다.

고은씨는 '명절' 덕분에 친척들이 그나마 얼굴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명절' 탓에 오히려 가족 모임을 안 만든다고 지적했다. 명절이 일종의 '면피'가 됐다는 뜻이다.

"한 해 동안 제사를 12번 지낸다는 분도 있는데 한두 번으로 모아서 하고 나머지는 가족 운동회, 가족 여행을 가는 게 어떨까요. 살아있을 때 추억을 많이 만들고 살아있음을 즐길 줄 알아야 회한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돌아가신 다음에 관이나 수의 비싼 거 해드리면 뭐 하나요."

고은씨는 책을 통해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세상의 절반 여성의 이야기','시골 한의사 고은광순의 힐링' 등을 펴냈다. 지금은 공동 집필로 '제사의 허구'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고은씨는 '끝'보다는 시작을 보자고 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도 탄신일을 축복하고 살아서 세상에 전한 메시지를 기억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설은 1년을 시작하는 날이잖아요 가족들이 모여서 시작을 축하하고 출발을 이야기 하고. 새해 계획 포부 희망을 나누면서 격려하고 축복하고 그런 날이 돼야 하죠. 한마디로 살아있을 때 서로 감동하고 행복하자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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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보람기자 brid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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